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위한 시간 포스터

▲ 내일을 위한 시간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주)

칸영화제가 사랑하는 이 시대의 거장인 자코 반 도마엘과 함께 벨기에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자리잡은 다르덴 형제의 신작 <내일을 위한 시간>이 누적 관객 수 2만 5727명(13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을 기록했다. 다르덴 형제 역대 영화 중 최고 흥행이다.

이런 흥행속도라면 머지않아 3만 관객을 돌파하는 것도 가능할 듯 싶다. 상영관 100개 미만의 다양성 영화로서는 의미있는 행보다.

<내일을 위한 시간>(Deux jours, une nuit, Two Days One Night)은 동료들의 투표로 일자리를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주인공들이 동료들을 만나 설득하는 이틀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마리옹 꼬띠아르가 주인공 산드라를 연기했다. 촬영은 벨기에의 작은 도시 리에쥬에서 진행됐다. 감독 말에 따르면 동료의 고용과 자신의 보너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이야기의 현실성을 살리기 위해 노조가 없는 이 곳을 선택했다고 한다.

경쟁에서 이기느냐 아름답게 유대하느냐 그것이 문제

산드라는 우울증으로 병가를 낸 중에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절망한다. 그녀의 해고와 보너스를 놓고 직원투표가 열렸고 그 결과 해고가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몇몇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재투표 허가를 받아낸 그녀는 주말 동안 동료들을 찾아 보너스 대신 자신을 택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낮은 자존감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그녀는 자신의 고용을 남에게 구걸하듯 부탁해야 하는 상황에 몹시 괴로워하지만 남편과 친구들의 지지에 힘입어 이틀 간의 쉽지 않은 여정을 마친다.

다르덴 형제는 산드라가 보낸 '1박 2일'을 통해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자연스럽고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이틀 간의 여정을 통해 행복을 되찾는 게 핵심으로 성장영화의 서사적 틀을 갖고 있다. 영화 초반에 그려지는 산드라는 자존감이 낮고 안정제에 의존하는 여성이다. 하지만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결코 작지 않은 책임을 가진 그녀는 온갖 심정적 어려움을 딛고 최종 투표까지를 훌륭히 소화해낸다. 영화는 그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일을 끝마친 산드라가 만족과 행복감을 느끼며 남편과 통화하는 모습을 비추는데 감독은 이로부터 '투쟁'과 '연대'라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부각시킨다.

다르덴 형제 장 피에르 다르덴(왼쪽)과 뤽 다르덴(오른쪽)

▲ 다르덴 형제 장 피에르 다르덴(왼쪽)과 뤽 다르덴(오른쪽) ⓒ 다르덴 형제


산드라는 우리 시대의 소시민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일종의 알레고리적 인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산드라는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어려운 부탁을 해야하는 상황에 놓여 있으며 끊임없이 심리적 압박감과 절망감으로 괴로워한다. 깊어진 우울증에 극단적인 선택까지 고민하지만 몇몇 사람들의 지지 앞에서 활짝 웃으며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작은 압력에도 무너져내릴 만큼 자존감이 낮은 그녀지만 동시에 사소한 유대의 경험으로도 훨씬 강해질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녀의 모습은 성취와 승리보다 버티고 이겨내는 일상에 익숙한 우리들, 연대와 유대보다 밀어내고 이겨내야 하는 경쟁에 익숙한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디에 속해 있는가

영화는 인위적 촬영을 최대한 피하고 다큐멘터리에 가까울 만큼 자연스럽게 상황을 담아냈다. 이를 통해 산드라라는 인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끔 한다. 모순적인 상황이 주는 비애감에서 역설적으로 주인공의 심정에 공감하도록 돕는다. 엔딩크레딧에서조차 음악을 배제하고 산드라의 곁에서 공간의 모든 소음을 있는 그대로 잡아낸 선택 역시 영화가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이야기 만이 아니라 산드라가 살아가는 세상 그 자체임을 알게끔 한다.

산드라는 말한다. 너의 보너스를 빼앗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내게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러 왔다고. 동료 직원들은 답한다. 나도 너에게 일자리를 빼앗으려는 게 아니라 보너스를 받으려는 것 뿐이라고. 동료의 일자리와 나의 보너스를 두고 내리는 결정이 민주주의의 상징인 투표를 통해 이루어지는 상황은 그야말로 아이러니다. 극 중 대사를 통해 등장하는 것처럼 보너스와 동료의 고용을 두고 하나를 선택하게 한 건 산드라나 다른 직원들이 아니다. 사장의 결정이다.

사장은 산드라의 고용과 직원들의 보너스를 모두 보장할 수는 없다고 말하며 그녀가 없다고 해도 약간의 추가근무를 통해 공장이 잘 돌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도 직원들은 추가수당을 위해 추가근무를 기꺼이 할 것이며 이는 아시아 회사들의 위협 속에서 인건비를 줄여야 하는 회사의 입장과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 이러한 결정을 정당화하는 건 언제나처럼 경쟁력의 논리다.

내일을 위한 시간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산드라(마리옹 꼬띠아르)

▲ 내일을 위한 시간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산드라(마리옹 꼬띠아르) ⓒ 그린나래미디어(주)


하지만 세상은 경쟁 논리 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고용의 안정성은 가정 및 사회의 안정성으로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국가가 나서 최소한의 고용보장을 법적으로 규제하는 것이다. 더불어 의사결정의 합리성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측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노동자들을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부당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쌍용차 사태를 비롯해 우리는 이미 너무도 많은 노동계의 비극을 알고 있지 않나.

다르덴 형제는 이 상황의 책임을 사장에게 돌리지 않는다. 사장이 비정규직의 계약해지를 해고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처럼, 동료의 고용과 보너스를 두고 투표를 하게 하는 이 사회에 책임을 묻는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다면서 말이다. 산드라를 방어적으로 대하는 사람들도 실은 가장으로 책임을 다하려 보너스를 택하는 것 뿐이다. 사장이나 반장 역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것 뿐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연대와 소통의 기억

내일을 위한 시간 투표장으로 걸어들어오는 산드라(마리옹 꼬띠아르)

▲ 내일을 위한 시간 투표장으로 걸어들어오는 산드라(마리옹 꼬띠아르) ⓒ 그린나래미디어(주)


그렇다면 산드라는 누구와 싸워야 하는가? 영화는 각 등장 인물 사이의 관계망을 섬세한 손길로 재현한다.  직원들이 불법으로 두 세개의 일을 더 하고 있는 모습 속에서 각박한 소시민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가정마다 어린 아이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뺀다면 한국사회의 모습과도 다르지 않아 보이는 영화 속 세상이 온전히 거짓이 아니라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보너스와 동료의 고용을 사이에 두고 두 패로 갈라져 싸우는 직원들의 모습은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어째서 약자들은 책임있는 자가 아니라 서로를 향해서 이빨을 드러내는 것일까.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화합하지 못하고 노동자들끼리 갈라져 대립하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그려낸 거장의 솜씨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산드라가 찾아간 동료들의 모습은 실제 이 시대의 노동자들이 보여왔던 여러 태도를 각각의 캐릭터 속에 집어넣은 것처럼 느껴질 만큼 현실적이고 압축적이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어떻게 이와 같은 다양한 태도가 만들어질 수 있는가를 간접적으로 관찰해볼 수 있었던 듯도 했다.

다르덴 형제는 산드라가 작은 승리를 얻어내는 결말을 통해 투쟁과 연대라는 메시지를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산드라가 동료들을 찾아 연대를 경험하고 자신의 권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투쟁하는 과정을 통해 자존감과 행복을 얻었다는 점에서 영화의 주제의식은 매우 명확하다.

그는 다시는 타인에게 부당한 피해를 입히며 자신의 이득을 추구하는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끊임없는 스스로와의, 나아가 부당한 세상과의 투쟁을 통해 얻어질 것이며 사람들과 연대를 통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려 할 것이다. 영화가 산드라의 마지막 발걸음을 가볍고 희망차게 잡아낸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 게재했습니다
내일을 위한 시간 그린나래미디어(주)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마리옹 꼬띠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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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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