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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미터'

최근 가정 사건 등과 관련해, 법원 판결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거리'다. 재판부의 이른바 '접근금지명령'에서 100미터라는 거리는 일종의 고정된 양형이라 봐도 크게 틀리지 않다.

헌데 하필 왜 100미터일까? 100미터는 인간의 감각이나 기동력 등을 감안해 산출된 수치다. 100미터면 말로 남을 위협하기도, 돌멩이 등을 던져 위해를 가하기도 쉽지 않은 거리이다. 동시에 피해 우려가 있는 사람으로서는 도망치거나 임시 피신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간격이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미국, 유럽 국가 등의 법원에서도 100미터 안팎의 접근금지명령은 가장 흔한 편이다. 다만 총기 폭력이 빈번한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300미터짜리 접근금지명령이 나오는 예도 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총기의 유효 사거리를 고려한 조치이다.

사람도 동물처럼 거리의 지배를 받는다

사람은 동물이다. 식물과 달리 동물은 다른 동물이나 사물과 거리의 영향을 보다 크게 받는다. 다만 호흡 행위가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교환이라는 점을 평상시 의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거리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평소 충분히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동물학자나 행동심리학자들은 인간(혹은 동물)에게는 독특한 생활반경이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계량화가 가능할 정도로 사람들의 거리에 따른 인식 혹은 대응은 현저하게 다르다. 예를 들어 '아주 친밀한 거리'는 보통 50센티미터를 넘지 않는다. 젖을 물리는 엄마와 아기, 뽀뽀를 주고받는 연인 사이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친밀하지 않은 상대가 친밀한 반경 이내로 들어오는 수도 있다. 이는 서로에게 '침입' 혹은 '공격' 행위로 읽힌다. 야구 같은 운동경기에서 심판과 감독 혹은 선수가 코가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서 언쟁을 벌이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이런 경우다. 매우 친밀한 사람만 허용되는 거리에 허용되지 않는 인물이 불쑥 들어오면 극도의 긴장을 자아내게 돼 있다.

50센티미터~1미터 공간은 친한 친구끼리 공유하는 예가 많다. 커피를 나누거나 같이 음식을 먹을 때가 대표적인 예이다. 회사 동료는 이 같은 공간에 들어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예컨대, 회사 부서원 여럿이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각자 '선택하는' 거리는 서로간의 친밀도를 상당 부분 반영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대략 4미터 이상은 보통 '타자화' 거리로 받아들여진다. 예를 들면, 공청회나 강연 등에서 객석은 단상으로부터 4미터 이상 떨어져 있는 예가 많다.

물론 개인마다 또 상황에 따라 이런 거리감들이 조금씩 다를 수는 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스스로의 움직임을 뒤돌아보거나 관찰해보면 사람이 거리를 지배하고, 거리가 곧 사람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다.

동물들은 보다 노골적으로 거리를 통해 '의사'를 주고받는다. 예컨대, 아프리카 초원을 누비는 영양들은 사자가 대략 30미터 안쪽으로 접근해야 비로소 도망치기 시작한다. 100미터나 그 이상 떨어져 있을 때는 포식자를 보고도 피신하지 않는다. 

가축은 얼마나 길들여졌느냐에 따라 다른데 소의 경우 밀실 사육이라면 1.5미터, 방목 사육이라면 30미터 이내로 접근해야 피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사람에게나 동물에게나 거리는 동전의 양면 같은 존재이다. 가까이 있다 보면 친해질 수도 있고,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대상이 가까이 다가오면 사고가 생길 수도 있다. 거리를 잘 조절하는 것도 생활의 지혜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하는 정책 주간지 <위클리공감>(korea.kr/gonggam)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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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십이 코앞. 그러나 정신 연령은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승차 유랑인으로서 시한부 일상 탈출.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