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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우리나라에 와인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와인을 잘 모르던 사람들도 너도나도 와인에 관심을 가지던 때였다. 나는 제법 오래 전부터 와인을 좋아했다. 관련 서적도 좀 읽고, 와인도 이것저것 사서 마셔보고, 관련 소품도 모으고, 와인 동호회도 몇 번 나갔던 나름 '와인 마니아'였다.

그래서 어딜 가나 와인 이야기가 나오면 대체로 나의 '잘난 척'이 시작됐다. 나의 얄팍한 와인 상식은 와인을 이제 막 시작한 사람들이나, 와인을 그저 즐기면서 마시는 사람들에겐 '아, 이 사람 와인 좀 아네'하며 대단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잘난 척도 적당히 해야 하는 법이다. 한 모임에서 신나게 와인 이야기를 하던 중 어떤 지인이 말했다.

"그럼 앞으로 와인 고를 때는 연진씨한테 전화로 물어보고 사야겠다."
"그럼요. 뭐든 물어보세요. 제가 잘 알려드릴게요."

설마... 진짜 전화를 하겠나.

"여기 마트에 왔는데. ○○ 와인 좋은 거야?"

"이거 괜찮아?" 전화 끊자마자 재빨리 검색

와인마니아였던 나, 자존심 지키려다...
 와인마니아였던 나, 자존심 지키려다...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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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그 지인 분에게 정말 전화가 왔다. '그저 인사차 전화했나보다'하며 아무 생각 없이 받았다. 지인은 마트에서 손님상에 올릴 와인을 고르는 중이라며 대뜸 와인 이름을 말하더니 물었다.

"이거 맛이 괜찮아? 한식이랑 잘 어울리나?"

생전 처음 들어보는 와인 이름에 많이 당황스러웠다. 사실 와인의 종류는 정말 방대하다. 수천, 수만 병을 마셔본 소믈리에가 아니고서야 와인 이름을 모조리 기억할 리 없고 맛은 더욱 기억 못한다. 그러나 나는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인지 "모른다"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아... 그 와인요. 그거보다는 △△이 좋은데... 근데..."

재빨리 머리를 굴려 지금은 오래 통화할 수 없는 상황이라 5분 뒤 전화하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재빨리 컴퓨터를 켜고 한식에 어울리는 와인을 검색했다. 인터넷 창을 몇 개 띄우고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검색한 와인을 주저리주저리 읊어 주고 나서야 통화를 마쳤다. '지금 내가 뭐하는 짓인가'하는 생각에 헛웃음만 나왔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부터 나의 와인 상식은 쉽게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와인에 대한 자존심을 내려놓기로 방향을 바꿨다. 요즘은 혹 누가 "와인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면, "네, 좋아하죠. 그냥 가볍게 즐기는 정도입니다"라고 말한다. 입은 근질거리지만 마음은 편하다.


태그:#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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