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의 줄거리나 주요 장면이 포함돼 있습니다.

"견딜 수 있으면, 해낼 수 있다."

일본군과의 치열한 전투, 태평양에서의 47일간의 조난, 그 조난 생활보다 더 혹독했던 포로수용소 생활 등등... 영화 <언브로큰(unbroken)>의 실제 인물인 루이 잠페리니가 겪은 고난들은 저 격언으로 버티기에는 너무 강도가 심한 것들이었다.

그런 고난들은 끊임없이 저승사자처럼 앞에 나타나 주인공 뒤편에 죽음의 그림자를 길게 늘여 놓았다. 전투 중에는 일본의 제로센 전투기가 저승사자였고, 태평양의 망망대해에서는 상어떼들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그런 저승사자 중에서 가장 악랄했던 건, 일명 '새'라고 불렸던 포로수용소장 와타나베였다. 저승사자들은 주인공의 명줄을 조여 왔다. 그런 생지옥과 같은 상황이 계속 펼쳐지니, 필자의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어떤 수녀님 한 분이 연신 이런 말을 내뱉었다.

"세상에... 세상에..."

필자는 침묵을 지켰지만, 마음 만은 똑같았다. 신에 가호라고는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주인공에게 크게 감정이입이 됐던 것이다. 

언브르큰 포스터

▲ 언브르큰 포스터 ⓒ 언브로큰 홈페이지


# 생지옥을 견딜 수 있게 해 준 격언

"견딜 수 있으면, 해낼 수 있다"는 청년 멘토 프로그램에 잘 어울릴 것 같은 좀 '말랑말랑'한 격언이다. 하지만 그 격언은 주인공 루이 잠페리니에게 숨을 불어넣어줬고, 그가 역경을 극복할 수 있게 큰 버팀목이 되었다. 작은 말 한 마디가 생지옥을 벗어나게 하고, 저승사자들을 따돌리게 만든 원동력이 됐던 것이다. 

사실 저 격언은 요한계시록에 있는 문장인데, 루이에게 그의 형이 말한 것이다. 루이는 우유통에다 술을 숨겨 먹을 정도로 삐딱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러던 중 루이의 형은 동생에게 달리기에 대한 재능을 발견하고 그에게 육상을 권하게 된다. 하지만 반항아인 그가 순순히 달리기에 맛을 들였겠는가? 형은 투정을 부리던 루이에게 일침을 가하며 저 격언을 이야기했던 것이다.

그 격언을 밑거름 삼아 루이는 열심히 달렸고, 결국 미국 육상 대표로까지 선발된다. 맛보기(?)로 참가한 1936년 독일 베를린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큰 두각을 나타냈던 루이는 다음 올림픽을 기약한다. 다음 올림픽은 1940년 도쿄 올림픽이었다. 물론 도쿄 올림픽은 2차 대전으로 인해 개최되지 못했다.

루이에게 도쿄 올림픽은 꿈의 무대였다. 하지만 그 꿈은 아주 비극적으로 현실화가 된다. 국가대표로 올림픽 주경기장에 선 것이 아니라 도쿄 외곽에 있는 포로수용소로 끌려왔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루이는 무려 850일 동안 총 3번의 수용소 생활을 하게 된다. 콰절런 섬(먀샬제도 인근)의 야전수용소에서 시작한 생활은 오모리(도쿄 인근)를 거쳐 역사상 최악이라는 나오에츠 수용소에서 절정을 이루게 된다.

나오에츠는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은 수용소였는데 이곳에서 포로들은 석탄 운반 노역에 처하게 된다. 작업을 하다 목숨을 잃을 정도로 포로들은 엄청나게 혹사를 당한다. 한마디로 그곳은 죽음의 수용소였던 것이다.  

와타나베 와타나베 역할을 한 배우는 록밴드 출신인 미야비이다. <언브로큰>에 대해 심기가 불편했던 일본 우익들은 미야비에게도 비난의 화살을 쏘아댔다. 그가 재일동포 3세라는 것을 트집잡았던 것이다.

▲ 와타나베 와타나베 역할을 한 배우는 록밴드 출신인 미야비이다. <언브로큰>에 대해 심기가 불편했던 일본 우익들은 미야비에게도 비난의 화살을 쏘아댔다. 그가 재일동포 3세라는 것을 트집잡았던 것이다. ⓒ 언브로큰 홈페이지


# 일본 우익들을 불편하게 한 포로수용소 장면

주인공이 석탄 노역에 시달린 북방의 수용소 장면을 바라보고 있자니, 1944년에 사할린으로 징용된 필자의 외할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강제로 사할린 탄광으로 끌려간 외조부께서는 하루 12시간 이상의 중노동에 시달리셨다고 한다. 죽도록 고생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 상황을 돌이키시는 것이 괴로우셨는지, 외조부께서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말씀을 아꼈다.

외조부께서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말을 아끼셨지만 <언브로큰>에서는 순화시켜서 이야기를 전개시켰다. 원작에서는 포로들이 생체실험에 동원되기도 했고, 심지어 인육까지 먹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감독인 안젤리나 졸리는 그런 부분을 전혀 담아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순화된 내용조차도 일본 우익들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언브로큰>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회자되는 부분은 이 포로수용소 장면이다. 이미 많은 내외신 언론보도에도 언급됐듯이 일본 우익들은 이 포로수용소 장면을 무척 불편해 한다. 포로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강제노역 부분을 지우고 싶었을 것이다. 도쿄수용소부터 저승사자처럼 굴었던 와타나베의 악독함을 완전 부정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뿐이겠는가? 사실 그들이 부정하는 것들이 어디 한 두 가지인가? 2014년 9월에 있은 고노 담화 흔들기에는 아베 신조 총리가 직접 나서기까지 했다. 만주에서 생체실험을 벌였던 731부대는 아예 존재자체도 부정하고 있다. 외조부가 당한 강제 징용이나 근로정신대에 대해서도 한일청구권 소멸을 들어 그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안젤리나 졸리 <언브로큰>의 감독.

▲ 안젤리나 졸리 <언브로큰>의 감독. ⓒ 곽동운


# 견딜 수 있으면, 해낼 수 있다!

주인공 루이 잠페리니가 더욱더 칭송받을 수 있는 건 그가 조국을 배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라디오 방송에 나가 써준 대로 읽기만 하면, 안락한 삶을 제공한다는 유혹을 뿌리치고 다시 혹독한 포로수용소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렇게 루이는 저승사자들의 위협과 안락한 삶의 유혹을 참아냈고 끝까지 견뎌냈다. 그래서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게 된다. 비록 도쿄가 아닌 나가노 동계올림픽이었지만 그는 성화 봉송주자로 나서는 영광을 누린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필자는 "견딜 수 있으면, 해낼 수 있다"는 격언을 입에서 중얼거렸다. 영화관 밖에 나와서는 새삼스럽게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소중히 여겼고, 또한 한 끼 식사도 감사히 먹었다. 물론 그런 작은 것들에 대한 감사를 언제까지 이어갈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저 격언이 벌써부터 필자의 입에 감긴다는 것이다. 덕분에 좋은 격언을 입버릇으로 삼게 됐다.

글을 마치기 전에 한 가지 집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다. 올해는 2차 대전 종전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더불어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런데 세월만 흘렀지 일본 우익들의 사고는 아직도 욱일승천기가 펄럭이는 그 시절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그래서 한일관계도 아직 그 자리를 계속 맴도는 것 같다. 일본의 과거사 부정이 계속된다면 70주년이 되든, 100주년이 나아지는 건 하나도 없을 것이다.

한편 일본에게 비판의 화살을 날리듯 우리 자신에게도 그 화살을 날려야 할 것이다. 왜? 광복된 지 70년이 넘도록 아직 친일매국노 청산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학사 역사교과서 파동과 같은 일도 못 처리하면서 일본에 과거사 청산을 요구하는 이중적인 행보도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일본 출신 '와타나베'에 대한 청산을 요구하려면 우리 안에 있는 조선 출신 '와타나베'에 대한 청산이 우선이다. 제대로 청산해야 일본 우익들에게 목소리를 높일 수 있지 않겠나.

덧붙이는 글 안녕하세요? 역사트레킹 마스터 곽작가입니다. http://blog.daum.net/artpunk
언브로큰 루이잠페리니 포로수용소 와타나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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