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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이주노동자 23만명 시대. 한국인들이 더럽고, 힘들고, 위험하다고(3D) 피하는 일자리에서 묵묵히 맡은 일을 해내는 이주노동자들. 그들을 빼고 한국의 산업을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의 노동인권에 대한 이야기는 많았지만 정작 속내를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이번 기획에서 편견과 차별의 대상이 아닌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할 이주노동자의 모습을 담아본다. [편집자말]
"다들 물어보는데 지금도 잘 몰라요. 왜 그랬는지... 어쩌다 그랬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그렇게 됐어요. 그래도 잘린 손가락을 가지고 바로 병원에 가서 이 정도로 쓸 수 있어요. 공단에서 1월 30일까지 병원 치료 다니라고 문자가 왔어요. 그 다음엔 어떻게 되는지 몰라요. 사장님은 사인해 줄 테니 나가라고 해요. 하지만 나가면 갈 데가 없어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요. 그냥 슬퍼요."

툰은 캄보디아 외국인노동자로 올해 23살 되는 청년이다. 2013년 9월 말 입국해서 사고가 난 지난해 9월까지 경기도 용인의 한 공장에 취업해 선반작업(절단작업) 일을 했다.

외국인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은 대부분 비슷하다. 더럽고, 위험하고, 힘들다. 소위 말하는 3D업종 중에서도 한국인들이 가장 기피하는 일에 투입되어 싼 임금을 받으며 빈자리를 메우고 있는 것이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2013년 한 해 동안 산업재해를 당한 외국인 노동자는 5586명으로 같은 기간 국내에서 발생한 전체 산재 건수 9만1824건의 6%에 해당한다. 전체 산재발생 건수는 줄고 있지만, 늘어나는 외국인 노동자 수만큼 산재 발생 건수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외국인 노동자 산재는 늘어나는 추세... 왜일까?

툰의 바람은 한국에서 더 일을 하는 것이다
 툰의 바람은 한국에서 더 일을 하는 것이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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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이 위험을 감수하기 싫어 피한 일자리에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이 들어가 일을 하다 보니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 외국인노동자가 일하는 곳이 대부분 영세한 공장이다보니 외국인노동자가 충분히 일을 익힐 숙련 기간이란 게 딱히 없다. 하루 12시간이 넘는 과도한 근로시간, 부실한 식사와 불편한 잠자리 등으로 체력과 집중력이 떨어지다 보니 사고가 빈번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툰은 손가락 하나만을 잃은 것을 고마워했다. 손이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 손목이라도 절단 되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할 때마다 온몸이 얼어붙는 듯 몸서리를 친다.

"서울대학 병원에서 수술 받고 3개월 만에 퇴원해서 지금은 용인에 있는 병원에서 통원치료를 받고 있어요. 손가락 봉합 수술 할 때는 손가락 4개가 모두 잘 붙기만을 바랐어요. 하지만 결국 두 번째 손가락 한 마디를 잃었어요. 지금은 남은 손가락으로 예전처럼 일을 했으면 하는 게 바람이에요. 아직은 아프고 힘도 없지만 치료가 끝나고 나면 예전처럼 사용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면 다시 일을 하고 싶어요."

지난 1월 중순, 다친 툰의 손을 잡아보았다. 두 번째 손가락의 첫 번째 마디가 잘려나가 뭉툭해졌다. 간신히 살린 나머지 세 손가락도 휘어 있었다. 내 손을 힘껏 쥐어 보라고 하니 아직은 통증이 있어 세게 잡지 못하겠단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다. 수술 후 나타난 특이 증상이란다. 통상 70~80%의 기능이 돌아오면 치료를 멈춘다고 하는데 툰의 상태는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도 툰은 벌써 일을 해야겠다고 성화다. 비자 기간이 한정되어 있는데 이렇게 아파서 쉬고 있으면 돈은 언제 버느냐는 것이다. 

"월급 120만 원 받아서 80만 원은 엄마한테 보내고 40만 원은 제가 써요. 전화비도 내고 옷도 사 입고 간식도 사먹고 생활비로 써요. 엄마는 내가 보낸 돈으로 논을 샀어요. 형 학비도 보태줬어요."

툰의 집은 프놈펜에서 버스로 4시간 정도 떨어져있는 스와이링이다. 부모님과 7남매가 나무로 만든 전통 시골집에서 살았단다.

"가게에 가려면 자전거 타고 좀 나가야해요. 아주 큰 가게는 없구요. 작은 슈퍼 같은 게 있어요. 살 만한 물건도 없어요. 우리는 생선하고 쌀 먹었어요. 논에 쌀이 있으니까 배고프지는 않아요. 사다 먹지 않고 땅에서 나는 걸 먹어요. 형제들이 많으니까 부자 아니에요. 학교는 공짜로 다니지만 책이랑 옷은 사야 하는데 힘들어요. 학교에서 점심밥 주지 않으니까 집에 가서 점심 먹고 다시 학교 갔어요."

툰의 집은 딱 식구들이 먹고 살만큼의 소작이 나오는 땅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7형제 중 형 한 사람이 2년 전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바로 위에 형과 툰을 빼고는 모두 결혼을 했다고 한다. 다른 두 형도 툰이 한국에 나온 후 따라 나와서 지금은 삼형제가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다. 툰의 어린시절 기억은 가난했지만 그렇다고 불행하지도 않았다. 너나 없이 모두 가난했기 때문에 그것을 불행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몇 년 전부터 툰이 살던 시골마을에 달러 바람이 불었다. 청년 한둘이 한국으로 일을 다녀오기 시작하더니 나무집을 화장실과 목욕탕이 딸린 시멘트 집으로 바꾸고 낡은 자전거를 타던 형들이 오토바이와 승용차를 몰고 다녔던 것이다. 할 일 없이 농사나 돕던 캄보디아 청년에게 한국행은 그야말로 꿈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안일을 돕고 있던 툰도 '코리안드림'을 꿈꿨다.

"한국에 오기위해 한국어학원에 다녔어요. TOPIC(한국어능력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면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다고 해서요. 시험 준비하고 수속하고 그러느라 200불 정도 썼어요. 다른 사람들은 돈이 더 많이 들었다고 해요."

없는 살림에 200불이면 큰 돈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툰과 부모님은 더 큰 돈을 벌기위한 투자라 생각하고 있는 돈 없는 돈을 긁어 모아 한국행을 지원했다. 가족의 기대와 지원을 힘입어 한국 땅을 밟은 것이다.

"인천공항에 내렸는데 기분 좋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어요. 공항에 내리면 공단사람이 와서 데려가요. 그래서 2박3일 동안 교육을 받고 그게 끝나면 사장님이 기다리고 있어요. 그래서 용인으로 왔어요."

툰이 한글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 이유

툰이 일하는 작업장. 철판을 자르는 일을 한다.
 툰이 일하는 작업장. 철판을 자르는 일을 한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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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청년 툰이 코리안 드림을 안고 들어간 회사는 용인에 위치한 선반회사로 철판을 잘라 판매하는 곳이다. 견고한 철판을 주문한 사이즈에 맞게 자르는 게 일이다보니 작업시 안전이 특히 요구되는 현장이다.

지난해 9월 툰이 일하고 있는 용인의 공장에서 툰을 처음 보았다. 올프렌즈센터(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외국인노동자센터) 승합차가 오후 8시 무렵부터 소규모 농장과 공장이 밀집해 있는 농로 길을 돌며 외국인 노동자들을 태웠다. 하루 일을 마치고 센터에 모여 한글 공부를 하기 위해서다.

툰은 한글교실에서도 열심인 학생이었다. 공장 일은 보통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 혹은 7시까지. 그러나 잔업이 있는 날도 많아 하루 평균 10시간 가까이 일을 했다. 그런 그들이 매주 하루 모여서 공부를 하는 것이다. 그를 처음 만난 9월만 해도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은 때라 샤워를 하고 나왔다고 하는데도 (작업장의 열기가 가시지 않아) 온몸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매주 화요일 저녁 열리는 한글공부 교실에서 열심히 공부한 툰과 친구들
 매주 화요일 저녁 열리는 한글공부 교실에서 열심히 공부한 툰과 친구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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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에 붉은 열성반점들이 돋아 끊임없이 가렵다며 긁었다. 땀을 너무 흘리고 폭염에 지치다보니 탈수로 실신해 병원 신세를 지는 경우도 흔하다. 다른 외국인노동자를 태우러 가는 동안 차 안에서 죽은 듯 곯아떨어지기도 한다. 그런데도 한글공부를 하겠다고 나오는 그들의 모습에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았다. 한국어 능력시험(TOPIC)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서 더 좋은 직장을 구하는 것이 이들의 또 다른 꿈이라고 했다.

툰은 특히 공부에 열심인 학생이었다. 모르는 건 열심히 물어보고 틀린 발음도 수시로 고치며 서툰 한글로 메모도 잘 했다. 하루 종일 무거운 철판을 옮기고 자르고 올리고 내리느라 온몸의 진이 다 빠졌을 것 같은데, 마지막 힘을 내서 내려오는 눈꺼풀을 들어 올려가며 수업에 집중하려 애썼다. 통원치료 중인 지금도 한글공부는 빠지지 않는다. 다쳐서 일은 쉬지만 공부는 쉬지 않겠다는 것이다.

"시험 잘 봐서 좋은 회사가려구요. 지금은 다쳐서 일을 못해요. 그래서 돈 조금만 나와요. 손 다 나으면 다시 출근하고 싶어요. 그런데 사장님이 일 못하니까 나가라고 해요. 사인(고용변동신고서)해 줄테니 다른 데로 가래요. 매일 나보고 나가라고 해서 힘들어요. 어떻게 할지 몰라요."

"손 아픈 건 참을 수 있는데, 일 못하는 건 힘들어요"

손 전체가 잘려나가지 않은 것이 고맙다는 툰
 손 전체가 잘려나가지 않은 것이 고맙다는 툰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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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봉합수술을 받은 툰은 3개월간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퇴원해서 지금은 용인 인근병원으로 통원치료를 다니는 상태다. 산재로 처리되어 병원비나 휴업급여(급여의 70%)는 나온다. 그러나 퇴직을 하게 되면 휴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런데도 고용주는 퇴직을 요구한다. 툰이 회사에 있으면 그를 대신할 외국인노동자를 더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작업장 당 고용할 수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수가 제한되어 있다).

그렇다고 고용주만 탓할 수는 없다. 현장에 한 사람의 구멍이 생겼는데 그것을 메울 만한 한국인 노동자를 구하기도 어렵거니와 구한다고 해도 훨씬 더 많은 보수를 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적은 인원이 무리를 하며 일을 이어가는 것이다.

툰과 함께 일하는 친구의 말을 들으니 툰의 공백 때문에 자기를 비롯한 남은 사람들이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이 줄어도 생산량은 줄이지 않기 때문에 잔업과 야근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 그러니 고용주가 툰을 압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무튼 툰은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란한 상황에 놓여있다. 고용주의 뜻대로 회사를 나온다면 불법체류자 신세가 되어 강제 출국 당할 것이 뻔하다. 회사를 나와 3개월 안에 재취업이 되지 않으면 불법체류자가 되는데 툰의 손은 아직 치료가 끝나지 않은 상태고 치료가 끝났다고 해도 손을 다친 외국인 노동자를 데려가 일을 시키려는 고용주가 쉽게 나서지는 않을 것이니 말이다. 툰의 입장에서는 매일 매일 더해지는 고용주의 압박을 견디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얼마나 서럽고 눈치가 보이겠는가.

"손 아픈 건 참을 수 있어요. 사장님 나가라고 하면 정말 힘들어요. 그냥 나가야 하나 생각도 해요. 센터에 선생님들이 아무 종이에나 사인하지 말고 사장님이 아무리 뭐라 해도 절대 나가지 말라고 했지만 사장님이 만날 그러면 저도 어떻게 할지 몰라요. 너무 힘들어요."

손가락이 잘려나가고 그 큰 수술을 했을 때도 울지 않던 툰이 요즘 자꾸 눈물을 흘린다.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내일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저 회사에 다녀야해요. 돈 벌어야 해요. 일 년 동안 번 돈으로 엄마 땅 조금 샀어요. 푸놈펜에서 의대에 다니고 있는 형 학비를 조금 보냈어요. 나는 돈 없어서 대학교에 못 갔지만 형은 장학금 받고 학교에서 일도 해서 돈 많이 없어도 학교 다녀요. 가족들이 모두 조금씩 돈 보내서 도와줘요. 이제부터는 내 학비를 마련하려고 했어요. 나도 형처럼 의대 가려고요. 의사 되고 싶어요. 그런데 손을 다쳤어요.

하지만 의사 꿈 포기하지 않아요. 어떤 선생님이 손가락 하나쯤 없어도 의사가 될 수 있다고 하셨어요. 손 얼른 나아서 일하면 학비 마련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한국 사장님 저 나가라고 하지 말아주세요. 이 회사를 나가면 걱정이 되요. 저 일 할 수 있는데 손 때문에 일 못하게 할 것 같아서 그래요. 열심히 치료 받아서 잘 나으면 일하게 해주세요. 다른 사장님 저 일하게 해주세요. 이렇게 돌아 갈 수 없어요. 돈 벌어서 돌아가고 싶어요.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의사가 되고 싶어요. 제발 저 내보내지 말아주세요. 일하게 해주세요."

툰이 눈물을 참으며 자신의 꿈을 이야기 한다. 지금 의대에 다니고 있는 형의 뒤를 이어 자기도 의대에 가고 싶다는 것. 이후에 좋은 의사가 되어 많은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캄보디아 사람들을 치료해 주고 싶다는 것이다.

스물세 살 캄보디아 청년의 꿈이 우리에게 달려 있다. 우리 산업현장에서 일하다 손가락을 잃은 청년이다. 그는 원망을 하는 대신 애원한다. 제발 자기를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열심히 일할 테니 일자리를 달라고, 힘든 일도 좋으니 일을 하게 해 달라고, 자신의 꿈을 이루게 해 달라고... 우리는 이 청년에게 무어라 답할 것인가.


태그:#이주노동자, #외국인노동자, #캄보디아, #산업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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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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