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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뀌고 작심삼일을 일곱 번 반복했을 시간이 지났다. 1월 1일부터 스스로 세운 결심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지금이야 22일 정도 차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성공과 실패'의 간극은 더욱 멀어질 것이다. 올해 12월 31일까지 지금의 성공을 지켜내는 이들도 아마 극소수일 것이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로만 구성되는 사회는 없다. 따라서 어떤 사회가 실패를 어떻게 대하느냐는 곧 인간적인 진보의 문제이기도 하다. 실패에 차가운 사회에서 실패는 곧 도태를 의미한다. 약육강식 또는 적자생존 논리가 판을 친다. 반면 실패에 따뜻한 사회에서는 새로운 도전이 넘쳐나기 마련이다.

"마누라 퇴근 기다리는 서른 살 백수 전과자"에서...

 최근 '실패의 기록' <파산>을 내놓은 저자 이건범
 최근 '실패의 기록' <파산>을 내놓은 저자 이건범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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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실패에 따뜻한 사회는 아니다. 자신의 실패를 정면으로 마주보는 방법을 소개한 책이 나왔다는 것, 그래서 더욱 반가웠다. 제목부터 <파산>(피어나)이다. 저자는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그 프로필 자체가 참 극적이다. 민주화운동으로 옥살이를 하고 "마누라 퇴근을 기다리는 서른살 백수 전과자"에서 연매출 100억 원의 IT업체(아리수 미디어)를 이끄는 사장으로 성공했던 사람.

그러다 한순간에 말 그대로 파산한 사람. 성공과 실패 사이의 간극이 이만큼 큰 인생은 드물다. 실패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1급 시각장애인인 그가 걷고 있는 길은 작가, <좌우파 사전> <내 청춘의 감옥> <미디어 몽구, 사람을 향하다> 등 이미 여러 권 책을 써냈다. 그리고 이번에 내놓은 책이 하필 '실패의 기록'이다.

"실패의 기록은 쓰기 어렵다. 성공의 기록은 성공한 현재가 있기 때문에 구성이 쉽지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물거품을 원래 모양대로 재구성하기란 보통 일이 아니다. 더구나 기록을 남겨야 할 사람의 마음이 갈가리 찢긴 상태일 테니 더더욱 진도 빼기가 어렵다. 그런 이유로 실패를 기록하는 사람이 드물고, 그래서 실패의 기록을 찾아보기도 쉽지 않다." - '나는 기억하기 위해 쓴다' 서문에서

왜 그는 고통스럽기 짝이 없을 자신의 실패담을 세상에 내놓은 것일까. 그리고 그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15일 그는 꽤 바빠 보였다. KBS 한 특강 프로그램에서 섭외도 들어왔다고 했고, 북 콘서트도 열었다 했다. 그래서 첫 질문은 자연스럽게 조용필의 노래 '꿈'으로 시작됐다. 책을 통해 노래방에서 즐겨 불렀다고 소개한 노래.

"성공담은 마취제... 별로 도움 안 돼"

 최근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가 내놓은 '실패의 기록' <파산>
 최근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가 내놓은 '실패의 기록' <파산>
ⓒ 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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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도 즐겨 부르십니까?
"요샌 잘 안 부르죠(웃음). 30대 시절까지는 꽤 불렀어요. 직원들과 노래방을 간다거나 이럴 때 자주 불렀던 노래였죠. 회사 어려워진 다음부터는 별로 안 부른 것 같아요. 그러다 마지막에, (회사) 끝날 때, 광화문 어느 노래방에서 함께 불렀던 기억이 나네요. 사실, 그 사무실 있던 쪽으로는 정말 가고 싶지도 않아요(웃음). 솔직한 심정이 그래요. 유아 교육, 이런 쪽은, 뭐, 아유, 쳐다보기도 싫고(웃음)."

- 나이가 들다 보면, 같은 노래, 같은 가사라도 다르게 들리잖아요? 예전과는 다른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여전히 가장 와 닿는 가사가 있다면?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 그 부분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아요. 그래서 책 1부 제목도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로 했죠. 사람들이 그 노래를 부르면서 느끼는 고독함이나 애잔함, 그 근본 이유는, 사실,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기 때문이니까요."

- 보통 성공과 실패를 '화려한 도시'를 기준으로 나누잖아요. 그래서 실패를 받아들이기가 더 어려운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더욱 실패의 기록을 쓰기가 어려웠을 텐데, 굳이 왜?
"뭐, 제가 갖고 있는 자산이 그것 밖에 없어서요(웃음). 사업을 하다보면 사회적인 운이 따라올 때가 있어요. 정말 생각하지도 않았던 운이 붙을 때가 있거든요? 또 아무리 사장이나 어떤 지도자 자리에 있더라도 개인적인 판단 수위를 넘는 그런 문제 앞에 설 때가 굉장히 많거든요. 잘못 판단하거나 오락가락하는 경우들이 참 많죠.

그러면서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에서 조금씩 엇갈리는 겁니다. 저의 경우는 극단적인 파산이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만. 대부분 성공담이 한 사람의 노력이나 훌륭한 판단, 이런 데 초점을 너무 맞추다보니까, 실제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봤어요.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거죠. 성공담이 너무 미화돼 있다, 이게 하나의 계기가 됐습니다. 성공담이 마취제 역할을 하는 거죠."

"실패는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실패의 기록' <파산>을 내놓은 저자 이건범
 최근 '실패의 기록' <파산>을 내놓은 저자 이건범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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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위인전 류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도 있겠네요.
"그렇죠.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것, 저는 이게, 사회 전체와 연관돼 있다고 생각해요. 실패를 실패로서 인정하지 않으면, 책임을 자기가 지려고 하지 않죠. 책임을 남에게 미루게 되고, 사실 그때부터 남에 대한 분노나 증오가 더 심해지거든요. 나를 이렇게 고통 속에 빠뜨리고 있는 시대에 대한 분노. 이런 식으로 발전하는 거죠."

- 극단적으로는 '묻지 마 살인'으로도 나타나고요.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문제는 남의 이야기를 존중하는 태도와도 연결돼 있습니다. 남을 인정하기 두려운 것, 이건 사실 나의 안 좋은 면을 드러내길 두려워하는 것이거든요? 그러는 순간 내가 을이 되고, 병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렇게 하면 남에게 짓밟힐 것이다, 이런 두려움을 가지게끔 하는 사회가 되어 버린 것 같아요. 그럼 이런 사회가 과연, 성공한 것이냐,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겠죠.

어떤 실패가 나만의 문제가 아니란 생각을 나누고 싶었어요. 나만 실패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런 비슷한 고통을 다 안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사회 기준으로 봤을 때 파산이 실패일 수 있지만, 그게 무슨 영원한 실패도 아니고, 뭐 그걸로 내가 땅 구덩이 밑으로 들어갈 것도 아니잖아요? 실패를 실패대로 받아들이는 것, 자신의 약점이나 단점 또는 잘못 이런 것을 충분히 인정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님에도 우리 사회에는 이런 게 부족하죠.

그러니까 성공에만 집착하고, 자신의 잘못은 자꾸 숨기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떻게 되겠어요? 아득바득 서로 옳다는 주장만 더 강화되겠죠. 민주적 소통이니 배려니 역지사지니, 이런 게 될 수 없는 거죠. 외환위기 이후 생존 위기에 다들 몰리면서 이런 게 더 강화되는 것 같아요. 내가 낙오되면 어쩌나, 내가 배제되면 어쩌나, 이런 공포들 때문에 최대한 강자처럼 보이려고 하는 태도 말입니다."

"신용은 은행이 아니라 사람이 평가하는 것"

 <파산>의 저자 이건범
 <파산>의 저자 이건범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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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에게 갑이 되는 것이 먼저란 생각이 드네요. 스스로에게 갑이 되려면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사실 실패가 딱 내 앞에 직면했을 때, 가장 힘든 건 뭐냐하면, 실패라는 이 놈의 정체를 파악하는 겁니다. 이 놈이 나에게 미치는 크나큰 해악이 무엇이냐, 나의 뭐가 망가질까 생각해 보는 거죠. 그러다 보면 이걸 내가 잘못 접근하면 왕창 망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기서 나 하나만 살려고 하면, 내 모든 인간관계가 다 망가지고, 모든 걸 다 버릴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거든요?

그럼 날 사랑하는 사람들이 믿는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그 믿음을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그 믿음을 잃지 않을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이 불행을 내가 잘 끌어안으면 적어도 그 관계에는 아무 변화가 없을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에 이르게 돼요. 그때부터 이 불행이란 놈은 내가 처리해야 할 일거리 중 하나가 되는 거예요. 그냥 처리하면 되는 거죠.

제가 파산할 때, 그래도 마지막까지 꼼꼼하게 다 처리했어요. 물론 힘들어요, 분명히 힘들긴 한데 처리할 수 있어요. 자, 그 다음 보면, 날 사랑하는, 나를 믿고 있는 사람과의 관계가 아무것도 변한 게 없어요, 여전히 튼튼해. 통상적인 잣대로 봤을 때는 돈을 잃었다 뭐 이럴 수 있지만, 사람을 잃는 일만은 하지 말아야겠죠. 사람까지 잃으면 그게 진정한 파산이고, 파멸이죠. 부제를 신용은 은행이 평가하는 게 아니라고 했던 것도 그래서입니다."

- <내 청춘의 감옥>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더군요.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이 구속 당시 구치소에서 읽고 웃은 책이라고, 감옥 이야기가 이렇게 유쾌할 수 있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고 하던데요. 그 다음 문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그 유쾌한 글자들을 둘러싼 모든 여백은 아픔과 고통이라고 봐야 한다". 주제문이 아닐까요? 대부분 성공에는 보이지 않는 실패가 많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렇죠.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거죠. 제가 쓴 책에 고통스러운 고민이나 흔적들이 나타나긴 하지만, 사실 그 고통을 절절하게 드러낼 정도로까지 기억이 잘 나지 않더군요. 기억해내려고 노력은 했지만... 대부분 삶의 기록이 또 그렇죠."

실패를 지레 겁나게 만드는 사회

 최근 '실패의 기록' <파산>을 내놓은 저자 이건범
 최근 '실패의 기록' <파산>을 내놓은 저자 이건범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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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가 망한 큰 이유로 성장주의가 극심했던 시기에 조급했고 그럼으로써 일관성이 사라졌다는 점을 꼽으셨습니다. 만약 천천히 갔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거라 보시나요?
"조금 달랐겠죠? 우리가 갖고 있던 힘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더 많이 고민하고 찾으려고 했겠죠. 그런데 스스로 그 힘을 믿지 않았기에 조급했고 오락가락했던 거죠. 우리의 힘을 존중하고 그 힘이 낼 수 있는 속도에 맞춰갔다면 훨씬 유리했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중소기업 가서 강연을 했을 때도 이런 말을 했어요. 자꾸 다른 기업과 비교하지 말고, 자기 힘을, 자기 장점을 중시하라, 단점은 고치기 어려우니 어떻게든 장점을 키워라."

- 그럼 예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와 지금,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어요?
"아...참...대답하기 그러네요(웃음). 그런데 진짜로, 지금이 결코 나쁘지 않아요. 좋습니다. 이기적인 생각일 수 있는데 많은 사람들 운명을 책임진다는 건 정말 힘든 일 같아요. 이제는 그냥, 저 한 몸에 집중해서 생각하고 글 쓰고 사는 거, 굉장히 좋은 것 같아요. 재미있어요. 이런 걸 알게 된 것도 저한테는 굉장한 행운이죠.

무슨 어마어마한 계획을 세워서 작가 길을 걸은 게 아니거든요. 써보면서 알게 된 거죠. 그래서 어떤 출발선에 서고자 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예요. 해보라는 거죠. 너무 고민하지 말고, 과감하게 실천하는 게 훨씬 더 고민을 진전시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적성에 맞는지,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해 봐야 아는 거잖아요. 지레 겁내고 그러지 말자는 거죠."

- 연초에 많은 사람들이 뭔가 해보려고 합니다. 올해만큼은 어떤 성공을 그리죠. 그런데 12월 31일이 되면, 대부분은 실패 쪽으로 기우는데요.
"스스로 '난 안 돼', 그렇게 가는 경우가 오히려 많죠. 실패했을 때는 분명히 거기서 배울 수 있는 게 생기거든요? 실패라는 건 사실 실천, 실천했을 때만 실패도 가능한 거잖아요. 뭔가 늦게 시작한 사람들? 앞서 간 사람들이 보지 못한 기회가 보이게 돼 있어요. 실천을 해야만 그런 기회가 제대로 보이게 되는 거죠."

- 정호승 시인의 글이 생각나네요. 실패를 기념하라.
"실패를 받아들이는 것, 자신을 인정하는 것인데 그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잖아요. 내 역사니까 내가 끌어안고 살아야죠. 사실, 처음에는 소화가 잘 안 됩니다. 나도 그랬으니까요. 내가 왜 파산했을까?(웃음) 어려운 세상 맞아요. 비정규직이 절반이 넘고, 그 자리에조차 가기 어려운 사람들도 있어요. 불행한 사회가 되어 있어요. 굉장히 양극화돼 있는 게 문제죠. 이런 문제를 정치가 바꿔줘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죠."

"성공과 실패 사이의 간극, 사회가 줄여줘야"

- 우리 사회는 실패를 외면해버리는 쪽에 가깝습니다. 극소수 성공에만 주목하고, 재기하기 매우 어려운 사회잖아요. 그래서 복지를 두툼하게 깔아야 한다고 쓰신 것 같은데요.
"내가 넘어지는 곳이 땅 구덩이다, 그럼 다들 겁나서 가려고 하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안전판을 깔아 줘야죠. 망할 수 있어요. 저처럼 쫄딱 망하는 사람도 생깁니다. 그럼 너무 힘들지 않게, 완전히 바닥으로는 내려가지 않게끔 말입니다. 이런 구조에서도 용감한 돈키호테들은 생겨나니까요. 이 사람들이 실패했을 때 그래도 완전히 망가지는 건 아니라고 할 정도의 장치는 좀 만들어놔야 한다는 거죠. 이것도 복지라고 생각합니다."

- 성공과 실패 사이의 간극을 줄여야 할 책임이 사회에 있다?
"그렇죠. 성공과 실패 사이의 간극을 사회가 줄여준다면, 많은 사람들이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고, 창업할 수 있고, 예술도 할 수 있고,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에 훨씬 더 많은 자산들이 보태질 거라고 생각해요."

- 실패가 지금보다는 재미있어질 수도 있겠군요.
"두렵지 않게 되죠. 길 가다 넘어질 수 있잖아요. 그게 뭐 부끄럽다고 그냥 그대로 넘어진 채로 있겠어요. 일어설 수만 있으면 되는 거잖아요. 너무 겁을 낼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대부분의 겁은 부딪치기 전까지 나는 거잖아요? 감 떨어지기 기다려봤자 안 떨어지니까 나 스스로 바꿔야죠, 뭐. 내 인생 스스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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