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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이 '세월호 침몰사고' 당시 승무원들의 탈출 장면을 담은 영상. 사고 현장에 처음 도착한 목포해경 소속 경비정 123정(100t급)의 한 직원이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은 이 영상에는 승무원들이 제복을 벗고 123정에 허겁지겁 오르는 장면이 담겨 있다.
 해경이 '세월호 침몰사고' 당시 승무원들의 탈출 장면을 담은 영상. 사고 현장에 처음 도착한 목포해경 소속 경비정 123정(100t급)의 한 직원이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은 이 영상에는 승무원들이 제복을 벗고 123정에 허겁지겁 오르는 장면이 담겨 있다.
ⓒ 해경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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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광주지방법원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임정엽) 심리로 열린 전 목포해양경찰(해양안전본부) 김경일 123정장의 2차 공판에서 전명선 위원장과 유경근 대변인은 목소리를 높였다. '세월호참사 가족대책위원회' 위원장과 대변인이기 전에 그들은 단원고 2학년 7반 찬우 아빠와 2학년 3반 예은이 아빠였다.

두 사람은 이날 피해자 자격으로 법정에서 진술하며 2014년 4월 16일 그날, 국가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조목조목 따졌다. 피고인석에 앉은 사람은 김경일 정장 단 한 명이지만, 그 혼자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예은이 아빠' 유경근 대변인은 "김경일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라면서 "30년 넘는 경력을 가졌으면서도 경황이 없었다는 변명을 늘어놓을 뿐만 아니라 퇴선유도를 하라는 (상부의) 명확한 지시에도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최대한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려했지만 딸 예은이와 그 친구들 이야기를 꺼낼 때 끝내 울먹였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10시 10분에 내 딸 예은이와 통화를 했습니다. 해경이 왔다고 했습니다. 빨리 구조돼서 갈 거라고 했습니다.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예은이는 답이 없습니다."

그는 "예은이에게, 250명 우리 아이들에게 해경은 희망이었다"며 "그런데 그 희망은 애타게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들을 외면했다"라고 했다. 이어 "김경일과 해경은 아이들에게 절망만 던져주고, 마지막 호흡을 절망 속에서 하게 만든 살인마"라면서 "우리 가족들은 그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더 이상 대한민국 정부는 우리를 지켜주지 않을 것이라는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유족들이 앉아 있는 방청석 곳곳에서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전명선 위원장 역시 "참사 당시 국가는 어디에 있었냐"라고 일갈했다. 그는 "승객들이 배 안에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해경은 탈출하라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며 "자기도 사람이라 두려워서 세월호에 올라가지 못했다면 선원들 무전기를 활용하거나 가장 먼저 신고한 학생 휴대전화로 탈출을 유도하면 됐는데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전 위원장은 "이 재판으로 국가가 세월호 참사 당일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정확히 알고 싶다"라며 "(재판부가) 저희들의 바람을 외면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한편, 재판부는 123정 현장검증을 취소했다. '김경일 정장이 123정에서 퇴선방송을 했다면 세월호 승객들에게 들렸을 것'이라는 검찰 쪽 주장을 확인해보려는 목적이었지만 당시 상황을 그대로 재연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1월 22일 3차 공판까지는 증거조사를 마무리하고 1월 27일 4차 공판 때는 세월호 생존 승객들을 증인으로 부른 다음, 1월 28일 5차 공판에서 심리절차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다음은 유경근 대변인과 전명선 위원장의 법정 진술을 정리한 내용이다. 유 대변인의 진술 전문은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바로가기).

"9개월 동안 울음 한 번... 현실이 저주스럽다"

세월호사고 가족대책위 유경근 대변인(자료사진).
 세월호사고 가족대책위 유경근 대변인(자료사진).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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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근 대변인 : "단원고등학교 2학년 3반 24번 예은이 아빠 유경근이다. 현재 가족대책위 대변인 역할을 맡고 있다. 작은 제조업체를 운영하면서 20여 명 직원들과 함께 좋은 회사를 만들고 싶었고, 제 목숨보다 더 소중한 네 딸과 함께 알콩달콩 살아가고 싶었던 제가 대변인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달고 지난 9개월 동안 울음 한 번 제대로 못 울고 살아온 현실이 저주스럽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진행 중인 본 재판은, 아니 선원, 선사, 해운조합, 해경 등이 피고인이 돼 진행 중인 모든 재판은 오직 단 한 가지의 목적을 위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짜 원인을 낱낱이 파헤쳐 그 책임자를 성역 없이 처벌하고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세우기 위해서다.

우리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이 마지막 참사의 피해자가 될 수 있도록, 다시는 어떠한 대한민국 국민도 우리와 같은 절망과 한을 겪지 않도록 하는 게 이 재판의 유일한 목적이어야 한다. 이 대명제 앞에 어떠한 정치적 판단도, 어떠한 개별 이익관계도 개입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김경일에 대한 이 재판은 시작부터 잘못됐다. 검찰의 기소부터 잘못된, 매우 비상식적인 재판이다. 김경일이 아무리 현장책임자라 하더라도 그에 대한 지휘권한을 가진 고위 간부들의 책임을 간과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구체적인 법 적용이 힘들다 하더라도 이 재판의 유일한 목적, 참사 재발 방지와 안전한 대한민국 건설이라는 대명제를 잊지 않고 있다면, 검찰과 재판부는 법문에 얽매이지 않는 판단을 해야 한다.

검찰은 지휘라인에 있는 관련 지휘관 등도 기소해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 어느 누구도 김경일 단 한 명에게만 구조실패의 책임을 묻는 것에 동의하지 못한다. 상식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식을 저버리고 있기 때문에 많은 국민들은 이미 결과를 정해놓고 짜고 치는 재판이라고 하는 것이다.

과거 참사들 모두 기소와 재판을 했지만 한결같이 말단 공무원, 직원들만 매우 가벼운 처벌을 받고 끝나버렸다. 정작 누가 봐도 책임을 져야만 했던 사람들은 모두 빠져 나갔다. 그 결과 무슨 짓을 해도, 수백 명을 죽음에 몰아넣어도 나에게는 아무 일 없을 거라 생각하고 오직 돈만,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며 무책임하게 활보하고 있다. 이를 바꿔야 하지 않겠나? 이러한 세상을 바꾸는 게 검찰과 법원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아니, 그러한 사명감이 있기는 한 것인가?

어제 재판에서 우리 가족들이 흥분한 이유를 아시는가. 재판부는 퇴선방송을 했더라도 헬기의 소음 때문에 들리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는 김경일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참사 당시와 가장 유사한 조건에서 실험을 해보겠다고 했고, 만일 김경일의 주장이 사실로 입증된다면 퇴선방송을 안한 것이 304명 승객들의 죽음과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는 설명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안다. 어떠한 조건에서도 P-123정의 퇴선방송은 승객들에게 충분히 전달될 수 있음을. 아니, 피고인 김경일 자신이 훨씬 더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들이 흥분한 이유는 재판부가 이준석과 선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김경일에게도 면죄부를 주려 한다고 의심하기 때문이다. 아니, 김경일에 대한 면죄부가 아니라 구조를 안 한, 구조실패가 아니다. 구조실패는 구조를 시도했지만 결과적으로 못했을 때 쓰는 말이다.

"정부는 구조 시도조차 안 해... 해경은 절망만 던져줬다"

대한민국 정부는 아예 구조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구조를 안 해서 당연히 살아 돌아와야 할 내 딸 예은이를, 우리 아이들을, 사랑하는 가족들을 모조리 수장시켜버린 정부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수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수함정으로 여러 번 선정됐던 P-123정에 30년이 넘는 경력을 가진 피고인 김경일이 정장이었다. 그런데 경황이 없었다, 퇴선방송을 해도 안 들렸을 것이다, 이런 변명을 늘어놓을 뿐만 아니라 퇴선유도를 하라는 명확한 지시를 받고도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았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10시 10분에 내 딸 예은이와 통화했다. 해경이 왔다고 했다. 빨리 구조돼서 갈 거라고 했다.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라고 했다. 그리고 더 이상 연락이 되지 않았다. 지금도 예은이는 답이 없다.

극도로 흥분해 있던 예은이는 해경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안심했다. 그리고 휴대폰 배터리가 없는 친구에게 휴대폰을 빌려주며 함께 복도로 나가 자신을 구해줄 해경을 기다리며 줄을 서있었다. 해경이 왔으니 당연히 구출될 거라고 믿고 정신없이 밀치고 나가는 어른들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구출될 거라는 희망이 어느 순간 영문도 모르는 공포로 뒤바뀌는 처절한 고통을 느끼며 죽어갔다. 예은이는 4월 23일 오전 8시 3분에 그 친구가 얘기했던 3층 복도에서 발견됐다.

예은이에게 해경은 희망이었다. 250명 우리 아이들에게 해경은 희망이었다. 그런데 그 희망은 애타게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들을 외면했다. 당연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아이들에게 익사의 공포보다 더 끔찍한 절망을 맛보게 했다. 그런 절망 속에서 억울한 울음을 제대로 내뱉어보지도 못한 채 죽어갔다.

고문이 두려운 이유는 육체의 고통 때문이 아니라 벗어날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피고인 김경일과 해경이 살인마인 이유는 벅찬 희망을 안고 바라보던 아이들에게 절망만을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호흡을 절망 속에서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절망의 고통을 우리 가족들은 여전히 고스란히 느끼며 살아내고 있다. 더 이상 해경은, 대한민국 정부는 나를 지켜주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 속에서 국민들은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다.

검찰과 재판부에 다시 한 번 요구한다. 김경일을 마땅히 살인죄로 처벌해 주십시오. 뿐만 아니라 김경일보다 더 큰 책임을 져야 할 지휘관들은 물론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정부의 잘못을 낱낱이 드러내 강력히 처벌해 달라. 그래서 다시는 자신의 임무를 소홀히 하거나 국민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달라.

예은아! 네가 왜 그렇게 죽어가야만 했는지 반드시 밝혀내고, 책임을 물을게. 다시는 너와 같이 죽어가는 친구들이, 동생들이 안 생기도록 할게. 아빠가 반드시 그렇게 만들어놓고 나서 바로 예은이를 만나러 갈게. 외롭고 고통스러워도 조금만 참아줘. 미안해. 예은아."

"국민 생명 저급하게 취급하는 대한민국에 살고 싶겠나"

세월호가족대책위 전명선 위원장(자료사진).
 세월호가족대책위 전명선 위원장(자료사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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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선 위원장 : "단원고등학교 2학년 7반 찬우 아빠 전명선이다. 세월호 피해자 가족과 대한민국 국민, 해외에서 세월호 참사를 지켜본 분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선원 재판 등을 지켜보면, 304명이 희생된 참사임에도 단순히 36년형이나 17년, 15년, 7년형으로 마무리한다?

그렇다면 사실상 대한민국은, 국민의 생명을 가장 존중해야 하고 국민을 가장 생각해야 하는 재판부는 과거의 예를 들면서 국민의 생명권을 아주 저급하게 취급하는 것이라고. 생명의 값어치가 그 정도로 낮다는 재판 결과가 계속 나오면 그런 대한민국에서 어느 누가 살아가고 싶겠는가?

어떤 건물에 폭탄이 설치돼 있다고 하자. 그 이유는 살인이 아니라 건물만 없애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 안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지금까지 재판의 결과를 본다면, 법원은 '그건 검찰에서 반드시 밝혀내야 할 것'이라고 얘기할 테고, 만약 검찰이 밝혀내지 않는다면 (재판) 결과는 똑같을 것이다.

침몰해가는 배에서 제일 먼저 빠져나온 것은 선장과 선원이었다. 해경 123정은 기울어가는 배 주위를 돌기만 하다가 딱 한 번 접안하고 그들을 옮겨 태웠다. 선원들이 옷을 갈아입어서 그 정체를 몰랐다고 했지만, 선원들은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는 조타실에서 나왔고, 무전기를 갖고 있었다.

당연히 선원임을 알고 있었다. 해경은 그렇게 족집게처럼 476명이 탄 배에서 선원만 빼내왔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접안을 하지 않았다. 승객들은, 또 아이들은 배 안에 갇혀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선장과 선원의 명령을 따랐기 때문이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선장과 선원, 해경은 탈출하라는 말 한 마디고 하지 않았다.

너무 무서워서, 자기도 사람이라 너무 두려워서 세월호에 올라가지 못했다고 해도, 선원들의 무전기를 활용하거나 가장 먼저 신고한 학생의 휴대전화로 탈출을 유도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윙브릿지에 설치된 비상벨을 울리지도 않았다. 심지어 국정조사에서 밝혀진 청와대와 해경의 교신 내용에 의하면 해경은 그 당시에 구조단계가 아니라 (상황을) 지켜보는 단계라고했다.

그러나 (오전) 10시 4분 '저 지금 방안에 살아있어요.' 10시 9분 '저희 배 안에 있어요.' 10시 13분 '몰라요, 구조해준다는데' 이렇게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는 생명들이 있었고, 마지막 카카오톡 메시지 발신 시각이 10시 17분이었다.

이 점을 감안할 때, 123정장은 왜 적극적으로 구조하지 않았고 탈출 지시를 하지 않았는가 하는 상식적 의문에 명확하게 답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해경은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배에서 빠져나온 승객들만 보트에 태웠다. 승객 스스로의 탈출만 있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국민들과 저희 가족들이 바라본 세월호 참사이자 선장과 선원, 해경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번 재판과 지난 선원들의 재판 등을 볼 때 검사님과 판사님이 본 세월호 참사는 사뭇 다른 것 같다. 혹시 단순한 교통사고인데 희생자 숫자가 많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계신 것 아닌가 의심스럽다. 선원들 재판 때부터 기존 법리와 판례에 대한 강조가 계속 있었는데, 그 전례라는 것에 따르다 저희 아이들은 목숨을 잃었다.

전례 없는 판사를 두고 기존 판례와 법리를 존중하고 따를 수 없다. 그럴 거면 성능 좋은 컴퓨터로 따지면 되는 것 아닌가? 전례 없는 참사인 세월호 참사에 대한 재판인 만큼 또 참사 이후가 이전과 달라야 한다는 국민 기대 속에 진행되는 재판인 만큼 새로운 고민이 필요하다.

세월호 참사 수색 등을 책임져온 민간업체 책임자는 논란이 커지자 '우리는 구조업체가 아니고 사실 세월호를 인양하러 온 업체'라고 인터뷰했다. '그럼 구조는 누가 맡았냐'고 묻자 그는 '구조는 국가의 의무죠'라는 너무나 당연한 답을 들려줬다. 국민 구조 의무는 국가에 있다. 그런데 참사 당시 도대체 국가는 어디에 있었냐. 이 재판을 통해 국가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정확히 알고 싶다. 부디 저희들의 바람을 외면하지 말아 달라."


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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