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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눈꽃축제. 안개 속에서 얼음썰매를 타는 아이들.
 대관령 눈꽃축제. 안개 속에서 얼음썰매를 타는 아이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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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강원도에는 그렇게 많은 눈이 내리지 않았다. 예년에 비하면 눈이 거의 내리지 않은 편이다. 지난해만 해도 영동 지역이 폭설로 도로가 끊기고, 외딴 곳에 사는 주민들이 눈 속에 고립돼 구조 요청을 해야만 했던 것과는 영 딴판이다. 오히려 겨울 가뭄이 심해 문제가 되고 있다니,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하긴 하늘이 하는 일을 인간이 다 알 수는 없는 일이다. 인간이 하는 일을 하늘이 알아서 도와주기를 바라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눈이 내려야 할 때, 그것도 눈이 내려야 할 곳에 눈이 내리지 않으면, 그냥 가만히 앉아서 눈이 내리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그곳이 눈을 소재로 한 축제를 개최해야 할 장소라면 더욱 더 그렇다.

인공 눈이 대신한 눈꽃축제

눈조각장 입구.
 눈조각장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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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 사진을 찍는 사람들.
 기념 사진을 찍는 사람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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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군은 원래 눈이 많이 내리기로 소문난 곳이다. 평창군에서도 특히 대관령면은 더욱 더 눈이 많이 내리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스키장이 가장 먼저 열린 곳도 대관령면이다. 서양 스키가 들어오기 전부터 주민들이 나무로 만든 '전통 스키'를 타고 멧돼지와 토끼 사냥을 나가곤 했던 곳이니 두 말 해 무엇하랴.

그곳 대관령면에서는 매년 눈꽃축제가 열리고 있다. 그런데 올해 대관령 눈꽃축제는 하늘의 힘을 빌리지 못했다. 오로지 인간의 힘으로 축제를 열었다. 인공으로 만든 눈이 하늘에서 내리는 눈만큼 자연스럽지는 못하다. 인공 눈은 하늘에서 분분히 내리는 눈만큼 부드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축제를 여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던 모양이다.

관광마차를 끄는 당나귀.
 관광마차를 끄는 당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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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다행인 것은 축제장에 어렵게 쌓아 놓은 눈이 햇볕에 녹아내릴 걱정은 좀 덜하다는 점이다.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이 계속되는 덕분에 눈이 녹아내릴 틈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 해도 결국 하늘이 도운 셈이다. 그래도 눈꽃축제가 열리는 곳에 눈이 내리지 않는 건 영 아쉽다. 세상에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눈송이만큼 낭만적인 것도 없기 때문이다.

눈이 내려야 할 때 눈이 내리지 않은 아쉬움 때문이었는지, 지난 15일 오후 눈꽃축제가 열리는 대관령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깔렸다. 안개가 산과 마을을 하얗게 뒤덮었다. 그 안개 때문에 하늘이 마치 함박눈이라도 내리는 것처럼 뽀얗다. 수십 미터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시야가 흐린 게 눈이 내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안갯속 썰매타는 아이들

짙은 안개 속에서 즐거운 비명을 내지르며 스노우 봅슬레이를 타는 사람들.
 짙은 안개 속에서 즐거운 비명을 내지르며 스노우 봅슬레이를 타는 사람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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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탄 얼음썰매를 앞에서 끌고 가는 어머니와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아버지. 오묘한 풍경이다.
 아이가 탄 얼음썰매를 앞에서 끌고 가는 어머니와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아버지. 오묘한 풍경이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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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밀어닥친 안개 탓에 도로 위를 지나가는 차들이 전조등을 밝히기 시작한다. 안갯속으로 도로 주변에 늘어서 있는 나무와 건물들이 희미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그 풍경이 마치 폭설 속에 갇힌 작은 도시를 연상시킨다. 이날 기온이 좀 더 낮았더라면 길가 가로수에 서리꽃이 화사하게 피었을 것이다. 꿩 대신 닭이라고, 안개가 눈을 대신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축제장 역시 눈이 내리고 있는 것만큼이나 평화로운 풍경이다. 눈이 내리는 것만큼이나 환상적이다. 안갯속에서 썰매를 타는 아이들이 '겨울왕국'을 연상시킨다. 온통 하얗게 얼어붙은 세상, 동화 속의 한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 와중에도 어른들은 여전히 아이들의 시중을 드느라 정신없이 바쁜 모습이다. 동화와 현실이 묘하게 중첩돼 있다.

눈으로 만든 행성 위에 홀로 서 있는 어린왕자.
 눈으로 만든 행성 위에 홀로 서 있는 어린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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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양띠 해임을 알리는 양 조각.
 올해가 양띠 해임을 알리는 양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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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면서 하얀 눈조각들도 점차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안갯속에 파묻혀 서서히 윤곽을 잃어가고 있다. 눈조각들이 안개에 천천히 녹아들어가고 있는 것 같은 풍경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안개와 눈을 구분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눈조각들을 보고 있으려니, 이 세상이 어디가 눈이고 어디가 안개인지 알기 어렵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꽃축제'는 결국 '안개축제'로 변하고 만다. 눈꽃이 안개에 휩싸이는 과정이 상당히 비현실적이다. 아마도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이곳이 바로 속세가 아닌 별천지라네)은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그때 마침 뒤늦게 눈조각장을 찾아온 어린아이들이 함성을 지르며 눈밭 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이 보인다. 그 아이들이 아니었으면, 눈과 안개를 구분하는 일은 더욱 더 어려웠을 것이다.

'때'를 잘 맞춰야 하는 겨울 축제

눈조각장 한가운데 서 있는 탑 모양 얼음 조각.
 눈조각장 한가운데 서 있는 탑 모양 얼음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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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만든 전망대에서 조심스럽게 내려오는 아이들.
 눈으로 만든 전망대에서 조심스럽게 내려오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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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실'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눈조각장을 벗어나면서, 이제는 다시 집으로 돌아갈 일이 걱정이다. 안갯속에 해까지 져버려, 세상이 칠흑같이 어둡다. 때맞춰 내비게이션까지 작동하지 않는다. 낯선 도시, 낯선 길 위에 발이 묶일 상황이다. 온 정신을 집중해 '길'을 찾는다. 앞서 가는 차가 아니면 어디가 길인지도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다.

안갯속에서 한참을 헤맨 뒤에야 겨우 세상 속 '고속도로'로 진입한다. 이때 비로소 그나마 눈이 내리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를 깨닫는다. 길이 낯선 곳에서 한밤 중에 안개가 깔린 데다 눈까지 내렸다면, 그때는 어떻게 됐을까? 그때는 아마도 낭만이니 환상이니 하는 말을 결코 튀어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영원한 우리들의 친구, 태권브이.
 영원한 우리들의 친구, 태권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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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에서 점차 윤곽을 잃어가고 있는 러버덕.
 안개 속에서 점차 윤곽을 잃어가고 있는 러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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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로 덮인 눈꽃축제는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도 '때'를 잘 맞춰 가야 한다. 아쉽게도 대관령 눈꽃축제는 오는 18일로 막을 내린다. 올해 열리는 눈꽃축제는 눈조각장에 더 많은 공을 들였다. 조각 수를 늘리고 장소도 좀 더 넓혔다. 그 대신 올해부터는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다. 눈조각장은 낮에만 개장한다. 일몰 후에는 출입을 할 수 없다.


야간에도 눈조각장을 개장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것도 야간에는 무료개장을 한다는 소식이었는데, 사실 확인이 제대로 되지 않은 보도였던 모양이다. 눈꽃축제가 평창에서만 열리는 것은 아니다. 오는 17일부터는 태백시에서 눈조각 경연대회가 열린다. 평창에서 눈꽃축제를 즐기지 못한 아쉬움을 태백에서 달랠 수 있다.

겨울 축제장에 따끈한 먹을거리가 빠질 수 없다.
 겨울 축제장에 따끈한 먹을거리가 빠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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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대관령 눈꽃축제, #눈조각, #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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