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괜찮아 사랑이야>의 한 장면.

SBS <괜찮아 사랑이야>의 한 장면. 장재열(조인성 분)과 그에게만 보이는 한강우(디오 분). ⓒ SBS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환시로 괴로워하던 조현병 환자 장재열(조인성 분)의 치료가 끝나더니, 무려 7개의 인격을 오가는 해리성 정체장애 환자 <킬미 힐미>의 차도현(지성 분)이 나타났다. 곧 등장할 <하이드 지킬, 나>의 구서진은 '까칠남'과 '달콤남'을 오가는 다중인격장애 환자다. <하트 투 하트>에서는 대인기피성 안면홍조증 환자 차홍도가 헬멧을 쓴 채 사람들을 피해 도망 다니느라 정신없다.

최근 드라마 추세만 보면 정신병동을 방불케 한다. 다행히(?) 환자를 치료할 의사도 있다. <괜찮아 사랑이야>에는 장재열의 트라우마를 보듬어주던 정신과 의사 지해수(공효진 분)가 있었고, <킬미 힐미> 차도현에게는 비밀주치의인 정신과 레지던트 1년 차 오리진(황정음 분)이 있다. <하트 투 하트>의 차홍도는 성격이 좀 고약하지만 대인기피증을 가장 잘 고친다는 정신과 의사 고이석에게 치료를 맡겼다.

'아픈 사람' 넘치는 드라마 세상...의사들의 치료법은?

"지해수 같이 정말 마음을 헤아려주고 도움을 주는 정신과 의사가 있다면 상담을 받아보고 싶어요. 정신과 가면 대충 말 들어주고 약 처방해주지 않나요?"

이제 '힐링'은 우리 사회의 화두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많이 팔렸다. 그럼에도 여전히 치유가 필요해서일까. 최근 정신적 질병을 가진 환자와 의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드라마들이 줄줄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해수 같은 의사"를 찾는 한 누리꾼의 바람이 '누구나 아픈' 시대를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실제 존재한다면 상담 한번 받아보고 싶은, 드라마 속 정신과 의사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환자를 치료하고 있을까.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성기만 그리는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정신과 의사 지해수(공효진 분).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성기만 그리는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정신과 의사 지해수(공효진 분). ⓒ SBS


<괜찮아 사랑이야>에는 지해수의 머리를 아프게 하던 환자가 있었다. 사람의 성기만 그리는 남학생이다. "얼굴은 작고 팔다리는 짧게, 성기는 정말 크게 그려. 이상하지 않아?"라는 지해수의 토로에 장재열은 "성기 그리는 게 뭐가 나쁘냐, 그림인데.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라고 툭 던졌다.

여기서 해답을 얻은 지해수는 환자를 만나 "자세히 보니까 너 그림 잘 그린다. 화가 해도 되겠는데?"라며 "나 사과할게. 네 사정도 있을 건데, 너도 힘들었을 건데, 미안해"라고 용서를 구했다. 그 환자는 "엄마가 애인이랑 옆방에서 자는 걸 봤다"면서 "엄마가 날 버리고 떠날 것 같아서. 그게 두려워서"라고 트라우마를 털어놨다. 치료의 시작이다.

<킬미 힐미> 오리진의 치료법은 더 친근(?)하다. 병원에 실려와 난동을 부리는 알코올중독 환자에게 "내가 술 사줄게. 나 막걸리 진짜 끝내주는 곳 알고 있다"면서 "술 마시면서 뭐가 힘든지 말해주면 다 들어주겠다"고 회유한다. 물론 오리진이 환자를 제압한 후 준 것은 막걸리가 아닌 신경안정제였다.

 MBC <킬미 힐미>에서 정신과 레지던트 1년차 오리진(황정음 분)은 7개의 다중인격을 지닌 차도현(지성 분)의 비밀주치의가 된다.

MBC <킬미 힐미>에서 정신과 레지던트 1년차 오리진(황정음 분)은 7개의 다중인격을 지닌 차도현(지성 분)의 비밀주치의가 된다. ⓒ MBC


<하트 투 하트>의 고이석은 까칠한 의사다. 아들의 환영을 보는 할머니에게 "아드님은 죽었다"고 인지시키며, 처방한 약을 먹으라고 닦달한다. 반면 할머니의 맨발을 본 차홍도가 "양말 없으세요?"라고 물으며 담요를 덮어주자, 할머니는 처음으로 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겠다고 양말 공장 일을 하던 날, 빵 사 먹으라며 50원을 줘서 내보낸 아들이 트럭에 치여 저세상으로 갔다. 난 양말 안 신어도 안 춥다"고.

할머니의 사연을 들은 차홍도는 "약 좀 안 먹고, 아들 좀 못 보면 어떠냐. 행복해하시는데"라고 쏟아 부었다. 하지만 냉정해 보이기만 했던 고이석이 할머니에게 처방한 것은 사실 종합비타민이었다.
 
이 의사들의 공통점은 모두 자신의 환자 못지않게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이라는 것. 지해수는 어릴 적 어머니의 불륜을 목격한 후 남자와의 스킨십을 거부하게 됐고, 오리진 역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가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 고이석은 형의 죽음으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인지 특정 환자 앞에 서면 이명과 함께 가슴이 답답해지는 증상을 겪고 있다.

이런 설정은 주인공인 두 남녀가 환자와 치료하는 의사라는 일방적인 관계를 넘어 서로를 치유하며 결국 '사랑'에 이르도록 하는 과정이기에 진짜 '치료'에 방점이 찍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정신과 의사와 환자가 등장하며 서로가 서로를 보듬는 '치유 로맨스'라서 시청자에게 건넬 수 있는 위안이 있다는 것을 세 의사의 치료방식에서 엿볼 수 있다.

<하트 투 하트>, 때로는 환자가 의사를 고친다

 tvN <하트 투 하트>의 한 장면. '주목받으면 죽는' 대인기피성 안면홍조증을 지닌 차홍도(최강희 분)와 '주목받ㅇ야 사는' 정신과 의사 고이석(천정면 분).

tvN <하트 투 하트>의 한 장면. '주목받으면 죽는' 대인기피성 안면홍조증을 지닌 차홍도(최강희 분)와 '주목받ㅇ야 사는' 정신과 의사 고이석(천정면 분). ⓒ CJ E&M


이제 막 남녀 주인공이 치료와 함께 사랑을 시작하려고 하는 <하트 투 하트>에서 '힐링'에 대한 답을 좀 더 들을 수 있었다.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연출자 이윤정 PD는 의사인 고이석과 환자인 차홍도에 대해 "고쳐주고 고침을 받는 게 아니라, 뒤집어 보면 홍도가 이석을 고쳐주고 있고, 각자 스스로를 고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 PD는 부족한 걸 채워가는 캐릭터를 통해 시청자들이 자신을 발견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드라마를 기획했다.

그러니까 정신병을 고치는 과정을 통해 드라마가 말하고 싶은 건 '좀 아프면 어때?'라고 할 수 있겠다. 이 PD는 "등장인물이 자신에 대해 못마땅한 게 좋다"면서 "(높은 기준보다) '이 정도면 돼'라고 스스로 안아줄 수 있는 '성장'에 주목하고 싶다"고 말했다.

1년 반 동안 작품을 쉬며 연기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했다고 고백했던 배우 최강희는 대인기피증을 조금씩 극복하고 있는 차홍도를 통해 힐링 중이다. "이석에게 홍도가 약이 되고 홍도에게 이석이 약이 되는 게 행복하다"는 그는 "예전에는 누가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이 있었고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면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최근에는 남들의 시선을 지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SNS에 '최선을 다 하고 기뻐하자'고 썼다"고 웃어 보였다.

어쩌면 지해수 같은, 고이석 같은 의사를 찾으러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의사조차 아픈 드라마 속 세상처럼 꼭 의학적인 진단을 받아야 환자인 것도 아니고, 정신병 환자라고 해서 '미친' 사람 취급하는 시대도 지났다. '치유의 가장 강력한 백신은 사랑이다'라는 <킬미 힐미>의 주제처럼 "괜찮아"라고 보듬어 주는 누군가(천정명 같은 의사라면 치료가 더 빠를 수도), 혹은 자신을 찾는 것이 조금 덜 미친 세상으로 가는 해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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