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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열차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 정선선의 시발역인 민둥산역 아리랑열차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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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67년 예미-정선 구간이 개통되면서 운행을 시작한 산악철도 정선선(민둥산역-구절리역)은 석탄의 수요 증대로 정선군과 함께 큰 성장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러나 석탄 합리화 사업과 함께 저물어가게 되면서 과거의 빛나던 영광을 잃게 되었다.

2001년 한 세대를 풍미했던 대표적인 완행열차 비둘기호가 정선역에서 마지막 엔진음을 분출하였고, 2007년에는 새마을호의 전신 관광호의 마지막 객차가 이 곳에서 여생을 보냈을 정도로 정선선은 마지막이라는 단어와 인연이 깊다.

정선선의 노선이 종착역인 구절리역에서 다른 철길과 연결되지 않고, 정선에 많았던 석탄 광산의 마지막 갱도를 막장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마지막과 연결된 정선선의 이야기는 결코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기관사가 통표를 잡을 준비를 하고 있다.
 기관사가 통표를 잡을 준비를 하고 있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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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호 객차 두 량, 디젤기관차 한 대, 발전차 한 량을 이용하여 달리는 네 량짜리 꼬마열차는 제천에서 아우라지까지 단 2시간 동안 굽이굽이 하루 두 번 운행한다. 이 꼬마열차는 비둘기호에서 통일호로, 통일호에서 다시 무궁화호로 옮겨가며 이 지역의 대표 열차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점점 발달하는 도로교통에 수요가 줄어 한 번 운행에 20~30%의 좌석만을 채우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텅 빈 채로 아우라지로 향하는 열차
 텅 빈 채로 아우라지로 향하는 열차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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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2004년 구절리역과 아우라지역 간의 선로가 운행을 중단하고 레일바이크로 전환하며 관광객의 시선을 끌어모으는가 하면, 나전역이 일명 서태지폰 광고의 주인공이 되는 등, 정선선은 로컬선의 역할과 관광철도의 역할 모두에 충실한 멀티플레이어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밖에도 정선 5일장, 정선 레일바이크, 정선 아리랑을 위시하여 관광도시로의 위상을 찾게 된 정선군은 서울까지 연장되는 무궁화호 열차를 정선 5일장이 열리는 날에 맞춰 운행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국내에서 운행되는 일반열차 중 가장 적은 좌석 수로 운영되는 144석의 꼬마열차가 2015년의 해를 넘기기가 무섭게 스러지는 운명이 되었다. 1월 14일부를 기해 정선선의 여객열차 운행을 중단하고, 1월 22일부터 관광열차 A-train이 정선선의 꼬마열차를 대체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꼬마열차의 운행 마지막 날인 14일, 여러 철도팬과 지역주민 그리고 승무원까지 하나가 되어 정선선 꼬마열차를 추억하고, 앞으로의 관광열차 운행을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다. 정선선 무궁화호 마지막 날 이야기를 담아보았다.

정선선 꼬마열차 마지막 운행하던 날

기관차의 방향을 돌리기 위해 역 밖으로 기관차가 나와 차를 돌리고 있다.
 기관차의 방향을 돌리기 위해 역 밖으로 기관차가 나와 차를 돌리고 있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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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선의 시발역인 민둥산역. 증산면의 대표적인 산인 민둥산 앞에 있다고 하여 지난 2009년 증산역에서 역명이 변경되었다. 정선선이 험난한 산길을 타고 올라갈 것임을 미리 알려주기라도 하는 듯, 열차는 큰 U자를 꺾으며 정선으로 올라간다.

정선에서 민둥산까지 열차를 이용한 한 주민은 "버스보다 저렴한 가격에 시간이 맞으면 기차를 타는 사람이 많았는데, 관광열차로 바뀌면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타게 될 듯싶다"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정선선의 연선 지역의 주 수요층이 경로할인을 받는 노인임을 고려한다면, A-train 운행 이후 불편을 초래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정선역 앞에는 'A-train의 개통을 축하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그 아래에는 대조적으로 정선선의 무궁화호 열차가 운행을 중단한다는 안내문이 있었다. 얼마 전에 달아놓은 듯 종이는 빳빳했다.

정선선의 또다른 묘미는 '통표'에 있다. 이전에 철도에서는 열차의 구간 사이에 통표라는 표를 소지하게 해 이를 역에 도착할 때마다 놓고 새 표를 받아야 했다. 지금은 모두 자동제어장치 등으로 바뀌어 정선선에서만 통표를 주고받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정선역과 아우라지역 사이에서는 아날로그의 맛이 존재한다. 열차는 매우 느린 속도로 다음 역을 향해 달려간다. 정선선 꼬마열차에서 4년 동안 근무해 온 여객전무는 "여기서 4년동안 부정승차자를 한 명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정감이 넘치는 철도였다. 사실 사람이 보통은 한 열차에 서너명 탈까 말까 하고, 심지어는 혼자 빈 열차 안에 있을 때도 있다"라며 출입문의 계기판을 애틋하게 쳐다보았다.

정선선의 종착역인 아우라지역의 원래 이름은 여량역이었다. 정선 아리랑의 효시가 된 아우라지를 기념하는 뜻에서 아우라지역으로 역명을 변경하게 되었다. 아우라지역에서는 여객전무가 호송원이 되어 기관차의 방향을 돌려놓는다.

객차 두 대와 기관차 하나, 발전차 하나로 이루어진 열차다.
▲ 정선선의 꼬마열차 객차 두 대와 기관차 하나, 발전차 하나로 이루어진 열차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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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차와 객차의 연결고리를 손수 빼고, 기관차를 역 바깥으로 돌려놨다가 이내 되돌아와 다시 붙인다. 흔한 자동식 선로 변환기도 없어 여객전무가 직접 손으로 변환기를 돌려놓는 풍경이 이색적이다.

열차는 네 시간 동안의 휴식을 갖고 마지막 숨을 토하기 시작했다. 산악 지형이라 땅거미가 깔린 선로 아래에서 열차는 정선을 거쳐 제천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정선역 플랫폼에는 많은 철도팬들이 몰려 있었다. 마지막 열차를 보고, 타기 위해서였다. 열차가 들어오는 순간, 기관사가 승강장을 바라보다 창문으로 통표를 통표 걸이에 던진다. 부드러운 금속음과 함께 통표가 제 자리에 들어오며 이윽고 열차는 역에 완전히 멈춰 열 댓명의 승객을 태우고 출발했다.

맨 앞칸은 터널을 지날 때마다 디젤 소리가 크게 울렸다. 태백선과 중앙선의 산악철도가 점착력이 높은 전기철도로 교체되었지만, 정선선은 전철선이 부설되지 않아 디젤기관차로 운행하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의 견인 기관차는 수도권 전철이 개통되기도 전, 심지어 정선선의 마지막 구간인 나전역에서 여량역 구간이 개통한 해와 같은 1971년 도입되어 1999년 엔진 교체 등의 재생을 받은 후 현재까지 운행하고 있는 마흔 다섯 살의 노장 기관차이다.

정선역의 역장이 통표를 받기 위해 나와 있었다.
▲ 정선선의 마지막 무궁화호 열차 정선역의 역장이 통표를 받기 위해 나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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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는 2시간여를 달려 마지막 역인 제천역에 정시에 도착했다. 열차가 제천 외곽의 터널을 지나 막 제천 시내로 진입할 때 즈음에 경적이 한 번 울렸고, 이내 여객전무가 마지막 안내방송을 시작했다.

"고객 여러분께 마지막역 안내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 열차는 잠시 후 마지막 역인 제천역에 오후 7시 42분에 도착하겠습니다. 소지품을 두고 내리지 않으시도록 미리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코레일을 이용해주신 고객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윽고 들려온 세 마디의 안내방송은 예상했던 사람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에게도 깊은 애수를 남게 했다.

"아울러 오늘 마지막으로 운행된 정선선 꼬마열차를 이용해주신 고객 여러분 고맙습니다. 앞으로 운행되는 아리랑열차에 많은 관심과 이용 부탁드립니다. 오늘 꼬마열차를 이용해주신 모든 고객님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마지막을 기념하는 안내방송이 끝나고 열차가 마지막 숨을 토해내며 제천역에 들어섰다. 역무원이 미리 다른 행선판 두 개를 들고 나와 아우라지→제천이 찍혀 있던 행선판을 제천→청량리의 행선판으로 교체하기 시작했다.

이내 행선판을 다른 것으로 갈아끼우고 제천역 구내의 기지에 들어갔다.
▲ 제천역에 도착한 정선선의 마지막 열차 이내 행선판을 다른 것으로 갈아끼우고 제천역 구내의 기지에 들어갔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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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열차는 제천의 객차 기지로 입고하기 위해 느릿느릿 제천역을 떠나갔다.

정선선의 꼬마열차는 1월 14일 오후 7시 37분을 마지막으로 정선의 흥망성쇠와 함께 한 추억으로 사라졌다. 1월 22일 운행을 시작하는 정선의 아리랑열차는 꼬마열차가 남겨주었던 추억을 그대로 되살릴 수 있을까.

관광열차는 그간 일반의 철도를 보조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왔다. O-train, 바다열차 등이 그래왔다. 이번에는 정선선에 또다른 관광열차가 무궁화호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태그:#정선선, #꼬마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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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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