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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SF, 소셜픽션(Social Fiction)

SF(Science Fiction)는 매우 매혹적인 영화 장르다. 그 영화의 내용을 떠나서, 과학기술이 어떤 모습으로 발달할지, 그리고 그 발달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SF는 종종 그 자체가 현실에도 영향을 끼치게 마련인데, 이는 우연이 아니다. 결국 우리의 미래는 그와 같은 말도 안 되는 상상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불가능할 것 같던 과학기술들이 SF를 통해 상상하게 되고, 이어서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바탕으로 현실화되는 것이다.

2014년 마지막 특강
 2014년 마지막 특강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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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 또 하나의 SF가 있다. 공상과학이 아닌 사회적 상상, 즉 소셜픽션(Social Fiction)이 바로 그것이다. 2014년 12월 18일 희망제작소 이원재 부소장은 강동구에서 지역의 사회적경제와 마을공동체의 발전을 위한 강의를 했었는데, 그는 그 자리에서 소셜픽션(Social Fiction)을 이야기하며, 상상력이 과학기술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도 적용된다고 지적했다.

사회가 점점 살기 팍팍해지고 어려워지면서 사람들은 현실에만 급급하게 되는데, 그때일수록 좀 더 멀리 내다보고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에 대해서 상상하자는 것이다. 결국 SF영화의 과학기술마냥 사회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대로 변하기 때문이다.

이원재 부소장은 이와 관련하여 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의 설립자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무하마드 유누스의 말을 인용했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한다. 현재는 20년 전의 눈으로 보면 사실상 공상과학소설이다(Science fiction)이다... 중요한 것은 과학이 이 과학소설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상상했기 때문에 만들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소셜픽션(social fiction)이 없다. 그런 것을 상상하도록 훈련되지 않았다... 그래서 사회는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 우리가 과학에 대해 가진 것처럼 사회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했다면, 우리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또 다른 SF, 소셜픽션
 또 다른 SF, 소셜픽션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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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즈가 내다본 100년 뒤 사회

이원재 부소장은 1920~1930년대 대공항을 해쳐나갔던 케인즈를 예로 들며 소셜픽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케인즈는 1930년 <우리 후손들의 경제적 가능성>(Economic Possibility of Our Grandchildren)이라는 책을 내면서 100년 뒤인 2030년의 삶을 상상했는데, 바로 그 사회적 상상력을 통해 대공황의 해결책을 찾게 되었고, 바로 그것이 소셜픽션이다.

케인즈는 대공항이라는 자본주의 전대미문의 위기 앞에서 오늘 하루 끼니를 걱정하기보다 근본적으로 다수 대중의 생계문제에 대해 고민을 했고, 경제학자로서 단순명쾌한 답을 도출해 내었다. 생산성의 향상, 즉 일하는 시간 대비 생산량이 많아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케인즈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장기적이고 궁극적인 해답인 생산성의 향상을 위해 거꾸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고민했고, 그 결과 공격적 정부지출이라는, 케인즈의 공황해법을 도출해 내었다.

현재 직면한 문제들에 연연하지 않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이상향을 그린 뒤 그 비전과 목표에 맞게 역방향으로 기획을 함으로써 오히려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한 방법으로 현재의 문제를 풀게 되었다.

사회적 상상은 쉽지 않다
▲ 100년 뒤를 상상하는 청중들 사회적 상상은 쉽지 않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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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현재의 문제를 풀어낸 케인즈의 방식. 이원재 부소장은 이것이 곧 소셜픽션이라고 이야기했다. 소셜픽션이란 특정한 사회 이슈, 또는 공간을 주제로 제약조건 없이 이상적인 미래를 그리는 방법의 사회혁신 기획으로서, 사회적 상상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때 상상은 공상이나 예측과는 달리, 의지가 담겨야 한다. '이런 미래가 올 것'이라는 막연한 예측이 아니라, '이렇게 되면 좋겠다'는 염원을 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염원이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공유될 때, 사회는 변화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현재 우리 사회, 나아가 작금의 자본주의는 그 어느 때보다 소셜픽션이 필요한 상황이다. 케인즈가 제시했던 수정자본주의도 결국 인간이 만들었던 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횡행했지만, 2008년 경제위기를 계기로 이제는 그 역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인식했기 때문이다.

점점 심해지는 양극화와 밑으로부터 붕괴되는 삶. 이런 척박한 시대에 과연 우리는 무엇을 상상할 수 있을까?

새로운 사회의 키워드

열강 중인 이원재 부소장
 열강 중인 이원재 부소장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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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이원재 부소장은 새로운 세계를 위한 사회적 상상력을 논하며 크게 네 가지의 키워드를 제시했다.

첫째 키워드는 참여와 공유이다. 그는 미래 사회가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열린 방식으로 담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지금껏 인류의 역사는 소수의 권력독점으로부터 시작해서 다수가 권력을 나누는 시대로 변해왔는데, 그 지향성은 계속될 것이며 지금보다도 더 많은 이들이 공평하게 사회적 참여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많은 이들이 주목하는 정치에서의 직접민주주의나 경제에서의 공유경제 등은 바로 그와 같은 맥락에서다.

둘째 키워드는 자립이다. 참여의 전제는 자립이다. 스스로 설 수 있는 사람들이 올바르게 참여할 수 있다. 노인이나 빈곤층, 여성 등에 대한 차별과 소외도 문제가 되지만, 그들을 올바르게 세우지 않고 의존적으로 만드는 것 역시 문제다. 의존은 굴종을 낳고, 굴종이 오래되다 보면 자기 존엄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셋째 키워드는 달라지는 정부이다. 기존에는 제1섹터 국가, 제2섹터 시장, 제3섹터 사회라고 구별되었지만 이제는 그 주체와 대상이 파괴되어야 한다. 국가와 사회가 협치를 할 수 있으며, 사회와 시장이 공공을 위한 거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각 섹터가 자신의 분야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상호간의 교류와 소통으로 새로운 형태의 거버넌스를 이뤄야 한다.

넷째 키워드는 알고리즘 사회다. 과거에 사람이 하던 일을 점점 더 기계가 대체한다. 과거 지식의 알고리즘을 오늘의 기술에 입히면 기계가 선생님처럼 직접 수학을 가르치고, 기자처럼 기사도 쓸 수 있다. 우리가 이런 기계들을 잘만 사용하면 기계처럼 일하는 인간은 점점 더 줄어들 것이고, 사람은 창조와 혁신적인 생각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소셜픽션-지금 세계는 무엇을 상상하고 있는가>
 <소셜픽션-지금 세계는 무엇을 상상하고 있는가>
ⓒ 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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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재 부소장은 끝으로 1963년 미국 마틴 루터 킹의 그 유명한 'I have a dream' 연설을 언급하며 다시 한 번 소셜픽션을 강조했다.

흑인이 백인과 함께 버스를 타도 용납이 안 되는 시절, 마틴 루터 킹은 그 엄혹한 시기에 분노하기 보다는 흑인들이 꾸어야 할 꿈을 이야기 했고, 흑인들이 그 꿈을 함께 꾸었던 결과 지금의 오바마 대통령이 탄생할 수 있었다. 결국 소셜픽션은 혼자 꾸는 꿈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모두가 함께 공유해야 가능한 꿈이다.

다만 문제는 현재 우리 사회가 위와 같은 상상을 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과거 한국전쟁이 끝난 뒤 우리 사회는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상상을 바탕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으며, 군사독재 치하 엄혹한 현실에서는 민주화에 대한 상상을 동력으로 세상을 바꾸어내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는 위와 같은 소셜픽션이 사라진 상태다. 왕년에 다른 세상에 대해 상상을 하던 기성세대들은 그나마 그들이 이루었던 결과에만 집착하고 있고, 청년들은 공포에 질려 이 척박한 시대를 살아남기 위해 스펙 쌓기에만 연연하고 있다. 우리의 현실이 더욱 암담한 것은 지금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지금과 다른 사회에 대한 상상이 없기 때문이며, 혹여 있더라도 이를 많은 이들과 공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상상 없이 변화는 없다. 다 같이 좀 더 나은 세상을 그려보자.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2014년 12월 18일 희망제작소 이원재 부소장의 강연을 재구성한 겁니다
- 이 글은 1월 강동구 지역특화사업단 소식지 '함께하는발걸음'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 강연 내용은 <소셜픽션-지금 세계는 무엇을 상상하고 있는가>(이원재 외 지음, 2014, 어크로스)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원재 , #소셜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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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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