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8일 인천의 한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네 살배기 아이를 때린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 국민적인 분노가 터져나오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어린이집 운영 정지, 전국 어린이집 아동학대 전수조사, CCTV 의무화 방안 추진 등의 대책을 서둘러 내놓았다. 이를 두고 아동학대를 예방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안이 아니라는 비판이 나온다. <오마이뉴스>는 4차례 기획 기사를 통해 아동학대가 발생하는 원인을 파헤치고, 행복한 어린이집을 만들기 위한 대안을 보여줄 예정이다. [편집자말]
푸른숲 어린이집 학부형인 김윤정씨가 아이를 데려가기 위해  교실에 올라와 직접 옷을 입혀주며 대화를 하고 있다.
 푸른숲 어린이집 학부형인 김윤정씨가 아이를 데려가기 위해 교실에 올라와 직접 옷을 입혀주며 대화를 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오후 5시 김윤정(33)씨가 공립 푸른숲 어린이집 문을 열었다. 김혜은(47) 원장과 반갑게 인사한 후, 3층으로 향했다. 만 1세 아이들이 모인 별누리반이 있는 곳이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왁자지껄 뛰어다니고 있었다. 김윤정씨는 보육교사 김혜선(27)씨와 인사한 후 아이의 옷을 입혔다. 김윤정씨가 아이에게 "오늘 뭐했어?"라고 묻자, 아이는 웃음으로 답했다.

김씨는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된다, 또한 보육교사와 짧은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신뢰감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보통의 어린이집에서는 부모가 아이를 어린이집 통학차량에 태우거나 어린이집 현관에서 아이들을 배웅한다. 부모들은 어린이집 현관을 넘어서는 일을 귀찮아한다. 어린이집 쪽에서도 부담스러워한다.

최근 인천에서는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인천 남동구 만수동에 있는 푸른숲 어린이집 부모들도 불안하지 않을까. 이곳 보육실에는 CCTV가 설치돼 있지 않다. 학부모 조현경(39)씨는 "푸른숲 어린이집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지난 21일 오전 CCTV가 없어도 부모·아이·교사가 모두 행복하다고 하는 푸른숲 어린이집을 찾았다.

부모가 언제든 드나들 수 있는 어린이집

자녀를 데리러 온 공립 푸른숲 어린이집 한 학부형이 자신의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던 중 같은 반 어린이와 함께 인사를 나누고 있다. 푸른숲 어린이집은 학부형이 직접 교실로 찾아와 아이를 데려 가도록 되어 있다.
▲ 아이들과 인사 나누는 아빠 자녀를 데리러 온 공립 푸른숲 어린이집 한 학부형이 자신의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던 중 같은 반 어린이와 함께 인사를 나누고 있다. 푸른숲 어린이집은 학부형이 직접 교실로 찾아와 아이를 데려 가도록 되어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기자가 이날 낮 푸른숲 어린이집에 들어서자, 김혜은 원장이 반갑게 맞았다. 김 원장은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아이를 안고 있었다. 김 원장이 한참 달래줬더니, 아이는 웃으면서 보육실로 돌아갔다. 그는 인천 남동구청이 세운 푸른숲 어린이집을 2011년 1월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유치원 교사 출신인 김 원장은 지난 1999년 중반 직접 어린이집을 세우기 위해 나선 엄마들과 협동조합을 꾸렸고, 2000년 출자금을 모아 인천 부평동에 어린이집을 세웠다. 김 원장은 이곳 원장을 맡았다. 조합원인 부모가 어린이집 운영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했고,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했다. 보육교사의 근로조건에도 신경을 썼다.

입소문이 나자, 예비 부모들까지 문을 두드렸다. 교사들도 출자금을 내놨다. 이 어린이집이 자리매김을 하자, 다른 지역의 어린이집에서도 더 좋은 어린이집 모델이 확산되기를 바랐다. 때마침 푸른숲 어린이집 위탁 공모가 나오자, 여기에 참여해 운영권을 얻었다.

김 원장은 먼저 부모들이 언제든지 어린이집에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현관이 아닌 보육실에서 아이를 맡기거나 데려가도록 했다. 공동육아일기장인 '날적이'가 아닌, 부모와 교사가 직접 만나도록 한 것이다. 교사 김혜선씨는 "처음엔 부담스러웠지만, 계속 얼굴을 보면서 소통하고 신뢰를 쌓아갈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오는 29~30일 모든 학부모들이 참석하는 어린이집 운영 평가회를 연다. 부모들이 설문지에 표기하는 형식적인 방식이 아니라, 부모들로부터 직접 얘기를 듣기로 했다. 부모들은 '방모임'을 통해 두 세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갖는다. 김 원장은 "부모들이 모여 얘기를 나누면, 아이들에게 더 관심을 갖게 되고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 파악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낱낱이 공개되는 운영·재정 상황.. "CCTV 필요 없어"

이곳 어린이집 운영과 재정 상황은 낱낱이 공개된다. 규정에 따라 1년에 두 번 형식적인 운영위원회를 여는 다른 어린이집과 달리, 두 달마다 운영위원회를 연다. 부모들이 직접 뽑은 부모 대표 4명이 운영위원회에 참석한다. 김 원장이 친환경 식재료를 어디에서 얼마나 구매했는지 상세한 내용을 공개한다.

어린이집은 부모로부터 필요 경비를 받아쓰고 남은 돈을 되돌려주기도 했다. 학부모 조현경씨는 "생각도 못했는데 돈을 돌려줬다"라면서 "신뢰가 더 쌓였다"라고 말했다. 부모들은 운영위원회에서 다양한 요구를 하고, 김 원장은 적극 받아들였다. 운영위원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부모를 위해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고 어린이집에 의견을 받는 '소리함'을 설치했다.

푸른숲 어린이집은 부모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강사를 초빙해 먹거리, 미디어, 뇌 발달 등과 관련한 교육을 하고 있다. 또한 부모가 일일 교사로 활동하도록 했다. 한 학부모는 "어린이집에서 많은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정치권은 최근 어린이집 CCTV 의무화 방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많은 부모들이 여기에 찬성하고 있다. 푸른숲 어린이집의 경우, 지난해 부모와 교사들은 CCTV를 달지 않기로 합의했다. 지난해 8월 인천 남동구청은 CCTV 설치를 제안했다. 당시 운영위원회에서 부모 대표 4명의 의견은 반반으로 갈렸다.

결론이 나지 않아, 두 달 뒤 다시 운영위원회를 열기로 했다. 몇몇 교사들은 CCTV 설치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했고, 결국 부모들은 CCTV를 달지 않는 데 동의했다. 학부모 조민희(35)씨는 "처음에 'CCTV가 달려있지 않다'는 얘기를 듣고 당황했다, 주변에 아이가 왕따를 당한 사실을 모르는 엄마가 있어서 걱정됐다"라면서 "하지만 어린이집이 항상 개방돼 있고 신뢰를 주니, CCTV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보육교사의 인권을 지켜준다면... "

푸른숲 어린이집 교사가 어린이들과 함께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점토 놀이를 하고 있다.
▲ 선생님과 점토 놀이하는 어린이들 푸른숲 어린이집 교사가 어린이들과 함께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점토 놀이를 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오후 3시 별누리반. 아동휴게실 문이 열렸다. 막 잠에서 깬 아이들이 보육실로 나왔다. 곧 간식을 먹을 시간이다. 단호박이 나왔다. 한 아이가 먹지 않겠다는 떼쓴다. 한 보육교사가 아이를 달랬다. 미리 잠에서 깬 아이들은 다른 보육교사와 함께 놀이에 한창이었다. 또 다른 보육교사는 오줌이 마렵다는 아이와 함께 화장실로 향했다.

보육교사 한 명은 만 1세 아이 5명까지 돌볼 수 있다. 이곳 별누리반 아이는 모두 15명이다. 3명의 보육교사가 아이를 맡는다. 하지만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하고 의사소통이 어려운 아이 15명을 보육교사 3명이 맡는 건 쉽지 않아 보였다.

교사 김혜선씨에게 "일하는 데 힘들지 않냐"라고 물었다. 그는 "행복하게 일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2013년 국무총리 산하 육아정책연구소에 따르면, 보육교사의 주당 근무시간은 55.1시간이다. 하루 평균 근무시간은 11시간 이상인 셈이다. 그는 "8시간 근무 후 '칼퇴근'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오전 7시 30분에 출근하는 교사는 오후 4시 30분에 퇴근한다. 오전 10시에 출근한다면, 퇴근시간은 오후 7시다. 퇴근 시간 이후 일을 할 경우, 초과근로수당이 보장된다. 김 원장은 "개원 초창기에는 시설 투자에 예산을 많이 썼지만, 이제는 보육교사의 근로조건을 향상시키는 데 예산을 더 쓰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곳 보육교사들은 회의를 통해 근로조건을 정한다. 다른 어린이집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교사 정순심(49)씨는 "근로조건에 불만을 가져본 적이 없다"라면서 "또한 교사들의 건의가 바로 반영되니, 일할 맛이 난다"라고 말했다.

푸른숲 어린이집 교사들은 한 달에 한 번 꼴로 교육을 받는다. 여기에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교육도 포함된다. 교사 김혜선씨는 "아이는 항상 자유롭게 놀고 싶어 하는 게 본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를 다룰 때 내 입장이 아닌 아이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됐고, 내 감정을 다스리는 법도 배웠다"라고 전했다.

학부모 김윤정씨는 "우리가 보육교사들의 인권을 존중한다면, 교사들이 아이들의 인권을 존중할 것으로 믿고 있고, 푸른숲 어린이집에서는 잘 지켜지고 있다"면서 "다른 어린이집도 푸른숲 어린이처럼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태그:#CCTV 없어도, 부모-아이-교사가 모두 행복
댓글7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