22일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2015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 8강 맞대결이 호주 멜버른에 있는 렉탱귤러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이 경기를 현지에서 생중계한 SBS TV의 배성재 캐스터가 연장전 후반에 또 하나의 명언을 남겨서 화제다.

오른쪽 옆줄을 따라 거침없이 공을 몰고 들어간 차두리가 기막힌 역습 기회를 만들어 손흥민의 쐐기골을 빛내기 직전이었다. 차두리가 한창 달리고 있을 때 배성재 캐스터는 "저런 선수가 왜 월드컵 땐 해설을 하고 있었을까요?"라는 말을 남긴 것이다.

이 순간에 더 번뜩이는 드리블 실력을 자랑한 차두리는 우즈베키스탄의 교체 선수 이스칸데로프를 스피드로 따돌리더니 수비수 중에서 러시아 클럽에서 뛰며 유럽 무대의 경험까지 풍부한 네스테로프(로코모티브 모스크바)까지 무너뜨렸다. 네스테로프의 가랑이 사이를 노린 마지막 드리블 방향은 두고두고 봐도 일품이었다.

월드컵 엔트리 탈락 후 8개월 만에 우뚝 선 차두리

1980년 7월 25일에 태어난 차두리는 이번 아시안컵을 앞두고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선입견 없는 신임을 받아 맏형 자격으로 대표팀에 합류했다. 피지컬 상태도 문제가 없었고 소속 팀 FC 서울에서의 듬직한 활약도 이어지고 있었기에 내심 기대했던 그의 마지막 월드컵 무대였다. 축구팬들이 부르는 '차미네이터', '로봇 두리' 등의 별명만으로도 그의 존재 가치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던 때다. 하지만 홍명보 전임 감독은 그를 부르지 않았다.

그 이후 차두리는 약 8개월 만에 승리를 부르는 맏형으로 당당히 우뚝 섰다. 2014년 11월 14일 요르단 암만에서 벌어진 요르단과의 평가전에서 새내기 국가대표 한교원(전북 현대)의 다이빙 헤더 결승골을 도왔다. 그 당시 오른쪽 옆줄 드리블 장면만으로도 아시안컵 8강 쐐기골을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번 아시안컵 오만과의 첫 경기에서 김창수가 뜻밖의 부상을 당해 갑자기 경기장에 들어갔으면서도 든든하게 한국의 오른쪽 측면을 지켜준 차두리가 있었기에 귀중한 첫 승리가 가능했다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차두리처럼 30대 중반을 넘어선 선수들이 이번 대회에서 팀을 든든하게 이끌고 있다. 호주의 해결사 팀 케이힐은 차두리보다 한 살이 더 위고, 이란의 주장 자바드 네쿠남과 일본 미드필더 엔도 야스히토는 차두리와 동갑내기다.

팀 케이힐, 엔도 야스히토, 자바드 네쿠남... 든든한 맏형들

한국 경기에 이어서 브리즈번에서 열린 또 하나의 8강전에 개최국 호주의 노란색 유니폼을 입고 팀 케이힐이 등장했다. 1979년 12월 6일생 팀 케이힐(뉴욕 레드 불스, 미국)은 여전히 호주의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득점 없이 전반전을 끝낸 호주는 48분에 벼락같은 가위차기 결승골을 터뜨렸다. 오른쪽 수비수 프라니치의 헤더 패스를 받은 팀 케이힐이 중국 골문을 등진 상태에서 곡예사같은 킥 기술을 맘껏 자랑한 것이다.

팀 케이힐의 해결사 본능은 65분에도 이어져 왼쪽 측면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돌고래처럼 솟구쳐 이마로 돌려넣었다. 중국 수비수 두 명이 곁에 있었지만 공의 낙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며 탁월한 점프력을 발휘했다. 30대 중반을 훌쩍 뛰어넘은 맏형이었기에 보는 이들이 더욱 놀라울 뿐이었다.

알랑 페렝 감독이 이끌고 있는 중국 축구가 탄탄한 조직력으로 B조 1위를 차지한 뒤 이어지는 토너먼트를 통해 아시아 정상권 진입을 노린 것을 감안할 때 맏형 케이힐의 기막힌 활약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중국 축구를 향해 진정한 해결사를 데려오라고 웅변하는 것처럼 들렸다.

차두리와 팀 케이힐 이외에도 남아있는 8강 팀 중에서 1980년생으로 차두리 동갑내기의 맏형들이 또 눈에 띈다. 우선, 한국의 4강 상대로 유력한 이란의 주장 자바드 네쿠남(1980년 9월 7일생, 오사수나-스페인)이 있다.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의 주문에 따라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을 맡은 자바드 네쿠남은 이전에 비해 공격 가담의 비중을 줄이고 동료들이 중심을 잃지 않게 하는 묵직한 역할을 여전히 완수해내고 있다. 그가 있기에 테이무리안과 데자가, 구차네자드 등이 부담없이 공격을 이끌 수 있게 된 것이다. 네쿠남의 이란은 23일에 이라크를 상대로 삼아 4강행을 노린다.

디펜딩 챔피언 일본에도 1980년생이 팀을 이끌고 있다. 일본의 미드필드 패스 수준을 대변하는 엔도 야스히토(1980년 1월 28일생, 감바 오사카)가 그 주인공이다. D조에서 상대적으로 약체들을 상대했지만 엔도 야스히토는 '카가와 신지-하세베 마코토-혼다 케이스케'와 함께 일본 공격을 이끌고 있다. 자로 잰 듯한 킥 실력을 자랑하며 팔레스타인과의 대회 첫 경기에서 중거리슛 선취골을 뽑아내기도 했다.

30대 중반을 넘어서면 축구장에서는 퇴물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물론, K리그 클래식 전남 드래곤즈의 골문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 김병지 선수는 만 45세 출장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기에 아직 멀었다고 할 수 있지만 필드 플레이어의 체력적 특성을 감안하면 이들 30대 중반의 베테랑들은 이번 아시안컵이 실질적인 마지막 무대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다가오는 31일(토) 밤 호주 시드니에 있는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영광의 트로피를 들어올릴 맏형은 이들 중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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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아시안컵 배성재 차두리 팀 케이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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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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