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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일본 목화꽃과 솜, 오른쪽은 한국 목화꽃과 솜
 왼쪽은 일본 목화꽃과 솜, 오른쪽은 한국 목화꽃과 솜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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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처음 만난 곳도 목화밭 이라네~ 우리 처음 사랑한 곳도 목화밭 이라네~ 밤 하늘에 별을 보~며 사랑을 약속하던 곳 그 옛날 목화밭 목화밭…."
- 하사와 병장 <목화밭> (1977년)

어릴 때의 기억이다.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목화밭을 배경으로 한 사랑노래를 들었다. 고향에는 목화밭과 뽕나무밭이 있었다. 누에가 뽕잎을 먹고 번데기가 되면서 고치를 만드는 것을 보고 자랐고, 넓은 목화밭이 펼쳐져 있던 보성강에서 물놀이를 했다.

그 시절 두꺼운 목화솜 이불에, 아마도 동생이 지도를 그렸을 것이다.

어머니는 묵직한 솜이 들어있는 이불 속을 빨랫줄에 널었다. 실밥을 뜯어낸 얇은 홑청은 빨래를 한 후 저녁에 입으로 물을 뿌렸다. 빨간 숯을 넣은 무쇠다리미로 구김을 펴면서 다림질을 했다. 흐릿한 전깃불 아래서 자식들이 홑청을 평평하게 잡아 당기면 어머니는 이불에 듬성듬성 바느질을 하면서 말했다.

"또 오줌 싸면 소금 얻어오니라."

고려 말기 학자인 문익점이 중국 원나라에서 '붓뚜껍'에 넣어 목화씨앗을 들여왔다고 한다. 당시 백성들의 삼베옷을 무명옷으로 바꾼 계기로 알려지고 있다. 그 후로 백의민족(白衣民族)의 상징이 된 무명옷은 산업화의 영향으로 줄어들었다. 1980년대에 나일론 합성섬유가 대량생산되면서 목화는 농촌에서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종자에 따라 꽃과 솜의 색깔 달라

목화는 종자에 따라 잎의 모양과 꽃 색깔이 다르다. 오른쪽은 목화열매 '다래'
 목화는 종자에 따라 잎의 모양과 꽃 색깔이 다르다. 오른쪽은 목화열매 '다래'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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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화학·합성제품이 생활 속에 자리하면서 원인이 분명치 않은 아토피 피부질환이 생겨나고 있다. 사람들은 순면제품을 찾기 시작했다. 텃밭 농사에서 몇 그루씩 심어보기도 한다. 어릴 때 추억에 대한 향수를 느껴보기도 하고, 아기의 이불이나 옷을 직접 만들어주고 싶다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많지는 않지만, 덕분에 목화농사는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남아 있다.

목화는 따뜻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식물이다. 주로 남도지역에서 많이 재배되는 이유도 기후와 연관이 있다. 서울·경기지역을 비롯한 중부지방에서도 재배는 가능하다. 5월 초에 씨앗을 파종하거나 모종으로 옮겨 심으면 9월 중순부터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 부드러운 솜을 수확할 수 있다. 첫 열매가 익어갈 쯤, 열매에 양분을 집중시키고 성장을 억제하기 위해 줄기 맨 윗부분의 순을 잘라주기도 한다. 품질 좋은 목화솜을 얻기 위한 방법이다.

목화 씨앗은 솜에 둘러싸여 있다. 씨앗에 붙은 솜털은 물에 하루정도 담가 두면 쉽게 떨어지고, 딱딱한 씨앗은 물을 먹어 싹을 틔우는 데 도움이 된다. 나무처럼 딱딱한 가느다란 줄기와 손바닥만한 잎이 달리고, 여름을 지나면서 꽃이 핀다. 목화종자에 따라서 꽃 색깔이 다르고 품질과 수확량도 다르다. 꽃이 지고나면 '다래'라고 부르는 열매가 열리고 그 속에서 솜이 만들어진다. 열매가 익으면 껍질이 터지면서 하얀 솜이 부풀어져 나온다.

목화솜과 씨앗을 분리하는 도구 '씨아기'
 목화솜과 씨앗을 분리하는 도구 '씨아기'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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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솜을 쓰기 위해서는 솜과 씨앗을 분리해야 한다. 전통방식으로 솜과 씨앗을 분리해주는 '씨아기'에 솜을 넣고 돌리면 빠르게 솜을 씨앗에서 분리할 수 있다. 씨아기가 없다면 손으로 뜯어서 분리해도 된다. 분리된 솜을 몽글몽글 다듬어주는 활로 솜타기 과정을 거친다. 이어 막대기로 솜을 돌돌 말아서 가래떡처럼 길게 말아주는 고치말기를 한다.

고치말기를 한 솜은 '문래'를 돌려서 실을 뽑아낸 후, 씨줄과 날줄로 엮어주는 무명날기와 무명매기를 거친다. 그리고 '베틀'에서 옷감을 짠다. 전통적인 직조기술은 씨아기-문래-베틀을 거친다. 목화솜에서 실을 뽑아내는 과정부터 반복적이고 고된 작업을 지나 옷감으로 만들어진다. 우리 어머니와 할머니 세대의 고된 시집살이의 상징이기도 한 것이 문래와 베틀이다.

석유, 핵발전소, GMO 그리고 목화

지난 2014년, 하자센터 텃밭에서 재배된 후쿠시마에서 건너온 목화
 지난 2014년, 하자센터 텃밭에서 재배된 후쿠시마에서 건너온 목화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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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섬유는 석유에서 원료를 추출하여 만든다. 정점을 찍은 석유생산량이 감소하며, 가격이 오르는 '피크 오일'의 위기는, 값싼 화학섬유의 시대를 마감할 수 있다. 목화솜을 재배하여 천연섬유로 돌아가는 생활방식을 대안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

2011년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에서는 폐허가 된 지역의 공동체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사람이 모여 목화를 재배했다. 무너진 희망을 다시 살리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목화농사는 방사능 검사를 거친 솜 인형과 면옷의 생산·판매로 이어졌다.

프로젝트를 진행한 후쿠시마의 이와키 지역에서 재배한 목화씨앗은 2014년에 서울 영등포구 하자센터에서도 재배되었다. 일본의 토종인 차면(茶綿)종자로 꽃 색깔은 아이보리, 솜은 옅은 갈색이었다. 한국토종 목화와는 꽃과 목화솜의 색깔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한국 토종과 일본의 토종 목화는 같은 밭에서 재배됐고, 무사히 목화솜을 수확했다. 내년에도 목화농사는 계속될 것이다.

목화는 여전히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재배되고 있으며 그 쓰임새도 다양하다. 인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고 있지만, 대부분이 유전자가 변형된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종자다. 2002년, 몬산토 사의 해충저항성 GMO 목화의 재배를 허용한 인도에서는 잎과 줄기를 먹은 염소가 집단 괴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몬산토의 주장처럼 수확량이 많거나 해충저항성이 크지도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병해충이 발생하여 농사를 망치거나 해마다 돈 주고 사야하는 종자의 가격이 폭등하면서 농민의 자살이 급증했다.

GMO 목화 사건을 계기로 인도의 환경운동가 '반다나 시바'를 중심으로 한 민간단체들은 GMO를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식량주권과 더불어 종자주권을 지키자며 토종종자를 보급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경기도 양주시와 전남 곡성군에서는 매년 9월 중순경에 목화 축제가 열린다.



태그:#목화, #목화축제, #문래, #GMO, #몬산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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