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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때 서울로 대학 탐방을 갔었다. 당시 시골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사기를 높여주고자 서울 유명한 학교를 탐방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우리 학교도 예외는 아니었고 그 당시 한창 뜨고 있었던 경기도의 한 대학교를 시작으로 서울 유명한 대학교 몇 군데를 탐방하는1일 투어를 진행했다.

학생식당에서 점심도 먹어보고, 우리학교 출신 선배들도 만나서 학교의 좋은 점에 대해 들었는데,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학생식당의 밥도, 선배의 조언도 아니었다. 바로 대학 캠퍼스에서 느껴지는 젊음의 분위기였다.

지금이야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취업준비를 해야 한다지만, 내가 대학을 다녔던 2000년대만 해도 입시지옥을 벗어난 대학생들의 모습에는 여유와 낭만이 있었다. 그래서 대학교 캠퍼스를 거닐며 잠깐이나마 자유를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속에는 대학을, 기왕이면 내가 원하는 대학을 가고 싶다는 의지를 북돋아 주었던 것 같다.

아일랜드 지성의 상징, 더블린 트리니티 대학

트리니티 대학의 정문. 저 문을 지날때면 항상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트리니티 대학의 정문. 저 문을 지날때면 항상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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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의 트리니티 대학(Trinity College)을 갈 때마다 느껴지는 감정도 이와 비슷하다. 이 학교가 아일랜드 제 1의 학교이고 수많은 노벨 수상자를 배출한 '대단한' 학교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더라도 대학 캠퍼스를 방문하는 것은 나에게 사막의 오아시스를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일상의 갈증을 해결해준다.  

트리니티대학은 아일랜드 최초, 최고의 대학으로 1592년 엘리자베스 1세 여왕(Queen Elizabeth I)에 의해 건립되었다. 이 대학은 영국의 옥스포드 대학(OxfordUniversity)과 캠브리지 대학(Cambridge University)을 모델로 설립되었다. 19세기 중반에는 트리니티 대학이 옥스포드 대학보다 더 컸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그 당시 아일랜드 국교인 가톨릭교를 막고 영국 신교를 전파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학교를 설립했다.

처음 설립했을 당시 유럽에서 처음으로 여성들의 입학을 허용하였지만 영국 신교 제자 양성을 위한 학교였기 때문에 가톨릭교도의 입학은 엄격히 금지됐다. 1970년이 지나서야 가톨릭교도 학생들의 입학이 허용되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아일랜드 최고의 대학이지만 한편으로 정통 아이리시를 거부한 학교라는 점에서는 아이러니하다.

아일랜드 최초, 최고의 대학으로 유명한 졸업생들은 올리버 골드스미스(Oliver Goldsmith),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사무엘 버켓(Samuel Beckett), 브람 스토커(Bram stoker) 등이 있다.
 아일랜드 최초, 최고의 대학으로 유명한 졸업생들은 올리버 골드스미스(Oliver Goldsmith),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사무엘 버켓(Samuel Beckett), 브람 스토커(Bram stoker) 등이 있다.
ⓒ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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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니티 대학의 정문을 통과하면 십자형 모양의 의회 광장(Parliament Square)이 펼쳐지고 중앙에는 종탑(Campanile)이 보인다. 트리니티 대학의 상징이자 매년 선거철이나 대학 광고의 포스터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 종탑은 1853년에 건축가 찰스 레니온(Charles Lanyon)에 의해 설계됐다.

높이는 30미터이며 종탑의 디자인은 이탈리아의 건축물들과 많이 닮아 있다. 이 대학의 상징물인 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숨어있는데 그 중 하나는 종탑의 종이 울릴 때 그 아래로 지나가는 학생은 시험에서 낙제를 한다는 것이다. 믿어나 말거나 한 이야기지만 학교의 시험기간에 저 탑 아래로 지나가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단다. 아무것도 모르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관광객일 것이다.

트리니티 대학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학교는 단과대학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중앙캠퍼스에 모든 건물이 있지 않다.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처럼 트리니티 대학도 캠퍼스 밖에서 이 학교 건물을 종종 볼 수 있다. 역사가 깊은 학교인 만큼 메인 캠퍼스의 전경은 우아하고 클래식하다. 바닥에 울퉁불퉁하게 깔려 있는 자갈들을 걷고 있으면 마치 중세의 어느 곳에 들어온 느낌이다.

아일랜드는 잔디가 자라기에 최적인 나라로 캠퍼스 곳곳에 심어진 잔디는 사계절 내내 푸르름을 유지한다. 잔디가 망가질까봐 잔디밭 안에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는 한국의 캠퍼스와는 달리 이곳 학생들은 해가 뜨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잔디밭이 앉거나 누워서 책을 읽고, 점심을 먹고, 친구들과 담소를 나눈다. 그들에게는 일상의 풍경이지만 여행자들에게는 그런 풍경들마저 아름답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건 당연한 법.

트리니티 대학의 꽃, 켈즈 복음서

켈즈 복음서(The Book of Kells)가 전시되어 있는 구도서관(Old Library) 모습
 켈즈 복음서(The Book of Kells)가 전시되어 있는 구도서관(Old Library) 모습
ⓒ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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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니티 대학이 관광지로 유명세를 떨치는 것은 학교 안에 전시되어 있는 켈즈 복음서(The Book of Kells)와 구도서관(Old Library) 때문일 것이다. 혹자는 켈즈 복음서를 빗대어 '모나리자 신드롬'이란 말을 하기도 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모자리자 원본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중의 하나지만 막상 가 보면 기대했던 것만큼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다. 그처럼, 켈즈 복음서 전시장 역시 아일랜드에서만 볼 수 있는 현존하는 유일한 예술품이지만 이런 류의 작품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겐 특별한 감동을 주지 못하기도 한다. 무료 관람도 아니고 9유로라는 거금을 투자했으면 더 많은 것을 느껴야 한다는 심적 부담도 있으리라. 그래도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전시관을 찾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면 이곳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트리니티 대학의 꽃이라고도 할 수 있는 켈즈 복음서는 9세기 초, 스코틀랜드 아이오나 지방의 수도승들이 복음 전달을 목적으로 만든 성서 필사본이다. 이 책에는 신약 4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가 라틴어로 번역되어 있는데 켈트족은 그들의 독특한 예술 정신을 발휘해 그에 걸맞은 삽화를 화려하고 아름답게 그려 놓았다. 복음서의 삽화들은 각 페이지마다 다른 디자인과 다양한 색채를 사용했다. 삽화의 장식은 너무 복잡해서 확대경을 써야 잘 볼 수 있을 정도다.

물감이 없던 시절에 광물이나 동·식물에서 추출한 천연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예슬로 승화시킨 수도승들의 고귀한 작업을 실제로 보면 미술에 일가견이 없는 사람들조차도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전시관 안에는 켈즈 복음서 이전에 제작된 책들부터 고대 수도사들의 기록문화를 소개해 놓았다. 그 중 켈즈 복음서는 현존하는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 불리고 있다. 중세 기독교 문화의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켈즈 복음서. 중세 역사의 새로운 시도를 보고 싶다면 켈즈 복음서 전시관을 꼭 한 번 찾아가보도록 하자.

압도되는 웅장함이 느껴지는 곳, '롱 룸'

구도서관(Old Library)의 롱 룸(Long Room)
 구도서관(Old Library)의 롱 룸(Long Room)
ⓒ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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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즈복음서 전시관 끝에는 자연스럽게 이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직선으로 된 단조로운 계단을 올라가면 기대치 않았던 엄청난 광경을 눈 앞에서 경험할 수 있다. 바로 구도서관의 롱 룸(The Long Room)을 만나는 순간이다.

65미터의 규모를 자랑하는 롱 룸은 1732년부터 20년이 걸려서 지어진 도서관으로 1850년 무렵에 책을 더 보관하기 위해 천장을 더 올려 지었다. 증축 공사 덕분에 롱 룸은 웅장함을 가질 수 있었고 트리니티 대학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 중 하나가 되었다. 20만여 권의 가죽으로 된 장서가 짙은 갈색빛이 도는 도서관 안에 빼곡히 들어 있다고 상상해보라. 그 장관을 어찌 한마디로 일축할 수 있으랴.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2, '클론의 공격'>에 나오는 제다이 어카이브(Jedi Archives)의 모티브로도 사용된 롱 룸은 양쪽으로 빼곡히 꼽힌 책들과 높은 천장고 때문에 도서관이라기 보다는 규모가 어마어마한 고딕성당 같은 느낌도 준다. 이 많은 책들 중 내가 아는 책이 하나도 없을지언정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영광인 그런 느낌이랄까.

또한 롱 룸에서 흘러나오는 바로크 시대의 음악은 도서관의 규모만큼이나 여행자에게 강한 인상을 주는 요소임이 분명했다. 정확히 어느 시기, 누구의 음악인지는 알 수 없어도 쳄발로(cembalo)의 연주가 잔잔히 흘러나오는 도서관 안에 있으면 누구라도 마음의 평온함을 느낄 수 있다. 도서관 유리창 사이로 스며들어오는 햇살은 훨씬 더 따뜻했고 과거의 어느 순간에 와 있는 착각이 들 만큼 황홀했다.

롱 룸(Long Room)의 전경
 롱 룸(Long Room)의 전경
ⓒ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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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시간이 허락된다면 트리니티 대학의 교정을 걸어보자. 구내 매점에서 파는 커피 한 잔을 들고 천천히 대학 구석구석을 걸으며 그곳의 여유와 낭만을 느끼는 것 만으로도 새로운 여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트리니티 대학 (Trinity College, Dublin, Ireland)
Address: College Green, Dublin 2, Ireland
Website: http://www.tcd.ie/
Trinity tours: https://www.tcd.ie/Library/bookofkells/trinity-tours/

*The Book of Kells & Old Library (켈즈 복음서 & 구 도서관)
Website: https://www.tcd.ie/Library/bookofkells/book-of-kells/
Open:
월 – 수: 09:30 am - 17:00 pm
일(5월 – 9월) 09:30 am - 16:30 pm
일(10월 – 4월) 12:00 pm - 16:30 pm
Admission fee: €9 (adult)/ €8(Students/Senior Citizens)/ Children (under 12): free



태그:#아일랜드, #더블린, #트리니티대학, #구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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