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스나이퍼> 포스터

▲ <아메리칸 스나이퍼> 포스터 ⓒ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대체 무엇이 악인가.

대전차 수류탄을 들고 미군을 향해 달려가는 아이의 가슴팍에 총알을 박아넣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온 아이의 어머니에게 총구를 겨누며, 아군에겐 전설이라 불리고 적군에겐 악마로 기억되는 사내 크리스 카일은 생각한다. '저들은 악마다. 단 한 명의 아군을 더 살리기 위해 적군을 쏘아죽이는 것이 나의 임무다. 나는 신 앞에서도 한 점 부끄럼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크리스 카일은 되뇌이고 또 되뇌인다. 자신이 저격한 사내의 로켓포를 다시 집어든 열 살 남짓한 소년을 겨냥하며 그걸 집지 말라고, 내려 놓으라고 수차례 되뇌이는 스나이퍼. 크리스 카일이란 인물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네이비실(미국 해군의 엘리트 특수부대) 출신으로 이라크전에 참전한 전설적인 저격수의 삶을 통해 전쟁이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묘사하는 반전영화다.

영화의 연출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맡았다. <용서받지 못한 자>로 서부영화를 재해석하고, <퍼펙트 월드>로 온전하지 못한 세상을 비판했으며,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삶과 희망에 대한 절절한 드라마를 써내려갔고, <그랜토리노>로 진정한 보수의 역할을 웅변했던 감독.

전쟁영웅의 실화를 다룬 영화로 <아메리칸 스나이퍼>라는 노골적인 제목을 달고 있음에도 영화팬들이 이 영화에 관심을 보이는 건 오로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만든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덧 80대 중반에 이른 노장이지만 여전히 시대를 대표하는 뛰어난 감독 가운데 한 명이며, 쉽게 만나보기 어려운 진정한 보수주의자이기에 그가 이라크전과 전쟁영웅을 어떻게 다룰지에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딜레마 상황으로 시작되는 인상적인 오프닝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한 장면.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한 장면. ⓒ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영화는 미군을 향해 달려가는 소년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소년의 손엔 길쭉한 물건이 들려있고 짧은 순간 스나이퍼는 그것을 대전차 지뢰라 판단한다. 오직 한 명의 스나이퍼에게 모든 판단이 맡겨지고 관객 모두가 숨죽이는 바로 그 순간, 화면은 스나이퍼의 과거로 향한다.

영화는 크리스 카일이라는 이름의 사내가 소년이던 시절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거칠고 보수적인 아버지는 소년에게 "인간은 모두 세 종류로 나뉜다"고 말한다. '양'과 '늑대', 그리고 '양치기개'. 그는 자신의 아들이 양과 늑대처럼 사는 꼴을 볼 수 없다 말하고 소년은 스스로가 양과 늑대가 아니라고 답한다.

곧 소년은 남자가 된다. 그는 각지를 전전하며 로데오 경기에 참여하고 스스로가 카우보이가 된 마냥 즐거워하는 혈기 넘치는 젊은이다. 그러나 젊음을 낭비할 뿐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는 고민 끝에 군대에 입대하는 결정을 한다.

그는 서른이라는 늦은 나이에 네이비실로 입대하고 저격수로 길러져 이라크전에 파병된다. 영화는 크리스 카일이라는 미국의 젊은이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나고 길러졌으며 입대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재구성해 스나이퍼의 성격과 그가 만나는 사건들을 관객으로 하여금 설득력 있게 느끼도록 한다.

관객들은 주인공이 네이비실 대원으로 길러지고 전장에서 활약하는 과정을 통해 미군의 정체성과 가치관이 형성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듯 목격하게 된다. 영화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수백의 적을 살상하는 과정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얻고 끊임없이 스스로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전쟁이 어떻게 한 인간을 파괴하는지를 가까이서 찍어내기에 이른다.

전쟁 없었다면...그저 아버지이자 남편이었을 젊은이들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한 장면.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한 장면. ⓒ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영화는 리들리 스콧의 <블랙 호크 다운>과 피터 버그의 <론 서바이버>가 이룩한 바 있는 전장의 리얼리즘을 살리는 동시에 주인공과 그의 아내, 고뇌하는 몇몇 병사들, 아이와 여자의 모습으로 비춰진 이라크 반군의 모습을 통해 휴머니즘적 측면을 강조하기도 한다. 여기서 전장의 리얼리즘은 인간의 목숨이 너무도 가볍게 사라지는 전쟁의 비인간성을 부각시키는 데 맞춰져 있으며 휴머니즘의 강조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는 크리스 카일과 아내의 관계를 묘사하는 데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는데 주인공이 전장에서 죽어나가는 동료들 때문에 가정에 충실하지 못하고 곧장 부대로 복귀하는 모습을 수차례 담아낸다. 이러한 장면이 표현하는 바는 명확하다. 크리스 카일이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이자 좋은 아버지일 수 있음에도 전쟁 때문에 가정에 충실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리아 출신의 올림픽 메달리스트 무스타파가 크리스 카일의 숙적으로 등장해 목숨을 건 대결을 펼친다는 이야기 역시 의미심장하다. 둘의 마지막 대결을 앞두고 화면은 무스타파의 집안을 훑는데, 어린 아이를 안은 여인과 벽에 걸린 올림픽 시상식 사진 앞에서 카메라는 잠시 멈춘다.

이는 무스타파에게도 크리스 카일과 같이 아내와 아이가 있으며, 만약 전쟁이 없었다면 그 역시 좋은 아버지이자 남편이고 운동선수로서 꿈을 품고 살아갔을 젊은이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만약 전쟁이 없었다면 올림픽 메달리스트와 가족을 고국에 두고 온 가장이, 또 청혼을 코 앞에 둔 젊은이와 아까운 수많은 생명들이 서로를 겨누고 죽이지 않을 수 있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감독은 이와 같은 장면들을 통해 전쟁이 얼마나 많은 가치 있는 것들을 짓밟는 비인간적인 행위인지를 웅변한다. 미국인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던 9.11 테러를 비롯해 전쟁으로 상처를 입은 상이군인들의 모습을 담아내는 것도 잊지 않는다.

국가간 전쟁은 어떻게 개인을 파괴하는가

아메리칸 스나이퍼 첫 저격을 하고 돌아와 고뇌하는 크리스 카일(브래들리 쿠퍼 분)

▲ 아메리칸 스나이퍼 첫 저격을 하고 돌아와 고뇌하는 크리스 카일(브래들리 쿠퍼 분) ⓒ 워너브라더스코리아


그저 약자를 지키고 약자를 짓밟는 적을 제압하겠다는 마음으로 군인이 된 크리스. 그런 그가 수백의 적을 사살한 전쟁영웅이 되는 과정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묘사하는 방식은 그야말로 인상적이다. 늑대로부터 양을 지키기 위해 든 그의 총은 어느새 또 다른 양들을 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는 자신이 쏜 것이 양이 아니라 악마라고 정당화한다. 하지만 그의 조준경에 비치는 것은 악마가 아니라 인간일 뿐이고, 그의 마지막 총알이 쏘아진 후 전장은 거대한 모래폭풍에 휩싸인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모래폭풍 속에서 자신의 좌표를 부르며 폭격을 요청하는 미군의 모습.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관객들에게 전쟁이란 본래 이런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듯한 장면이었다. 국가와 국가의 전쟁에서 개인은 누구를 겨냥하고 무엇을 위해 죽어가는가. 선과 악이 뒤엉키고 어느새 적과 나를 구분하기 어려운 전쟁의 아이러니를 모래폭풍 속 전투를 통해 표현한 이 장면이야말로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백미라고 생각한다.

연출의 측면에선 빠른 템포로 긴장감 있게 이어지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절제된 음향효과가 극적 긴장감을 배가시켰고, 시가전과 저격의 긴장감이 화면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 브래들리 쿠퍼를 비롯한 출연 배우들의 연기 역시 수준급이었고, 실화임을 마지막에서야 밝힌 선택 역시 그 목적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긴장감은 물론, 관객들에게 스나이퍼의 딜레마를 그대로 전한 오프닝은 근래 개봉한 영화들 가운데 첫 손가락에 꼽을 만큼 만족스러웠다. 과연 거장의 작품다웠다.

물론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같은 템포를 유지하는 것이 버거워보였고 기본적인 얼개 역시 실화라는 제약 때문인지 부족한 부분이 없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일부에서 제기된 '미군 미화 영화'라는 비판은 미군을 중심으로 전쟁을 바라보는 할리우드 영화의 특성상 벗어나기 어려운 부분이며 정당한 지적이기도 하다.

비록 기존의 미국산 전쟁영화들에 비해 현저히 자기 비판과 타자에 대한 객관적 시각이 엿보였지만, 중심을 지켰다고 보기엔 부족한 부분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클린트 이스트우드 역시 무스타파에게 단 한 줄의 대사도 주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한 줄의 대사보다 이야기되지 못한 많은 것이 있음을 표현하기 위해.

나는 이렇게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찍어낸 반전영화를 읽었다.

덧붙이는 글 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 게재하였습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 클린트 이스트우드 브래들리 쿠퍼 시에나 밀러 전쟁 영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