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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피곤해. 하루만 종일 잤으면 원이 없겠다…."

이런 푸념 한 번쯤 안 해본 사람 없을 것이다. 한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이라면 이런 푸념은 어쩌면 사치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대부분의 직장이 60대까지 정년을 보장해 주지도 못 할 뿐더러, 제2의 삶을 준비해야 할지 모른다. 편안하게 연금 받으며 사는 삶이 아닌, 또 다른 치열한 삶을 말이다.

나 역시 이런 저런 고민과 불투명한 미래의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직장인일 뿐이다. 둘째를 낳고 맞벌이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한다. 집 문제, 아이의 교육문제, 건강문제, 부모님의 거취와 건강 등등 모든 것들이 고민이다. 그러다보니 정작 내 몸에 대한 걱정은 언제부터인가 등한시 되어왔다.

공황장애가 '연예인 병'? 직접 겪어보니 아니었습니다

공황장애는 별 다른 예고 없이 갑자기 찾아왔다.
 공황장애는 별 다른 예고 없이 갑자기 찾아왔다.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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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뉴스에서 연예인들이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다가 쓰러졌다는 소리,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는 소리 등을 흔히 듣는다. 그래서 공황장애를 우스갯소리로 '연예인 병'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나 역시 공황장애가 뭔지, 도대체 왜 그런 병에 걸리는지, 병을 앓으면 어떤 증상이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연예인만 스트레스와 힘든 일을 하는 것은 아닐 터, 일반인들 역시 무수히 많은 고초를 겪으며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 자신의 몸이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조금이라도 쉬었다 가면 될 것을... 그게 어디 맘처럼 쉽게 되겠는가.

첫째 아이가 올해로 5살이다. 매일 야근에 주말이면 마음 놓고 쉬지도 못하지만 평일에 퇴근하면 최대한 놀아주려고 했다. 주말이면 공원이나 동물원 등 자주는 못 가지만 최대한 놀아주려고 노력했다. 지난여름에 캠핑도 갔고,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에 힘든 줄 모르고 다녔다. 그러다 일이 터지고 말았다.

2014년 여름 어느 날, 평소처럼 출근을 해서 업무를 보고 있는데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아이의 몸에서 열이 나며 이상증세가 있는 것 같다는 원장의 말이었다. 그곳에서 원생들과 함께 지낼 수 없다며, 귀가 조치를 취해 주었으면 하는 말이었다.

맞벌이를 하는 아내와 연락이 닿지를 않았고, 어머니조차 집에 계시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부랴부랴 일을 정리하고 집으로 출발했다. 저녁시간이 다 되어 허기진 배를 달래려고 편의점에서 빵을 사서 차 안에서 먹으며 갔다. 그런데 갑자기 식은땀이 났다. 에어컨을 틀었는데도 땀이 가시질 않았다. 급기야 시야가 좁아지면서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안 된다. 여기서 정신을 놓으면 교통사고는 물론 내 몸이 어찌 될지 모른다.'

정말이지 미칠 지경이었다. 정신이 혼미하고 시야는 극도로 좁아졌으며 식은땀은 계속 흘렀다. 있는 힘껏 운전대를 꽉 부여잡고 있으니 잠시 뒤 평정심을 되찾고 조금 나아졌다. 불과 5분이 채 안 되었던 시간이지만 단순히 체한 것만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무사히 집에 도착해서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온 뒤 '수족구'라는 아이의 병명을 알았고, 그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내 예상대로 체한 것만이 아니었다. 토요일 저녁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편안하게 소파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대로 쓰러져서 1분 정도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괜찮아 졌다. 만삭의 아내는 무척이나 걱정을 했지만 괜찮다고 안심을 시켰다.

일요일인 다음날 오후, 어머니는 닭백숙을 사 주시겠다며 함께 가자고 하셨고, 어머니 그리고 아내와 함께 집 앞 식당에 갔다. 음식을 시키고 기다리는데 또 의식을 잃고 옆으로 쓰러졌다. 식당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의식을 되찾은 난 땀에 범벅이 되어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에 아내와 택시를 타고 가까운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병원으로 가는 도중 내 머리는 수많은 생각에 휩싸였다. 한 달 뒤면 태어날 둘째, 우리 가족이 있는데 혹 큰 병은 아닐까. 걱정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병원에 도착해서 몇 가지 검사를 하기 시작했다. 피검사, 소변검사, 뇌 CT, 심장초음파, 가슴 CT 등을 했다.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소견을 듣게 되었다.

모든 검사는 정상이었으며, 쓰러진 이유는 저혈압성 실신(미주신경 실신)일 것 같다는 소견이었다. 그러므로 원인을 찾기 위해 며칠 입원해서 다른 검사를 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3일 정도를 입원해서 심장 초음파 정밀검사 그리고 24시간 심장체크기기를 달았다. 걱정하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하루빨리 퇴원을 해야 한다는 것 말고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입원 당시에는 별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은 원인을 찾지 못 한 채 퇴원을 해서 집으로 왔다.

그런데 집에 와서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있는데 느닷없이 심장이 심하게 뛰었다. 이러다가는 곧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누워있는데도 쉽게 진정이 되지를 않았다. 약 10분 정도를 그렇게 있으니 심장은 잦아들었지만 내 몸은 정상이 아니란 것을 직감하게 됐다.

힘이 되어 준 가족... 몸이 신호를 보낼 때는 쉬자

다음날 간신히 출근을 했다. 마침 여름휴가를 앞두고 있었기에 집에서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하루 종일 헛구역질이 났고 식욕이 전혀 없었다. 배가 고프지도 않았고 팔과 다리에 전혀 힘이 없었다.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퇴원을 한 것이 내심 걱정이었다.

만삭의 아내는 퇴근 후 첫째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갔고 아내와 아이의 목소리가 저 멀리 울리기만 했다. 일어나지도 못하고 누워있는 내 신세가 정말 싫었다. 누구보다 건강하다고 믿었던 나였기에 그 실망감은 더욱 컸다.

그즈음 동생의 전화를 받았다. "형 혹시 모르니까 신경과를 한번 가보는 게 어떠냐"는 것이었다. 신경과? 전혀 생각지도 못 했다. 동생은 다음날 예약을 잡아주었다. 있는 힘을 다해 외출 준비를 하고 전철을 타고 가는 데 불과 한 정거장만 가면 되는 거리를 도저히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간신히 도착을 해서 숨을 헐떡거리며 의사를 마주했다. 그리고 의사가 내린 처방은 '공황장애, 불안장애'였다.

'공황장애' 영어로는 '패닉 디솔더(Panic Disorder)'이다. 예를 들어 심장이 뛰는 것을 우리 스스로 조절할 수 없다. 스스로 뛰는 것이다. 음식을 먹으면 소화가 되는 것 역시 스스로 조절할 수 없다. 이러한 작용들은 우리 몸의 신경들이 신경전달물질에 의해 뇌와 연결이 되고 모든 장기와 연결되어 명령을 내리게 된다. 그런데 이 명령이 잘못 전달되면, 뛰지 않았는데도 심장 박동이 빠르다. 하루를 굶어도 식욕은 없다. 흥분을 하면 흥분이 진정되지를 않는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상호작용이 불균형을 이루게 된다.

그래서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들은 다양한 고통을 호소한다. 소화가 안 되는 사람, 두통이 심한 사람, 어지럼을 느끼는 사람 등등 어디 한 곳이 꾸준히 아픈 것이 아니다. 온 몸을 돌아다니는 고통을 호소한다. 공황장애가 시작된 이유 역시 다양하다. 건축회사에 다니는 내 동생 역시 이 병을 앓고 있다. 장기출장으로 사막에 가 있다가 40도가 넘는 곳과 에어컨이 있는 사무실을 오갔으며, 허겁지겁 음식을 섭취하다 이 병에 걸렸다.

'연예인 병'이라고 농담으로도 건넬 말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많다. 다만 말을 못 할 뿐이다. 약에 의지해서 엉켜있는 내 몸의 신경을 안정시키는 데는 적게는 1년이 걸리고 많게는 2~3년은 기본이다.

내 몸은 신호를 주었을 것이다. '좀 쉬었다 가라'고 말이다. 그런데 가볍게 무시한 난 지난해 무너지고 말았다. 가족에게 걱정을 주었고 나 자신에게 실망을 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 다행히 지금은 약에 의존하며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지만 항상 주의 하고 있다.

가족이 있어서 힘이 됐다. 새 생명이 나에게 힘을 주었다. 연로하신 어머니의 걱정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모두가 힘을 주었고 안심을 시켜 주었다. 그래서 가족인가 보다.

부디 자신의 몸을 함부로 다루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우리 사회에는 말 못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혹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없는지 주위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태그:#공황장애, #실신,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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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평범한 한 아이의 아빠이자 시민입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 우리 아이들은 조금 더 밝고 투명한 사회에서 살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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