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해 12월 17일 개봉해 지난 13일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국제시장>. 황정민의 연기로도 유명하지만, 이념 논란이 끊이지 않는 영화로 더 유명하다. 허지웅씨를 비롯한 일부 진보 진영은 '혹평'을, <TV조선>을 비롯한 보수 진영들은 '찬사'를 보냈다.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이 <국제시장>에 대해 "부부싸움 하다가도 애국가가 들리니까 국기 배례를 하더라", "우리가 그렇게 해야 나라라는 소중한 우리의 공동체가 건전하게 발전한다"고 언급했다는 기사도 이슈로 떠올랐다.

도대체 어떤 영화길래 이렇게까지 논란이 된 걸까? 어떤 영화길래 대통령까지 언급하는 걸까? 도대체 무슨 내용일까 궁금했다. 그래서 <국제시장>을 못 본 친구와 후배들을 데리고 영화관을 찾았다.

국제시장 관람 후 국제시장 통닭집에서 <부마항쟁>을 토론하다

영화 <국제시장> 포스터.
 영화 <국제시장> 포스터.
ⓒ 영화 <국제시장>

관련사진보기


영화를 예매하려고 <국제시장>을 검색했는데, 국제시장이 부산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고향은 울산이지만, 학교가 부산인 대학생이라 부산에 살고 있다. 그래서 이왕 보기로 한 거, 국제시장 근처에서 영화를 보는 게 더 의미있을 것 같아 부산 남포동 대영시네마에서 영화를 보기로 결정했다.

영화는 생각보다 평범한 내용이었다. 쉽게 말해 한 가정의 장남 '덕수'의 희생을 통해 보는 우리나라의 옛날 이야기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가 불편하게 느낄 만한 장면도 있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주인공 중심의 드라마틱한 영화임에는 틀림없었다.

같이 본 친구와 후배들은 어떻게 느꼈을까. 나와 생각이 비슷할까. 다른 점을 느끼진 않았을까.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오후 9시. 근처 맛있는 닭집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해 그 집으로 망설임 없이 향했다.

"영화 어땠어?"
"생각보다 무난했어요. (영화에) 정치색이 있다고 하도 그래서 신경 쓰면서 봤는데도, 딱히 정치색이 드러나는 부분은 못 봤어요."

그 후배는 말을 더 이어갔다.

"근데 아무리 짧아도 한 시대를 다루는 내용인데, 너무 고생하는 주인공 위주로 가다 보니 역사적 사건들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어요. 특히 (영화의 배경이) 부산이면, 부마 항쟁도 엄청 큰 사건인데... 이야기 흐름 상 빠지긴 했겠지만 좀 그랬어요. 이래서 편향적이니, 아니니 그런 얘기가 나오는 거 같아요."

이어 역사 동아리를 한다는 후배답게 '부마항쟁'을 이야기하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줬다.

"부마항쟁(1979년 10월 16일부터 10월 20일까지 부산과 마산에서 벌어진 민주화 항쟁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독재 체제에 대한 민중의 불만이 폭발한 사건)이 국제시장에서 벌어진 거 아세요? 시작은 부산대 학생들이 했는데, 국제시장 상인들이 대학생들을 되게 많이 도와줬대요.

박정희 대통령 때 석유 파동이 있어서 경제적으로 엄청 힘들었는데, 그 와중에 '부가가치세' 제도가 도입됐거든요. (그 제도로) 특히 상인들이 직접 타격을 입으니까 더 못 살겠다고 불만이 장난 아니었는데, 때마침 대학생들이 유신 철폐하겠다고 나서니 지지를 많이 했대요."

국제시장의 거리
 국제시장의 거리
ⓒ 김지희

관련사진보기


난생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부가가치세가 박정희 때 생긴 것도 몰랐고, 국제시장에 있는 상인들이 부마항쟁을 도와줬다는 사실도 생경했다. 사실 이 당시에는 반공 교육도 심각하고, 집회의 자유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아 집회에 가담하는 것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당시 상인들의 삶이 상당히 힘든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었을 거라 짐작해본다.

"물론 부가가치세뿐만 아니라 재벌 위주의 정책, 끔찍한 노동 환경과 쥐꼬리만한 월급 등 노동자의 희생으로 성공한 수출 주도 경제 성장, 미친 듯한 물가 상승 등... 박정희 대통령이 했다는 그 경제 성장이 다 이런 데서 비롯됐죠. 결국 서민들은 엄청 힘들게 살았구요. 근데 박정희 대통령 덕분에 다 경제 성장한 것처럼 말하죠."

후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잘했다고 말하는 것은 전부 다 경제 성장과 관련한 이야기지만, 실제로 이것은 당시 수많은 노동자들의 희생 덕분에 이룬 것이었다. 질문 하나를 더 던졌다.

"근데 부마항쟁은 YH 사건이 일어나고, 김영삼이 제명당해 생긴 거 아냐?"
"그게 결정적이긴 했지만, 부마항쟁이 딱 잘라서 YH사건, 김영삼 제명 때문이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죠. 계속해서 박정희 독재 정권에 대한 불만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 당시 사람들이 대부분 거리로 나온 항쟁이 됐고... 그 중 국제시장 상인들도 그만큼 살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었으니 많이 도와준 거구요."

항상 역사를 배울 때는 특정 시기, 단편적인 사건들을 위주로 다룬다. 하지만 실제 역사는 그렇지 않다. 지금 뉴스에 나오는 몇 가지 사건만으로는 이 전체 역사를 알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버지와 딸의 시대, 별 다를 바 없다

국제시장의 한산한 거리
 국제시장의 한산한 거리
ⓒ 김지희

관련사진보기


"결국 지금이랑 별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아요. 담뱃값도 올리고, 유류세도 절대 못 내린다고 하고... 세금으로 서민들을 힘들게 하는 건 아버지와 딸이 비슷하네요."

듣고 있던 또 다른 후배가 말했다.

"부마항쟁 때야 부가가치세는 상인에게 직접 타격이 가니까 특히 상인들이 (항쟁에) 많이 도와줬는데... 지금은 담배 피는 모든 사람들, 기름 쓰는 사람들... 사실상 모든 사람이 힘들게 살잖아요."

맞는 말이다. 그 당시와 지금, 경제 정책이 특별히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재벌만 챙기는 경제 정책, 노동 환경과 월급을 보장해주지 않는 정책들은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국민을 힘들게 하고 있다. 옆에 있던 친구가 한 마디 보탠다.

"마치 평행이론 같다. 아버지가 대통령 할 때나, 딸이 대통령 할 때나 차이가 없네."
"그렇네~ 생각해보니까 YH 사건 때문에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가 제명된 것도 약간 (이번에) 진보당 해산된 거랑 좀 비슷한 맥락인 것 같은데?"

친구는 지금과 옛날이 비슷한 걸 알고 신기해했다. 국민의 목소리를 담아서 움직여야 하는 게 정부고, 국가인데. 이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대통령님, 부마항쟁을 아시나요?

어쩌다 보니 <국제시장> 이야기하다가 부마항쟁에 대해 쭉 얘기를 하게 됐다. 시간은 어느덧 오후 10시를 지나고 있었다.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알기로는 부마항쟁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결국 정권을 내려놓는 도화선이었다. 그렇다면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이, 부마항쟁의 항쟁지였던 '국제시장'이 배경인 영화를 보고 애국심을 배웠다는 건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닌가.

"박근혜 대통령이 부마항쟁을 알까? 알았으면 저렇게 영화를 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단지 태극기 보고 경례하는 것만 가지고? 나라면 못했을 거 같다. 듣고 보니 소름이 끼치네."

뜬금없이 자신의 생각을 밝힌 친구는 나와 같은 생각을 했나 보다.

"솔직히 국가의 대표가 대통령인데. 우리나라의 역사를 잘 모르는 건 진짜 심각한 거잖아? 역사를 알아야 미래를 알지..."

부마항쟁 때와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는 요즘. 그렇다면 지금 이 시기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선 긴장해야 될 시기이지 않을까? 실제로 정권을 잡은 부녀 모두 서민보다 재벌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고(아버지는 펼쳤고), 그 분노를 표출한 부마항쟁을 계기로 박정희 대통령은 권좌에서 내려와야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 공부를 좀 열심히 하셔서 부디 똑같은 노선을 밟지 않길 바란다.

거꾸로 우리는 부마항쟁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들을 제대로 배워서, 단지 <국제시장>이 유명한 영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제시장에서 있었던 부마항쟁의 역사를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현재 역사를 쓰고 있는 우리에게 더 막중한 임무가 있음을 느끼며 술잔을 기울였다.


태그:#국제시장, #박근혜, #박정희, #부마항쟁
댓글2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