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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종북몰이' 논란에 휩싸여끝내 강제퇴거 처분을 받고 출국길에 나선 신은미씨가 10일 인천국제공항공사 로비에서 배웅을 나온 황선씨와 포옹을 하고 있다.
▲ 강제출국 길 신은미, 황선과 포옹 '종북몰이' 논란에 휩싸여끝내 강제퇴거 처분을 받고 출국길에 나선 신은미씨가 10일 인천국제공항공사 로비에서 배웅을 나온 황선씨와 포옹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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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동포 신은미(54)씨가 끝내 눈물을 흘렸습니다. 지난 10일,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 지인들과 작별 인사를 하던 도중이었습니다. '종북몰이의 광풍' 속에서도 꿋꿋하게 감정을 절제했던 모습과 사뭇 달랐습니다. 그는 "몸은 강제 퇴거 당해서 미국 땅으로 돌아가지만 마음은 퇴거 시킬 수 없다"고 짧게 인사했습니다.

그는 지인 한 사람씩 껴안았습니다. 마치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긴 이별을 맞는 아쉬움의 시간이었습니다. 한 지인은 신씨의 '5년 입국 제한'을 두고 "5년 안에 통일하자"고 외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인들은 큰 박수로 그의 축복을 기원했습니다.

신씨는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이번 사건의 잔상은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이 언제든 '종북몰이 마녀사냥'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음을 깨닫게 했습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된 국가보안법(아래 국보법)도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저는 지난 두 달 동안 두 차례 단독 인터뷰를 비롯해 각종 기자회견, 소환 조사의 현장에서 신씨를 취재해 왔습니다. 또 신씨의 책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와 황선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와의 대담집 <그래도 나는 노래하리>도 꼼꼼이 따져봤습니다. 현장 기자의 눈으로 박근혜 정부와 수사당국이 합작한 '종북몰이'를 되짚어 보겠습니다.

신은미는 정말,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했나

통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한 신은미씨(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남편 정태일씨(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가 판문점에서 북한 군인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통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한 신은미씨(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남편 정태일씨(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가 판문점에서 북한 군인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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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종북몰이의 시작은 지난해 11월 19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신은미·황선 전국순회 통일토크 콘서트'였습니다. 종편 등 보수 언론은 이 행사에서 신씨와 황선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가 북한을 찬양하는 등 '종북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보수단체가 두 사람을 국보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신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국보법 7조, 이른바 찬양·고무 조항입니다. 지난 군부 독재 정권시절 수많은 민주화 인사들이 이 조항으로 고문과 옥살이를 당했습니다. 악법 중의 악법으로 불리며 유엔 인권이사회도 폐지를 권고한 독소조항이기도 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2004년, "국보법이라는 칼은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 조항은 한 차례 개정됐습니다. 대한민국이 직선제 개헌 등으로 민주화된 이후 국보법에 대한 개정, 철폐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1990년, 국보법 7조에 대해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주는 경우에 한해 이를 적용하라"고 결정(90헌가11)한 것입니다. 이후 국회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라는 문구를 분명히 했습니다.

물론 국보법은 대한민국의 엄연한 현행법입니다.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찬양하는 것은 범죄가 됩니다. 또 간첩이나 북한을 이롭게 한 사람들은 법에 따라 처벌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북한 찬양·고무죄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국가의 안전존립과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해야 한다는 전제가 먼저 성립돼야 합니다. 이는 무분별한 기소 남용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검찰의 기소유예, 패소 우려했을 듯

검찰이 지난 9일 발표한 수사 결과에는 이 전제가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신씨가 북한을 긍정적으로 묘사한 표현들이 모두 찬양·고무에 해당하며 북한을 이롭게 했다고 판단했습니다. 마치 "북한 아이들이 노래를 잘한다"고 칭찬을 하면 죄인으로 만들어 버린 겁니다. 하지만 신씨의 책과 황선 대표와의 대담집은 북한의 가난한 실상을 묘사하는 데 상당 부분을 할애했습니다. (관련기사: 신은미가 '종북'? 도대체 무슨 근거로)

검찰은 지난 9일, 수사발표에서 신씨가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 정권 하에 있는 것을 참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는 등의 발언을 했고,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을 찬양하는 영화인 <심장에 남는 사람>의 주제가를 불렀다며 법 위반 혐의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북한에서 치밀하게 사전 연출된 사실에 기초하거나 신씨의 다년간의 경험에 기초한 것을 일방적으로 왜곡해 마치 그것이 북한 전체의 실상인양 오도했다"며 "결국 북한 세습정권과 독재체제를 미화 내지 이롭게 하는 결과를 야기했다"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럼에도 검찰은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습니다. 미국 시민권자로서 초범인 점, 민권연대와 황선 등이 주도하는 행사에 이용된 측면이 있는 점, 검찰조사에서 북한의 3대세습과 독재체재, 인권상황에 대해 비판적인 진술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기소유예는 검찰의 고육지책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신씨를 재판에 넘기면 검찰이 이기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겁니다. 이미 같은 이유로 기소했다가 대법원에서 패소한 경우가 있습니다. 지난해 8월, 대법원은 북한의 대남선전사이트 '우리민족끼리'의 트위터 계정 글을 리트윗(RT)해 북 체제를 찬양·고무했다는 혐의로 기소 당했던 박정근(27)씨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피고인의 행위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요건으로 충족되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관련 기사 : "트위터? 계속 해야죠, 하고 싶은 말 하면서") 이같은 경험이 있는 검찰로서는 신씨에 대해 기소유예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통일은 대박'이라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쉿?

'종북몰이' 논란에 휩싸여, 끝내 강제퇴거 처분을 받게 된 '재미동포아줌마, 북한에 가다' 저자 신은미씨.
 '종북몰이' 논란에 휩싸여, 끝내 강제퇴거 처분을 받게 된 '재미동포아줌마, 북한에 가다' 저자 신은미씨.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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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문제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신씨처럼 북한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경험담을 쉽게 얘기할 수 없게 됐습니다. 지난 10일, 젠 사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신씨와 관련해 "한국이 대체로 인권증진과 인권보호를 위해 지속적으로 헌신해 왔다"면서도 "(그러나) 국보법에 관해서는 일부 경우에서 보듯이 표현의 자유와 인터넷 접근을 제한하고 있어 우려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주요 외신들도 이 사건으로 인한 표현의 자유 위축을 거론했습니다. 프랑스 시사만평주간지 <샤를리 에브도>가 이슬람 무장단체로부터 테러를 당한 이후, 사상·표현의 자유를 우려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신씨가 지난달 10일, 한 강연에서 '폭발물 테러'를 당한 뒤로 강연을 취소하고 한 지인의 집에서 두문불출한 것도 그렇습니다.

또 문화체육관광부는 신씨의 책을, 2013년 상반기 우수문학 도서 선정에서 취소했습니다.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출간된 지 2년이 넘었고 우수문학도서로 뽑힌 지도 1년이 훌쩍 넘은 책입니다. 대한민국은 한 재미동포의 방북기를 용인할 수 없는 사회인가라는 의문이 들게 합니다. 

신씨는 통일을 바라는 마음으로 강연해 왔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진정 통일을 바란다면, 남북 국민 사이의 장벽을 허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8일, 검찰 수사 발표 직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자리에서였습니다. 수사 당국자에게 신씨의 마음에 한 번이라도 귀기울였는지 묻고 싶습니다.

"통일의 대상은 저 같은 평범한 국민들입니다. 국민들 마음 속에 분단의 장벽이 있다면 문제가 될 것입니다. 남북 동포들의 신뢰가 회복되지 않으면 그 어떤 통일 방안도 사상누각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집을 지을 때처럼, 통일의 기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남과 북을 오가며 사람들에게 이 벽을 허무는 일을 계속 하겠습니다."

신씨의 출국 이후, '종북몰이'는 당분간 수면 밑으로 가라앉을 듯 보입니다. 하지만 정부와 수사 당국이 '종북'이라고 낙인찍으면 그 대상은 언제든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공안당국과 보수 종편은 또 다른 희생양을 물색하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태그:#신은미, #종북콘서트, #마녀사냥, #강제출국,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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