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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소장이 최근 법원이 자신에게 판결한 벌금형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백기완 소장이 최근 법원이 자신에게 판결한 벌금형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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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이제는 나의 발밑에 널빤지를 깔아놓고 발등을 대못으로 찍었어. 그럼 널빤지가 걸려서 뛸 수도 없고 못을 뺄 수도 없어. 그걸 빼려고 막 몸부림을 치잖아. 그게 바로 멍석말이 춤이야. 그 춤의 전문가가 바로 나야!"

지난 22일 서울 대학로 통일문제연구소에서 만난 백기완 소장(83)의 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백 소장의 발등을 찍은 대못은 '벌금형'이자 노동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손해배상소송이었다.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회원이기도 한 그는 지난 2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부터 다섯 장의 판결문을 받았다. 판결문의 주문은 다음과 같았다.

'피고인을 벌금 70만 원에 처한다. 피고인이 위 벌금을 납입하지 아니하는 경우 10만 원을 1일 이자로 환산한 기간 피고인을 노역장에 유치한다.'

법원의 판결은 일반교통방해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에 대한 것이다. 약식재판에서 결정한 벌금 300만 원에서 230만 원 깎인 금액이다. 판결문에 적힌 백 소장의 범죄사실은 두 가지인데, 2011년 12월3일 '민중대회'와 2012년 5월10일 '쌍용차 문제해결, 대통령 면담 요구 기자회견' 때 도로를 점거하고 행진을 하거나 기자회견을 했다는 내용이다.

이날 새해 인사차 들른 연구소에서 백 소장은 200자 원고지에 빼곡하게 이번 판결의 문제점에 대한 글을 쓰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원고지와 함께 지금까지 노동자들에게 청구된 손해배상 현황 자료가 놓여 있었다.

합법을 위장한 돈의 탄압

"2011년 한미자유무역협정 체결 반대 시위를 벌인 것은 우리 국민들의 생존권을 위한 것이었고, 2012년 쌍용차 기자회견은 비인간적인 재벌구조에 반기를 든 것이었는데 그게 무슨 죄인가? 째째하고 비겁하게 탄압하지 말고 차라리 나를 감옥에 넣어라."

그는 "지난 60년간 길거리에서 산 사람이 길거리에 나섰다고 벌금을 때린 것은 내가 살아온 역사에 대해 벌금을 때린 것과 같다"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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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형이라는 합법을 위장한 돈의 탄압은 지금 백기완에게만 가해지는 게 아니야. 이 땅의 착한 노동자에게도 집중적으로 가해지는 탄압이야. 지금 쌍용차를 비롯해서 노동자들에게 손배가압류 이런 돈에 의한 폭력적인 탄압이 얼마나 가해지는 줄 아나? 1691억6000만 원이라는 어머어마한 손해배상으로 노동자들에게 씌우고 있어.

그래서 한진중공업 노동자 하나도 처참하게 고민하다가 목숨을 빼앗기지 않았나? 박근혜 정권! 악독한 독재라는 낙인이 더 이상 깊어가기 전에 백기완을 비롯한 노동자에게 가해지는, 돈을 물리는 치사하고 더러운 방법은 당장 철회해야 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유신과 군사독재, 분단 현실을 타파하려고 길거리에서 싸우다가 여러 번 투옥된 그에게 과거에도 벌금형에 처해진 일이 있었냐고 물었더니, 박정희 정권 때 벌금형을 받은 이야기 한토막을 소개했다. 

이번에는 박정희의 딸 때문에...

"1974년에 유신타도 투쟁을 하다가 긴급조치 1호로 구속된 사람들은 모두 1975년 2월 15일에 석방됐어. 난 맨 처음 감옥에 갔지. 영등포 교도소에 갇혀 있었는데 다들 나간다고 만세를 부르는 거야. 그런데 나에게는 10만 원을 내라고 해. 왜냐고 물었더니, 1969년도에 박정희 고향 선산에서 삼선개현반투쟁위원회가 집회를 열었는데 선전위원인 나와 선전위원장인 장준하 위원장이 연설을 한 것을 불구속 입건했고 벌금형이 확정됐다는 거야.

지금은 10만 원이지만 그 때는 하루에 500원을 쳐줬어. 그래서 돈이 없으니 석달 열흘을 감옥에 더 있겠다고 했지. 긴급조치 위반으로 맨 처음 잡힌 내가 나가지 않는다면 생색을 내려던 석방 조치가 어찌 되겠어. 그래서 중앙정보부 놈들이 집사람에게 가서 돈을 꿔서라도 벌금을 마련하라고 이야기를 했나봐.

그날 밤 12시쯤에 덩치 좋은 놈들이 와서 벌금을 냈으니 나가라고 하는 거야. 그 때 박경리 소설가가 7만 원, 박한상 변호사가 1만 원을 꿔줬고 집사람이 좀 융통해서 벌금을 냈나 보더라고. 그래도 난 안 나가겠다고 버티니까 이 놈들이 내 사지를 잡고 헹가래를 치면서 나를 감옥에서 내쫓았어. 그런데 이번에는 박정희의 딸 때문에…."

그는 씁쓸해하면서 말을 이었다. 

"박근혜 정권은 길거리에서 열심히 싸워서 쟁취한 선거제도를 통해 당선된 사람 아냐? 나도 앞장섰어. 민주주의는 지키지 못했지만 선거제도는 바꿨잖아. 내게 표창을 줘도 시원치 않을 판에 나와 노동자들에게 벌금을 매기면 돼? 박근혜 정권은 나와 노동자들에 대한 해괴망칙한 탄압 방법을 당장 철회해야 해. 안 그러면 째째한 독재자로 불릴거야."

팔순이 넘은 백 소장은 그간 집회에 참석했다는 이유 등으로 재판을 받아야 할 것이 다섯 건이나 밀려있다. 백 소장은 새해 벽두부터 감옥에서 노역을 하면서 '멍석말이 춤'을 춰야 할 상황이다.


태그:#백기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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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사람에 관심이 많은 오마이뉴스 기자입니다. 10만인클럽에 가입해서 응원해주세요^^ http://omn.kr/acj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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