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 살 집이 없다. 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뭔가를 훔치면 될 것 같다. 그것도 완벽하게. 대상을 물색하고, 계획을 세운다. 똑똑한 공범들이 함께한다. 도둑질이 늘 그러하듯 녹록지가 않다. 게다가 훔칠 대상이 강아지고, 주범은 10살 소녀다.

지난달 31일 개봉한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아래 <개훔방>)은 비운(?)의 영화다. 시사와 개봉 직후 매체 관계자들과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지만, 흥행 성적이 신통치 않다. 천만 돌파를 앞둔 <국제시장>의 여파로 개봉부터 200개 안팎의 스크린밖에 확보하지 못한 타격이 컸다. 멀티플렉스 체인이 없는 배급사에 중저예산 대중영화들이 겪는 스크린 확보의 설움이란 이중고를 고스란히 겪고 있는 것.

사실, 동물이 등장하고, 아이가 주인공인 영화는 충무로에서 흥행이 신통치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훔방>은 다르다. 아이가, 동물이 등장하던 기존 한국 가족영화와 그 결을 달리한다. 이렇게 홀대 받아서는 안 될 영화란 얘기다. 안철수 의원을 비롯해 이미 관람한 이들의 추천이 쏟아지는 이 영화, 그래서 영화계의 '허니버터칩'으로 불리는 이 영화, 뭐가 그리 다를까.

할리우드 뺨치는 완성도 돋보이는 '나와 우리의 집은 어디인가'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아역 3인방.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아역 3인방. ⓒ 리틀빅픽쳐스


아빠가 집을 나갔다. 그러자, 집에서도 쫓겨났다. 딱 일주일만 있다 이사를 가자던 엄마는 미니 봉고차에 살림을 꾸렸다. 한 달째 그 말만 재방송하는 엄마를 이제는 더 이상 믿을 수 없다. 그래서 10살 지소는 계획을 세운다. '평당(이란 지명으로 착각한) 500만 원'짜리 전셋집을 구하기 위한 완벽한 계획을.

계획은 이렇다. 개를 훔친다. '사례금 500만' 원을 명시한 전단을 붙인다. 그 전단을 주인이 발견한다. 개를 데려다 준다. 돈을 받는다. 엄마 정현(강혜정 분)과 동생 지석(홍은택 분), 그리고 언젠가 돌아올 아빠와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된다. 그리하여, 이 깜찍한 10살 지소(이레 분)는 행동파 친구 채랑(이지원 분)과 의외로 천재인 지석과 행동에 나선다. 엄마가 일했던 레스토랑의 건물주인 노부인(김혜자)의 애완견 월리(개리 분)를 훔치기 위해.

단언컨대, <개훔방>은 한국 가족영화의 품격을 한 단계 끌어 올린 작품 되겠다. 그런데 없는 게 많다. 눈물 짜내는 신파도 없고, 혈압을 올리는 극한의 악당도 없고, 자극적인 설정이나 캐릭터도 없다. 대신 아이디어 넘치는 아기자기함이 있고, 2006년생 이레부터 1941년생 김혜자까지 연기자들의 매끄러운 연기가 있으며, 곳곳에 숨겨진 한국사회에 관한 유의미한 코멘트들이 있다.

우선 아이디어. 다소 심심해 보일 수 있는 영화를 위해 (호러영화를 주로 만들었던) 김성호 감독은 지소의 계획들을 호감 가는 시각화를 통해 관객들의 관심을 끌어낸다. 촬영과 편집의 리듬감도 나무랄 데 없다. 대형(?) 사건이 없는 대신 월리를 훔치는 장면이나 클라이맥스의 개를 돌려주는 과정에서의 감정선도 매끄럽다. 흡사, 할리우드 가족영화의 군더더기 없는 외형이랄까.

천재 연기자 이레를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을 보라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장면들.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장면들. ⓒ 리틀빅픽쳐스


사실 <개훔방>이 가족영화로 방점을 찍는 공은 연기자들에게 돌려야 마땅할 것 같다. 잘 훈련된 개리와 함께 극의 전면에 나선 아역배우 이레, 이지원, 홍은택 3인방은 최근 한국영화에서 가장 좋은 '아역 앙상블'을 선사한다. 이들의 귀여우면서도 눈물을 쏙 빼는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드라마에서 각광받는 아역배우들의 활약을 스크린으로 그대로 옮겨온 듯한 기분이다. 개부터 아역, 그리고 성인 연기자의 앙상블은 이 소품의 품격을 한껏 높였다고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이준익 감독의 <소원>에서 아동 성폭행 피해자 역할을 두말할 나위 없게 연기했던 이레는 단연 <개훔방>의 정점이다. 영민한 듯 깜찍한 꼬마 도둑이 엄마와 화해하고 자기 죄를 뉘우치며 성장하는 이 영화의 주제를 이레는 성인 연기자 못지않은 감성으로 소화해냈다.

적재적소에서 극을 뒷받침해 주는 성인연기자의 몫도 크다. 연말 시상식에서 세월호 사건을 언급하고 유가족들에게 위로를 보냈던 최민수는 의외의 재발견이다. 이레에게 아빠의 심정을 들려주는 노숙자를 연기한 최민수는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흔쾌히 출연을 수락했다는 후문. 제작진에 의하면 촬영 전부터 그는 세월호 사건을 언급하며 가족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최민수가 의외의 듬직함으로 드라마 <오만과 편견>에서의 안정감을 재확인해 줬다면, 강혜정은 친숙함으로 극을 뒷받침했다.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하루 엄마로 출연하는 강혜정은 스크린에서 최초로 모성애를 연기하며 연기 변신을 꾀했다. 여기에 지소에게 깨우침을 주는 김혜자의 귀부인 연기는 아역 이레와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며 극의 무게를 더한다. 그리고, 이 김혜자가 연기한 노부인이 주는 교훈에 이 영화의 핵심이 숨어 있다.

'하우스'와 '홈'을 연결 짓는 이 선한 영화의 주제의식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포스터.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포스터. ⓒ 리틀빅픽쳐스


사실 이 영화의 제목은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지만, 그 주제는 '나와 우리의 집은 어디인가'로 보면 틀리지 않다. 영화는 끊임없이 자기 집(House)을 갖기 어려운 세태를 반영하려고 노력한다. 지소가 500만 원을 얻기 위한 이유 역시 단연 봉고차 떠돌이 생활이 아닌 제 집을 갖기 위함이다.   

이 집은 물론 '홈(Home) 스위트 홈'으로 연결된다. 가장이 부재한 지소네 가족이 꿈꾸는 생활은 물론 완전한 가족의 재결합이다. 지소는 이 집을 다시 갖게 되면 가족이 다시 뭉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멈추지 않는다. 정현이 동네를 떠나지 못하고 배회하는 것 역시 사업 실패로 집을 나간 남편을 기다리기 위함이다.

이 '홈'과 '하우스'란 소재는 바바라 오코너 작가의 유명 원작에서 많은 변형을 거쳤다는 <개훔방>에서 놓칠 수 없는 문제의식으로 연결된다. 하우스푸어나 렌트푸어를 넘어 미국에서도 차 안에서 떠돌며 생활하는 빈민층의 극심한 생활고는 사회 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차에서 잠을 자고, 공중화장실에서 씻고, 홈리스 센터에서 의와 식을 해결하는 그들이야말로 지소가 지닌 공포의 극대화 버전이다.
 
<개훔방>은 이 공포를 유쾌하게 풀어나가는 한편 그러한 상황 속에서 도둑질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지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염원하는 밝은 성장 영화다. "가끔 어려운 상황이라면 나쁜 짓을 할 수 있지만 (결과가 좋더라도)그 나쁜 짓이 결코 사라지는 건 아니다"라는 노부인의 대사가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바야흐로, '나쁜 놈들 전성시대'이자 범죄자들이 권력을 쥐고 갑들의 횡포가 횡행하는 지금, 현재, 여기에서 <개훔방>이 전하는 교훈은 꽤나 유의미하고 유익하기까지 하다. 그 의도가 너무 선명하고, 예상 가능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아쉽지만, 아이들을 등장시킨 보편성과 감동의 깊이를 더한 점으로 그 흠결이 상쇄된다. 그래서 이 영화, 집 없는 지소 가족처럼 스크린이 없어 퐁당퐁당 면치 못한 것이 아쉽기만 하다. 20015년 1월에 만난 이 '선한영화'는 좀 더 응원을 받아 마땅하다.

개를훔치는완벽한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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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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