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패러독스 메인 포스터

▲ 타임 패러독스 메인 포스터 ⓒ 조이앤시네마

스피어리그 형제가 돌아왔다. 에단 호크와 윌렘 데포를 내세워 나쁘지 않은 호주산 장르영화 <데이 브레이커스>를 찍어낸 바 있는 이들이 이번에는 SF 장르에서 그간 키워온 역량을 과시한다.

영화 <타임 패러독스>는 지난 7일 국내 개봉해 7만 8천 관객을 모았는데 장르영화 팬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상영관 대비 괜찮은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SF장르 소설가로 명성을 떨친 로버트 하인라인의 소설을 기반으로 스피어리그 형제가 직접 각색했으며, 전작에 이어 에단 호크를 주연으로 발탁하고 나머지 배역은 호주에서 활동하는 재능있는 배우들을 기용해 캐스팅부터 무게감과 신선함을 적절히 조화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국내 제목부터 알 수 있듯 영화는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다. 필연적으로 과거에 영향을 미치기에 시간여행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오랜 역설을 이야기의 중심소재로 가져왔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영화 속 대사는 시간여행의 역설을 함축하고 있으며 스피어리그 형제는 이 같은 역설로부터 한 편의 재기넘치는 오락영화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시간여행의 역설은 <나비효과>, <터미네이터> 시리즈, <엑스맨-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를 비롯해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많은 작품들이 직간접적으로 다룬 설정이다. 그만큼 식상하게 여겨지기도 쉬운데 <타임 패러독스>는 정면에서 이 같은 설정을 다룬다는 점에서 오히려 독특한 기획이라 하겠다.

상영관 없어, 보고 싶어도 보기 어려운 영화

타임 패러독스 제인을 연기한 사라 스누크는 한국 영화팬들에게 생소한 얼굴이다

▲ 타임 패러독스 제인을 연기한 사라 스누크는 한국 영화팬들에게 생소한 얼굴이다 ⓒ 조이앤시네마


사실 이 영화는 한국에 수입되기 전부터 좋은 평을 받지는 못했다. 규모가 작고, 설정은 흔한데다, 에단 호크를 제외하면 유명 배우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프랑스, 스페인 등 상당수 국가에서 정식개봉조차 하지 못했고 DVD 등 2차판매만 이루어졌을 뿐이다.

한국에서도 시차를 두고 정식개봉을 했지만 <국제시장>, <테이큰 3> 등 덩치 큰 경쟁작들 사이에서 상영관을 얼마 확보하지 못하면서 보고 싶어도 보기 어려운 영화가 되고 말았다. 개봉 1주일차인 14일 기준으로 박스오피스 순위가 무려 스무 단계나 곤두박질친 것이 이를 반증한다. 리틀빅픽쳐스 엄용훈 대표의 사퇴 이후 논란이 되고 있는 한국의 불공정한 배급 환경을 생각해보면 CJ를 등에 업은 <국제시장>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 사이에서 한 주나마 박스오피스 10위 안에 이름을 올린 것이 다행이라 하겠다.

이런 류의 영화가 대개 그렇듯 <타임 패러독스>도 이야기를 진행시키며 하나씩 단서를 던져주다 미처 관객이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서 반전과 함께 충격적 진실을 드러내는 전개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다만 한 번의 충격적인 반전에 모든 힘을 싣기보다는 여러 차례로 나누어 진실을 하나씩 보이면서 결말부에 이르러 큰 그림을 완성시킨다는 점이 약간의 차이라고 하겠다.

대개 이런 류의 영화들은 단서와 에피소드를 엮는 구성의 솜씨에서 성패가 좌우되게 마련인데 <타임 패러독스>는 이 부분에서 상당한 강점을 보인다. 이야기 자체는 단순하다 할 수 있지만 이를 가지고 노는 솜씨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뫼비우스의 띠 완성하기 위해 내달리는 97분

타임 패러독스 시간을 여행하며 범죄를 막는 템포럴 요원

▲ 타임 패러독스 시간을 여행하며 범죄를 막는 템포럴 요원 ⓒ 조이앤시네마


미래의 미국. 시간여행을 통해 범죄를 막는 템포럴 요원인 주인공은 뉴욕에서 많은 사상자를 발생시킨 피즐 폭파범을 잡기 위해 과거로 떠난다. 그는 임무를 수행하다 얼굴을 다쳐 성형수술을 받고 전혀 다른 외모를 갖게 된다. 회복된 그는 바텐더를 가장해 피즐 폭파범으로 의심되는 한 사내에게 접근한다.

영화가 던져 준 단서를 하나씩 조합하다보면 어렵지 않게 반전에 이를 수 있다. 피즐 폭파범이 누구이며 템포럴 요원은 어째서 그를 쫓는가 하는 것이다. 삶의 목적을 갖기 위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자신의 꼬리를 먹는 뱀이며, 달걀과 닭의 딜레마 문제로 모습을 바꾸어 언급된다. 영화는 그 구성조차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모양이다.

독일의 수학자 뫼비우스가 발견한 이 띠는 안과 밖의 구별이 없어서 띠의 단면이 영원히 이어지는 2차원 도형이라 할 수 있다. 영화는 템포럴 요원과 그가 만난 존이라는 젊은이, 그리고 피즐 폭파범의 관계를 구체화하며 마침내 뫼비우스의 띠를 완성시킨다. 요약하자면 뫼비우스의 띠를 완성키 위해 내달리는 97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반전을 모두 접하고 드는 의문은 '시작'에 관련된 것일 테다. 뫼비우스의 띠, 닭과 달걀의 딜레마에서 시작이 어디인지 답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은 인류가 이 딜레마를 찾아낸 이후 오랫동안 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왔을 것이다. 어쩌면 스피어리그 형제는 이 같은 딜레마를 생각하는 유희로부터 영화를 시작하지 않았을까?

덧붙이는 글 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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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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