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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쾅쾅!

천둥소리에 나는 잠이 깼다. 침실 커튼 사이로 희뿌옇게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창밖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온한 일요일 아침이었다. 꿈을 꾸었나? 나는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쾅쾅쾅쾅쾅!

천둥소리가 아니었다.

'도대체 누구야, 이 시간에!'

가만, 혹시 옆집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나는 벌떡 일어나 현관문으로 갔다. 빼꼼히 연 문틈 사이로 보이는 건 빈 복도뿐, 1월의 찬바람이 훅 들어왔다. 으스스 몸을 떨며 문을 닫으려는 순간, 다시 쾅쾅쾅!

천둥소리에 깬 잠... 천둥이 아니라 문 두드리는 소리였다

칭다오에서 고가 아파트와 명품 백화점, 유흥가가 모여 있는 올림픽 요트 경기장 부근.
 칭다오에서 고가 아파트와 명품 백화점, 유흥가가 모여 있는 올림픽 요트 경기장 부근.
ⓒ 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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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는 복도 저쪽 끝에서 났다. 나는 고개를 내밀어 보았다. 키가 크고 늘씬한 젊은 여자가 부츠 신은 발로 복도 끝집 문을 마구 차고 있었다.

"문 열어, 문 열란 말이야!"

여자의 앙칼진 목소리가 따가웠다. 그 집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여자는 주먹과 발로 문이 부서져라 두들겨댔다. 문고리를 잡고 마구 흔들어대는 여자의 몸이 휘청거렸다.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갑자기 여자가 몸을 획 돌려 우리 집 쪽으로 향했다. 20대 초반의 얼굴에 이목구비가 또렷했다.

놀란 나는 얼른 문을 닫았다. 복도에서 거칠고 빠른 걸음으로 왔다 갔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손인지 발인지 복도 벽을 꽝 치는 소리가 들렸다. '외박한 딸을 벌주고 있나 보군', '그나저나 저 집 부모도 참 대단하다', '이러다가 일요일 새벽에 이웃 사람들 잠 다 깨겠네' 나는 그렇게 짐작했다.

거실 창문 밖으로 텅 빈 거리가 보였다. 그 겨울은 유달리 추울 거라고 했다.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길거리는 꽁꽁 얼어버린 듯했다. 저 칭다오 바닷물도 얼었으려나. 그 때였다. 복도에서 '흑흑'도 아니고 '악악' 대며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놀람과 호기심에 나는 다시 문을 살짝 열어 보았다. 그런데,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여자는 그 집 문 앞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롱코트, 부츠, 스웨터, 가죽 스커트, 검정색 스타킹, 속옷이 흩어져 있었다. 맨몸의 여자는 얼음장같은 복도 바닥에 손바닥을 내리치며 "문 열어, 문 열어, 문 열어"하고 발악을 했다. 오스스 소름이 돋았을 여자의 몸이 발작적으로 떨렸다.

갑자기 여자가 벌떡 일어났다. 풍성한 파머머리가 여자의 허리께에서 출렁거렸다. 여자는 문에 머리를 마구 찧어대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문 열어, 문 열어" 여자의 목소리가 짱짱한 꽹과리에서 퍼석거리는 두부로 느껴질 때쯤, 여자는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그제야 그 집의 문이 열렸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의 중년 여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말없이 바닥에 널브러진 옷가지들을 주워 젊은 여자의 몸에 걸쳐 주었다. 진이 다 빠진 젊은 여자는 중년 여자에게 고분고분했다. 중년 여자는 젊은 여자를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잠시 후 집안에서 우당탕 소리가 났다. 중년 남자의 벌겋게 달아오른 목소리와 젊은 여자의 기진한 흐느낌이 뒤엉켰다.

아파트 경비원이 와서 그 집 문을 두드렸다. 중년 남자가 옷을 다시 입은 젊은 여자를 문 밖으로 끌어냈다. 여자는 문을 붙잡고 버둥거렸다. 두 명의 경비원이 양쪽에서 여자의 팔을 붙잡았다. 엘리베이터홀로 질질 끌려가는 여자의 뒤통수에 중년 남자는 가래를 뱉듯 욕설을 내지르고 쾅! 문을 닫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복도는 순식간에 적막에 싸였다. 칭다오에 좀처럼 내리지 않는 눈이 복도 창밖에 흩날리고 있었다. 신년 초 일요일 아침을 찢어 놓는 소음에도 같은 층에 사는 어느 누구도 나와 보지 않았다. 이방인 한 명만 문틈으로 훔쳐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헷갈렸다.

봉건사회의 전유물인 축첩... 현대 중국에 부활하다

광둥성의 성도 광저우의 주장신청(珠江新城) 건물군. 2010년 아시안 게임을 계기로 유명한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물들이 들어섰다.
 광둥성의 성도 광저우의 주장신청(珠江新城) 건물군. 2010년 아시안 게임을 계기로 유명한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물들이 들어섰다.
ⓒ 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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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나는 중국인 친구에게 그 사건을 이야기했다. 대답은 내 짐작대로였다. 말로만 듣던 '얼나이(二奶, 첩)'와 '디싼저(第三者, 혼외 애인)', 이웃집 남자의 그녀는 어느 쪽이었을까. 여자의 적나라한 몸부림은 무슨 의미였을까. 배신 당한 사랑에 대한 분노였을까, 보상 받지 못한 대가에 대한 항의였을까. 중산층 아파트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 얼나이와 디싼저는 갑부나 고위 간부의 전유물이 아니란 말인가.

중국에서 얼나이와 디싼저는 고위 공무원의 부패·뇌물·불륜 시리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부패 시리즈의 주인공과 등장하는 여성의 숫자는 다르지만 레퍼토리는 뻔하다. 오늘날 돈과 권력을 가진 중국 남성들은 마치 자신이 역대 중국 황제라도 된 양 여성편력에 빠져있다.

사업가가 아닌 고위 공무원이라면 여러 첩과 애인을 거느리기 위하여 뇌물이 필요하다. "하늘 아래 공짜 점심은 없다"는 중국에서 뇌물은 각종 뒷거래와 불공정한 이권과 연결된다. 결국 불륜·뇌물·부패 관리는 하나의 사이클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부패 관리를 폭로하는 일등공신이 내연녀·아내·자식 심지어 당사자라는 점이다. 지난 2010년 사형 당한 충칭시 전 사법국장 원창(文强)을 고발한 사람은 그의 아내였다. 2012년 말 시진핑 체제에서 적발된 류톄난(劉鐵男) 국가발전개혁위 부주임의 비리는 이익 다툼으로 관계가 나빠진 내연녀가 고발을 했다. 광시(广西) 장족(壮族) 자치구의 한펑(韩峰) 전 담배전매국장과 충칭시(重庆市) 베이베이취(北碚区) 전(前) 당서기 레이정푸(雷政富)는 성관계 동영상과 섹스 일기가 유포되는 바람에 비리가 드러났다.

몇 년 전 산둥에서는 아버지의 외도와 비리를 참다못한 딸이 고발한 사건도 있었다. 2013년 1월에 발표한 중국 인민대학의 보고서에 의하면 2012년 부패로 적발된 관리의 95%가 정부(情婦)를 두었다. 일단 부패관리 이야기가 인터넷에 올라오면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를 통해 일파만파로 번진다. 그 참에 일반인들은 빈부격차, 불공평한 기회, 고위 간부의 부정부패에 대한 평소의 불만을 터뜨린다. 여론을 의식한 당국은 적발된 관리를 일벌백계로 다루거나 정적 제거용으로 활용한다.

그런데 사회주의 국가에서 봉건제의 폐습인 축첩과 혼외정사가 어떻게 활개를 칠 수 있을까? 1950년 새로운 혼인법이 공포되면서 일부일처, 혼인의 자유, 남녀평등을 원칙으로 하고, 봉건제 관습인 일부다처와 매매혼이 금지됐다. 이혼과 과부 재혼의 자유도 인정되었다. 연애·결혼·이혼이 자유로워진 대신, 사회주의 이념 아래 성은 금기시되고 억압됐다. 매춘·축첩·풍속영업이 근절됐다.

하지만 이론과 현실은 다른 법이다. 여성다운 복장마저 금지된 문화대혁명 시기에도 하방(간부·지식인의 관료화를 막기 위해 실시된 노동운동)된 남성 지식인과 농촌 처녀의 연애와 불륜이 있었다. 하방된 지식인 여성은 도시로 돌아가기 위해 인민공사 간부에게 몸을 바쳤다. 기혼자들의 변심과 혼외정사도 심심찮게 일어났고, 배우자의 출신성분 때문에 자신의 앞길이 막힐까봐 이혼을 하기도 했다. 그 엄혹한 시대에도 은밀하게 얼나이와 디싼저가 존재했던 셈이다.

얼나이가 본격적으로 부활한 것은 역시 시장경제가 도입된 개혁개방 이후이다. 1990년대 초 경제특구로 지정된 광둥성에 사업하러 온 화교 사업가들이 젊은 여성들과 관계를 맺다가 나중에는 아예 현지처를 두었다. 그것을 광둥성 출신 부자들이 따라했고, 점차 상하이, 베이징 등 대도시의 신흥 부자들에게 유행처럼 퍼졌다.

1990년대 중반에 이르면 얼나이 현상은 중국 전역으로 번졌다. 얼나이의 발생지 광둥성 선전(深圳) 교외에는 전국 각지 유력 인사들의 얼나이들이 모여 사는 타운이 조성되어 있을 정도다. 얼나이는 대개 비빌 언덕이 없는 젊은 여성과 가난한 여대생들이었다. 한 평생 직장 생활을 해도 얻을 수 없는 집·차·사치품·생활비를 대가로 받았다. 40년간 학습된 사회주의 윤리가 시장경제 앞에서 무너졌다. 이제 얼나이는 타파해야 할 봉건제의 폐습이 아니라 부와 성공을 표시하는 자랑거리가 되었다.

돈을 위해, 출세를 위해... 해체되는 가족

개혁개방 초기 경제특구로 지정된 후 인구 30만 명의 농어촌에서 1300만 명의 도시로 변한 선전.
 개혁개방 초기 경제특구로 지정된 후 인구 30만 명의 농어촌에서 1300만 명의 도시로 변한 선전.
ⓒ 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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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대의 얼나이는 과거의 첩과 차이가 있다. 장이머우의 영화 <홍등>에서처럼, 예전에는 공식적인 가족에 포함되어 남자 집에 들어가 살았다. 그곳에서 첫째 부인에게 옴짝달싹 못하고 여러 첩들과 경쟁을 하며 살았다. 현대의 얼나이는 가족이 아니고 따로 마련된 집에서 독자적인 생활을 한다.

또 가난한 젊은 여성이 얼나이가 되는 것도 아니다. 여성 사업가는 사업상 권력자의 보호가 필요해서, 전문직 여성은 더 큰 출세의 기회를 잡기 위하여 스스로 얼나이나 디싼저가 되는 경우도 있다. 서로의 욕망과 이익을 위하여 공생하다가 관계가 틀어지면 남자는 여자를 협박하고 여자는 남자를 고발한다.

굳이 얼나이나 디싼저가 아니더라도 외도는 계층과 연령에 관계없이 늘어나고 있다. 외도 상대는 유흥업소 여성 외에도 직장 동료인 오피스 파트너가 많다고 한다. 특이한 외도도 있는데, 온라인 공간에서 만난 사이버 결혼이다. 나는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익명의 남녀가 온라인 공간에서 심심풀이로 하는 역할극 게임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사이버 결혼 문제는 의외로 심각하다. 현실의 배우자와 정상적인 결혼생활이 힘들 정도이고, 상당수는 사이버 밖으로 나와 불륜을 저지른다고 한다. 칭화대학교 중국어 교재에 등장할 정도였으니 이미 사회적인 문제인 모양이다.

외도와 상관없을 것 같은 농민공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그들의 외도에는 서글픈 현실이 있다. 내가 항저우에서 만난 여성 농민공은 농민공의 외도와 이혼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큰 이유는 부부가 도시와 농촌에 따로 떨어져 살기 때문이다. 배우자 한 쪽이 도시에서 돈을 버는 동안 다른 한 쪽은 고향에서 부모를 모시고 아이를 기른다.

한 푼이라도 더 모으려고 시골집에 송금만 하고 몇 년에 한 번씩 고향에 들른다. 그동안에 부부의 정은 식어 버린다. 여자는 여자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가까운 곳에서 마음과 몸을 기댈 상대를 찾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 이혼을 하게 된다. 가족의 미래를 위하여 농민공이 된 대가가 가족 해체라니!

그 이야기를 들려준 20대 후반의 여성도 남편과 떨어져 살고 있었다. 그 가정은 특이하게 아내가 도시로 나와 돈을 벌고 남편은 시골집을 지키고 있었다. 이야기 끝에 그녀는 속마음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고향에 있는 남편에게 아무런 정이 없어. 남편은 그 젊은 나이에 도시가 싫다며 고향에만 있으려고 해. 한마디로 무능한 거지. 둘이 함께 벌면 좋으련만. 그래도 나는 이혼은 안 할 거야. 내 체면과 아들을 위해서. 내 꿈은 말이야, 어서 돈을 모아서 도시에 집을 사는 거야. 아들을 도시에 데려와서 공부를 시키고 옆에 꼭꼭 붙어 살 거야. 남편과 시부모는 어쩌냐고? 도시에서 살기 싫다면 알아서 하겠지. 난 아들만 있으면 돼."

중국에서 날로 급증하는 이혼 사유 중 첫 번째가 경제 문제나 성격 차이보다 외도라고 한다. 당 간부의 엽기적인 남녀관계부터 화이트칼라의 오피스 파트너,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사이버 결혼과 인터넷 채팅을 통한 외도, 별거생활로 인한 농민공의 외도까지 다양하다.

2001년 중국정부가 개정한 혼인법에는 중혼 금지, 피해자 구제, 부부재산을 공유재산과 개인재산으로 명확하게 구별, 이혼 책임자의 배상원칙 등이 있었다. 그 때에도 중혼·외도·이혼이 상당한 문제였음을 알 수 있다. 새 혼인법에 관계없이 외도와 이혼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나는 지금도 1월이면 그 싸늘하고 살벌한 아침의 광경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신년 초 눈가루가 날리던 칭다오의 일요일 아침, 내가 살던 아파트 이웃집 문을 절망적으로 두들겼던 20대의 그녀는 지금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태그:#얼나이, #디싼저, #중국인의 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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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이 좋다. 길이 없지만, 내가 걸어가면 길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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