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사고가 난 역 앞 모습
 사고가 난 역 앞 모습
ⓒ 최현정

관련사진보기


"여기는 D.C.에서도 가장 중요한 곳이에요. 정부 청사들이 몰려있고 제일 많은 지하철 노선이 교차하는 요지거든요. 마음속으론 지난 주 파리 테러가 떠오르지만, 제발 아니길 빌어봅니다."

지하철 랑팡플라자역 부근에 살고 있는 주민 버젠(Virdgen)씨는 경찰차와 소방차로 혼잡해진 역 앞을 지나며 걱정스런 마음을 내비쳤다.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을 비롯해 미 연방 정부가 몰려있는 워싱턴 D.C.의 지하철 한복판에서  12일(현지시각)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한 명이 숨지고 84명이 병원치료를 받고 있다. 그 중 두 명은 중상이다.

현지시각으로 월요일 오후 3시 30분, 워싱턴 D.C. 지하철 랑팡플라자(L 'Enfant Plaza)역을 막 지난 지하철 안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마침 러시아워가 시작되는 시간이라 여섯 량짜리 열차는 승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역에서 약 60m 정도를 지난 열차는 갑자기 멈춰 섰고, 승객들은 어리둥절해 했다. 곧이어 방송이 흘러나왔다.

"열차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무도 움직이지 마십시오. 화재는 없습니다. 그냥 연기만 납니다."

바로 앞에 있는 상대방의 얼굴을 확인하지 못할 정도로 연기가 자욱해진 열차 안에서 영문도 모르게 대기하고 있던 승객들은 역무원의 지시에 따라 모두 자세를 낮췄다. 옷가지며 목도리 장갑으로 입을 막은 승객들이 여기저기서 숨이 막혀 컥컥대는 소리가 들렸다. 기도 소리도 들렸다. 그렇게 악몽 같은 40여 분이 지나고 도착한 소방관들에 의해 객차 문이 열렸고 승객들은 터널을 통해 탈출했다.

파리 테러 악몽을 떠오르게 만든 사고

 사고가 난 역 주변으로 경찰차가 배치돼 있다.
 사고가 난 역 주변으로 경찰차가 배치돼 있다.
ⓒ 최현정

관련사진보기


숨진 여자 승객은 40여분의 공포를 격고 탈출 후, 호흡 곤란을 호소하며 쓰러진 것으로 보인다. 역 밖에 대기하고 있던 소방관들이 응급처치를 했지만 현장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비슷한 증상을 호소한 승객 84명도 D.C. 인근 병원에 흩어져 현재 치료중이다.

이번 사고는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을 비롯해 미국 정부의 주요 기관들이 모여 있는 D.C. 한복판에서 벌어져 더 충격적이다. 사고가 난 역은 지하철 초록 노선과 노랑, 파랑, 오렌지, 회색 노선이 교차하는 D.C 지하철 역 중에 가장 번화한 곳이었다. 더군다나 역 주변에는 미국 주택 도시 개발부(Department of Housing and Urban Development)를 비롯해 교통국(Department of Transportation), 에너지국, 교육부 등 미 행정부 주요 건물들이 밀집해 있다. 무엇보다 지난 주 발생한 프랑스 파리 테러의 악몽이 생생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소식을 접한 이들의 충격은 상당해 보였다.

랑팡플라자 역 인근의 연방정부 공무원이라고 밝힌 한 남성은 퇴근을 앞두고 뉴스를 들었다면서 오늘 일을 "비극적 사고"라고 했다. 마침 오늘은 워싱턴 D.C. 전역에 눈비가 오는 악천후로 연방정부 공무원들의 출근이 2시간 늦어진 흔치 않은 날이었다. 당연히 퇴근 시간도 그만큼 늦어져 본인을 비롯한 동료들은 사고를 면할 수 있었지만, 남의 일이 아닌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더불어 사고의 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메트로, 경찰, 소방관 등의 공조를 실망스러워 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열차 안에서 공포의 40여분을 보내야 했던 승객들은 물론이고 그 상황의 심각성이 제대로 공유되지 않은 듯했기 때문이다.

사고 직후인 오후 5시30분께, 나는 D.C. 남동쪽 외곽인 프린스조지 지역에서 다운타운으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버스 기사는 시내로 들어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하철이라며 나를 메트로 초록색 노선의 서던 에비뉴(Southern Ave)역에 내리라고 했다. 동시에 지역 주민 몇 명도 지하철역에 내렸는데, 생전 처음 가 본 역이라 유니폼을 입은 직원에게 시내 방향을 물어 지하철에 올라탔다.

 사고 역 주변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들의 모습.
 사고 역 주변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들의 모습.
ⓒ 최현정

관련사진보기


사고가 난 랑팡플라자 역을 지나는 노선이었지만 버스 기사와 역무원, 주민 누구도 사고에 대해 알지 못한 듯 보였다. 네이비 야드 볼파크(Navy Yard-Ballpark)역을 앞두고 모든 승객은 하차해 다음 역에서 셔틀버스로 갈아타라는 안내방송이 나왔을 뿐이었다. 한참을 걸어 올라가 만원 버스에 올라탄 초행길의 나는 묵직한 여행용 가방을 들고 힘들게 서 있는 청년에게 "원래 이 구간이 셔틀 노선이냐"고 물었다. 청년은 자기도 처음 겪는 일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내 옆에 앉은 화장을 짙게 한 여성은 씩씩거리며 친구들에게 이 상황을 문자로 성토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모두 나처럼 왜 자신들이 이 러시아워에 만원버스에 타게 됐는지 모르는 듯했다. 그때 조용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한 여성이 심각한 얼굴로 옆 승객에게 들고 있던 뉴스를 요약해 줬다.

"시내 역에서 사람이 죽었대요. 그래서 지금 모든 메트로가 다 운행을 못하고 있는 거래요."

피곤에 지친 버스 안 승객 누구도 처음 듣는 소식 같았다. 그 여성의 언질에 조용하던 셔틀버스 승객들은 핸드폰을 들고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묻거나 검색을 시작했다. 그리고는 실수로 누가 선로에 떨어졌거나 자살 같은 뉴스가 아닌 것에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나를 비롯한 오늘 월요일 오후의 D.C. 메트로 이용객들은 이렇게 뜻밖의 고생과 어리둥절함, 그리고 경악을 경험하며 반사적으로 지난 주 파리에서 벌어진 끔찍한 뉴스를 떠올려야 했다.

사고역인 랑팡역에서 외부인의 통제를 막고 있는 경찰은 사고 발생 3~4시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상황을 모르고 지하철을 이용하려는 승객들을 막느라 바빠 보였다. 지금 이 통제는 오후 4시께부터 시작됐고 몇 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현재 사고 원인은 수사 중인 것으로 안다며 자세한 상황은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많이 불안하지만, 수사 결과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밤 늦게까지 통제되는 지하철역
 밤 늦게까지 통제되는 지하철역
ⓒ 최현정

관련사진보기


"그건 그냥 사고라고 믿고 싶어."

사고로 갑자기 바빠진 셔틀버스 운전사 존슨은 사고역에서 차이나 타운역까지 계속해서 승객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오후 4시 16분께, 사고 객차에서 탈출한 승객들을 태운 것을 비롯해서 오늘 그녀가 겪은 일은 이전의 어떤 상황보다 매우 특별해 보였다. "오늘 근무는 평소 열차 운행이 끝나는 시각까지 계속할 것 같다"며 비상 상황에 당황했지만, 동료들과 얘기 나누며 큰일은 아닐 거라고 믿고 싶어 하는 모습이었다.

사고 역 주변에 사는 버젬씨도 "솔직히 속으로는 많이 불안하지만 수사 결과를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사고로 메트로가 통제된 시각, D.C. 다운타운 버라이존 센터에서는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겨울 스포츠인 아이스하키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평소처럼 입장 관객들의 소지품을 검사하는 모습도 오늘 오후에 벌어진 사고로 인해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노란 잠바를 입고 경비 업무를 하는 중년 남성도 저녁 뉴스를 보고 오늘 사고를 알았다고 했다.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그는 북적이는 관객으로 시끄러운 복도에서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열차가 아니라 역에서 난 화재라 하지 않나. 보다시피 메트로 역은 매우 낡았다. 난 그냥 낡은 역에서 일어난 사고라 생각한다. 그리고 사고이길 바란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2000년부터 시민 기자. 현 오마이뉴스 북미 통신원.

이 기자의 최신기사 6월 12일 아침 미국 뉴스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