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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식으로 눈치를 보면 헌법재판소가 왜 필요한가. 문 닫고 대법원에 들어가라."(김진태 새누리당 소속 국회 법제사법위원)

지난해 10월 17일 독립 특별재판소인 헌법재판소(아래 헌재)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김용헌 헌재 사무처장을 비롯한 간부들은 국회의원들로부터 모욕적인 언사를 당했다.

다른 여당 의원들도 "앞으로 헌법재판관들이 직접 국정감사를 받도록 (법을) 바꿔야겠다"(김도읍 의원), "헌재가 '대법원의 2중대다. 대법원의 출장소다' 같은 소릴 들으려느냐. 어떤 사람들은 대법원의 식민지라는 얘기도 한다"(박민식 의원)는 등의 발언을 했다.

이들의 주문은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을 빨리 선고하라는 것이었다. 대법원이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판결을 내리는 걸 기다리지 말고 결정을 내리라는 독촉이었다.

그날 점심, 국회의원들과 밥을 먹던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금년 말까지는 선고를 하려고 한다"며 '대법원보다 먼저 선고하겠다'고 사실상 약속해버렸다. 그리고 결국 변론종결 한달여 만인 지난해 12월 19일 헌재는 통합진보당을 해산시켰다.

통합진보당에대한 정당 해산 심판 청구 선고가 열린 19일 오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판결문을 읽고 있다. 재판관 9인중 8인의 인용의견으로 통합진보당은 해산 결정됐다.
▲ 헌법재판소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통합진보당에대한 정당 해산 심판 청구 선고가 열린 19일 오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판결문을 읽고 있다. 재판관 9인중 8인의 인용의견으로 통합진보당은 해산 결정됐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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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결정 이유엔 내란음모도... 결국 '실체없는 음모'로 정당해산

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의 선고내용은 '이석기 등이 내란을 선동한 것은 맞는데, 조직의 실체도 없고 내란음모를 진행했다고 보긴 어렵다'는 것으로, 내용을 보면 새누리당 법사위원들이 왜 그렇게 모욕적인 언사로 헌재를 닥달했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분명해진 건, 지하혁명조직 RO의 실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국정원과 검찰이 폭력으로 대한민국 전복을 획책하는 조직이라고 했던 RO의 조직력과 실행력에 대한 이야기는 사건 초기 연일 언론의 지면과 전파를 탔다.

이 '무시무시한 RO'에 관한 각종 보도들은 여론의 비난이 이석기 전 의원 등 회합주도자에 국한되지 않고 통합진보당 전체로 향하게 했다, 결국 통합진보당 해산 여론 형성에 주요 근거가 됐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로 확인된 건 "RO의 실체는 제보자의 추측에 불과하고 객관적 자료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등의 내란사건 상고심이 열린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인근에서 옛 통합진보당 당원들과 지지자들이 이 전의원 대법원 판결 규탄 집회를 열고 있다.
▲ "이석기 의원은 무죄입니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등의 내란사건 상고심이 열린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인근에서 옛 통합진보당 당원들과 지지자들이 이 전의원 대법원 판결 규탄 집회를 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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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의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결과와 대법원의 이번 판결을 겹쳐보면 더 이상하다. 헌재가 RO의 실체가 분명하다면서 해산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헌재는 "이석기 전 의원을 비롯한 회합 참가자들은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하면서 전쟁이 발생했을 때 북한에 동조, 국가기간시설을 파괴하는 등 폭력 수단을 실행하고자 회합을 개최했다"고 내란음모 부분을 해산 결정의 주요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내란음모 부분은 인정되지 않았다. 같은 내용의 판결이 지난해 8월 서울고등법원 항소심에서 나왔으니 예상하지 못할 내용도 아니었는데 헌재는 대법원 판결을 지켜보지 않고 해산 결정 선고를 강행했다.

결국 헌재는 집권당의 독촉과 압박을 받고 '실체 없는 내란음모'를 이유로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한 꼴이 됐다.


태그:#통합진보당, #RO, #내란음모, #헌법재판소,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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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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