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제균의 <국제시장>이 올해 첫 '천만영화'를 목전에 두고 있다. <인터스텔라>와 <호빗>의 등장으로 첫 스타트는 좋지 않았지만 입소문을 타면서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 '설마했던' 천만 관객 돌파가 머지 않았다.

이런 입소문은 사실 '좋은 입소문'만 나온 건 아니었다. 어떤 이는 이 영화를 '우파 영화'로 규정하고, 어떤 이는 '퇴행'이라고 주장한다.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왜 스크린으로 봐야 하느냐'는 비아냥도 들었고 '정신 승리를 하려는 모습에 토가 쏠린다'는 발언도 나왔다. 이 발언들을 '막말'로 무조건 밀어붙이는 이들도 나왔다.

좋든 나쁘든 <국제시장>은 그렇게 눈길을 끌었고 그렇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숫자는 늘어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윤제균은 다시 한 번 '상업영화 감독'의 입지를 확실히 굳혔다. 아버지의 이야기로 말이다.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면서 왜 '민중의 역사'를 다루지 않는지 아쉬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국제시장>이란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그때 그 사람들'의 마음 속을 들여다 봐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시장>의 덕수(황정민 분)은 '장남의 책임감'을 강조하는 아버지(정진영 분)의 말로 자신의 꿈을 희생한다

<국제시장>의 덕수(황정민 분)은 '장남의 책임감'을 강조하는 아버지(정진영 분)의 말로 자신의 꿈을 희생한다 ⓒ CJ엔터테인먼트


생각해보면 <국제시장>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는 한 가지 맹점이 있다. 그 당시를 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현재의 시각으로 보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제시장>이 던지는 메시지는 '아버지들이 왜 그런 삶을 살아야했나'였고 그들이 왜 지금의 우리가 보기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삶을 선택했는가를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장남의 책임감'이 앗아간 꿈, 그것이 그들의 삶이었다

주인공 덕수(황정민 분)는 어릴 적 헤어진 아버지(정진영 분)로부터 '장남의 책임감'을 듣는다. 여기에서부터 사실상 덕수 개인의 삶은 끝났다고 봐야한다. 그는 책임감있는 장남으로 살아가야 아버지와 동생을 만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가 부산의 '꽃분이네'를 계속 지키려는 이유도 여기에 기인하고 있다.

알려진 대로 영화 속 덕수와 영자(김윤진 분)는 바로 실제 윤제균 감독의 부모님 성함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즉 황정민이 맡은 '윤덕수'는 자신의 아버지를 투영하면서 지금은 세상에 없는 아버지가 살아있다면 이런 모습이었다는 것을 상상하며 만들어낸 인물이기도 하다.

이것은 '상업영화 감독 윤제균'에게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최근 영화계를 보면 20대가 주도하는 상황에서 벗어나 30, 40대가 주도하는 상황으로 바뀌고 있으며 여기에 그간 극장을 잘 찾지 않던 중장년층도 입소문이 나면 극장으로 달려가는 상황이라는 것을 윤제균은 간파하고 있었다.

<국제시장>의 흥행은 달라져가는 극장가의 흥행 풍속도를 간파한 윤제균의 상업 전략이 빛을 발한 것이다. 결론은 <국제시장>은 잘 만든 상업영화라는 것이다.

덕수에게는 '장남의 책임감'이 일종의 족쇄이기도 하다. 동생이 대학을 들어가야 하기에 그는 돈을 벌 수 있는 파독 광부의 길을 가야했고 여동생(김슬기 분)의 결혼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월남행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 그 이유를 덕수는 이렇게 정리한다.

"내 팔자가 그런 걸 어떡하라고?"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 자랑이 아닌 '자위'다

 덕수는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없었다. 우리가 '자랑'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덕수의 대사들은 '자랑'이 아닌 '자위'로 들린다

덕수는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없었다. 우리가 '자랑'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덕수의 대사들은 '자랑'이 아닌 '자위'로 들린다 ⓒ CJ엔터테인먼트


그렇게 덕수는 희생된다. 장남의 책임감을 지켰지만 정작 자신의 꿈인 선장이 되지는 못했다. "아버지,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라고 덕수는 말하지만 그 말이 나올 때 나오는 화면은 가족들이 행복하게 노래를 부르고 잘 사는 장면이 아니라 그들과 떨어져 따로 골방에서 속으로 말하는 덕수의 뒷모습이다. 이것은 결코 아버지에게 '잘 살았다'라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위로' 즉 자위일 뿐이다.

즉, 덕수의 말은 자랑이 아니라 자위의 연속이다. "이 고생을 우리 아이들이 겪은 우리가 겪은 게 다행"이라는 편지글도 자랑이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가야한다는 자위였던 것이다. 윤제균은 그런 자위가 고단한 삶 속의 작은 낙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런 생각이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어려웠다는 걸 보여준다.

부부싸움을 하던 덕수와 영자가 국기 강하를 알리는 애국가 소리에 멈칫멈칫하다 결국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순간, 영자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마지막까지 뭉그적대다가 결국 눈을 흘기는 한 노인의 눈치에 어쩔 수 없이 경례를 한다. 영자의 원망어린 표정을 주시했다면 이 장면을 결코 '애국'을 강조하는 장면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부부싸움 중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야하는 영자(김윤진 분)의 원망어린 표정을 지켜본다면 이 장면을 '애국 강요'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부부싸움 중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야하는 영자(김윤진 분)의 원망어린 표정을 지켜본다면 이 장면을 '애국 강요'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 CJ엔터테인먼트


도리어 이 장면은 영자의 표정을 통해 '대체 왜 이런 국가의 국기를 보며 경례를 해야하는가?'를 질문한다. 남편이 그토록 고생을 하고 돈을 벌지만 과연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국가는 과연 남편이 생고생을 하는 걸 알고나 있을까? 상황만 보고 '국가주의의 끔찍함'만을 생각한다면 영자의 표정을 유심히 지켜보기를 권해본다.

'국가를 원망하는' 영자의 표정 지켜봤다면...

<국제시장>은 최근 영화관의 새로운 부류로 각광받고 있는 30, 40대와 입소문이 좋으면 이제 극장행을 결정하는 중장년층의 마음을 움직인 영화다. 상업적이라는 지적은 이 영화에서는 도리어 장점이며 역사를 다루지 않았다는 점 또한 비판의 대상은 아니다.

영화는 그 때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이해하고 '왜 그렇게 사셨나'를 이해하면 그만인 영화다. 우리는 '민중의 역사'라고 하면 혁명이나 시위에 참여한 이들을 생각한다. 하지만 그 당시 묵묵히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자신을 희생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도 결국은 우리와 호흡했던 '민중'이었다. 비록 우리가 보고싶어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국제시장>도 엄연한 민중의 역사였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 시대, 이런 삶이 존재한 것은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국제시장 윤제균 황정민 김윤진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