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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2013년, <오마이뉴스>는 '마을의 귀환' 특별기획을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위험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대안으로 마을공동체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마을의 귀환 시즌2는 '1인가구 공동체'에 주목합니다.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1인가구와 마을공동체, 언뜻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데요. '1인가구'와 '공동체', 나아가 '마을'의 만남은 가능할까요. '탈고립', '탈가족주의', '탈자본주의', '탈도시'... 1인가구를 위한 마을사용설명서, 지금 공개합니다. [편집자말]
'우리동네청년회'의 반찬 봉사팀 '반쪽' 회원들이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카페 '상상언저리'에 모여 홀몸노인에게 전달할 밑반찬을 들어보이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반쪽' 회원들은 5천원부터 2만원 등 각자 형편에 맞는 회비를 내 매달 첫째주 토요일 반찬을 만들어 홀몸노인에게 배달하고 있다.
 '우리동네청년회'의 반찬 봉사팀 '반쪽' 회원들이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카페 '상상언저리'에 모여 홀몸노인에게 전달할 밑반찬을 들어보이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반쪽' 회원들은 5천원부터 2만원 등 각자 형편에 맞는 회비를 내 매달 첫째주 토요일 반찬을 만들어 홀몸노인에게 배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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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언저리에 머물러도 괜찮지 않아?'

카페 앞 입간판 문구다. 문을 여니 달달한 간장 냄새가 났다. 삼삼오오, 사람들이 요리 중이었다. 한쪽에서는 '감자가 덜 익었다'며 불을 세게 해야 한다고 했다. 다른 쪽에서는 '간장 국물 맛이 약하다'고 조미료를 넣자고 했다. '사공이 많아서 맛이 안 난다'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프라이팬에서는 '치지직' 소리가 났고 솥에서는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올랐다. 지난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카페 '상상언저리'(언저리)의 풍경이다.

이들은 20~30대 청년모임 '우리동네청년회'(청년회)의 반찬 봉사팀 '반쪽' 멤버들이다. 십여 명의 회원들은 매달 첫째주 토요일에 반찬을 만들어 홀몸노인에게 배달한다. 지난 여름에는 몸보신용으로 삼계탕을 끓였고 추석·설 등 명절이 낀 달에는 동그랑땡, 부추전과 같은 명절 음식을 내놨다. 지난 12월에는 직접 김장도 했다.

콩 한쪽 나누면 하나가 둘이 된다

'우리동네청년회'의 반찬 봉사팀 '반쪽' 회원들이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카페 '상상언저리'에 모여 홀몸노인에게 전달할 감자볶음과 시금치무침을 반찬통에 담고 있다.
 '우리동네청년회'의 반찬 봉사팀 '반쪽' 회원들이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카페 '상상언저리'에 모여 홀몸노인에게 전달할 감자볶음과 시금치무침을 반찬통에 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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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청년회'의 반찬 봉사팀 '반쪽' 회원들이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카페 '상상언저리'에 모여 홀몸노인에게 전달할 밑반찬을 만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동네청년회'의 반찬 봉사팀 '반쪽' 회원들이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카페 '상상언저리'에 모여 홀몸노인에게 전달할 밑반찬을 만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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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메뉴는 쇠고기 장조림, 시금치 나물, 양갱, 감자볶음 네 가지다. 오전부터 인근 전통시장인 망원시장에서 장을 봐 왔다. 재료들을 다듬고 무치고 지지고 볶았다. 당근과 감자가 익어갈수록 색깔이 점점 진해졌다. 반쪽 팀장인 강명우(30)씨는 손으로 집어 먹으며 간이 맞는지 확인했다. 그는 반쪽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콩 한쪽도 나눠 먹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콩 한쪽을 나누면 반쪽이 되잖아요. 하나였지만 두 개가 되는 거죠. 반쪽이라도 나눠먹고 싶은 분들을 찾아가고 있어요."

'반쪽'은 마포구 성산동에 세 가구, 연남동에 세 가구, 망원동에 두 가구 총 여덟 가구에 반찬을 배달한다. 대상은 동주민센터에서 소개해준 기초생활수급자들로 70, 80대 홀몸노인들이다. 4년여 가까이 봉사하는 사이 노인과 청년의 관계에서 할머니·할아버지와 손자·손녀 관계로 바뀌었다. 안부 전화를 드리기도 하고 봄, 가을에는 팀별로 소풍을 가기도 한다.

"할머니 한 분은 제 결혼식에도 와주셨어요. 정말 고마웠어요. 다른 할머니 한 분은 몸이 불편해 못 오셨지만 마음은 오셨죠.(웃음) 한 달에 한 번은 부족한 것 같아서 가끔 안부 전화도 드려요.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라고 할 수 있죠." - 성산동팀 박태호(36)씨

"신세 한탄을 많이 하시죠. 기초생활수급자라 복지 관련해서 불만도 많이 쏟아내시고요. 할머니가 저를 손자처럼 여겨서 저는 할머니 얘기를 잘 들어줘요. 할머니 앞에서 재롱도 떨어요." - 망원동팀 김민성(27)씨

청년회는 지난 2008년 서강대·연세대·홍익대 등 서대문·마포 인근의 대학생 8명이 의기투합해 독서토론과 봉사활동 모임을 꾸리면서 시작됐다. 현재는 '반쪽'과 위안부 할머니 돕기 모임(위안부팀), 역사 기행, 도시 텃밭, 책 모임 등이 이뤄지고 있다.

반찬 배달 가서 바람막이 작업까지

'우리동네청년회'의 반찬 봉사팀 '반쪽' 회원들이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동 김순이 할머니 댁을 찾아 할머니의 만수무강을 바라며 큰절을 올리고 있다.
 '우리동네청년회'의 반찬 봉사팀 '반쪽' 회원들이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동 김순이 할머니 댁을 찾아 할머니의 만수무강을 바라며 큰절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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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청년회'의 반찬 봉사팀 '반쪽' 회원들이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동 김순이 할머니 댁을 찾아 추운 겨울 집 안으로 새어 들어오는 외풍을 막아주기 위해 방풍비닐을 설치하고 있다.
 '우리동네청년회'의 반찬 봉사팀 '반쪽' 회원들이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동 김순이 할머니 댁을 찾아 추운 겨울 집 안으로 새어 들어오는 외풍을 막아주기 위해 방풍비닐을 설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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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이 완성되자 사람들은 동별로 흩어졌다. 강명우씨와 김민성(27)·한성수(29)·최해진(28)·김다혜(25)씨는 망원동팀이다. 이들은 혼자 사는 김순이(84), 임성례(81) 할머니 댁을 차례로 찾아갔다. 두 할머니는 이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집 밖에 마중 나와 있었고 들어가 보니 김씨는 순대를, 임씨는 떡을 내줬다. '양손자'들은 새해를 맞아 할머니에게 절을 올리며 만수무강을 기원했다.

"어떻게 이렇게 맛있게 만들었어?"
"아이고, 맛있는 것만 해왔네."

반찬통을 열어 맛을 본 할머니들의 반응이다. 할머니들은 12월 반찬이었던 김장 김치를 평가하기도 했다. 임씨는 "김치를 허옇게 담갔더라"라면서 "나는 당뇨가 있어서 매운 걸 못 먹는데 허옇게 담갔어도 괜찮았다"라고 말했다. 반면 김씨는 "고춧가루가 적어서 재료 사다가 다시 해먹었다"며 웃었다.

이날 김씨 댁에서는 창문 외풍 차단 작업도 진행됐다.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창문을 비닐로 덮었다. 창문 네 모서리에 양면테이프를 바르고 그 위에 비닐을 붙이기만 하면 되지만 허리가 아픈 할머니에게는 쉽지 않다. 청년들은 이 작업을 10분 만에 후딱 해치웠다. 김씨는 연신 고맙다는 말을 했다.

"아이고 고마워서 어떻게 해. 올 겨울에는 난방비 덜 들겠어."

주변의 청년들, 관계 맺기로 허기를 채우다

'우리동네청년회'의 반찬 봉사팀 '반쪽' 회원들이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카페 '상상언저리'에 모여 달달하고 말랑말랑한 식감으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좋아할 단호박, 팥양갱을 만들고 있다.
 '우리동네청년회'의 반찬 봉사팀 '반쪽' 회원들이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카페 '상상언저리'에 모여 달달하고 말랑말랑한 식감으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좋아할 단호박, 팥양갱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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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을 마친 이들은 언저리로 돌아와 뒤풀이를 했다. 반쪽의 새 팀장이 될 김진욱(30)씨의 생일파티도 함께했다. 이처럼 언저리는 청년회의 '아지트'다. 지난 2013년 4월, 프랜차이즈로 둘러싸인 홍대 한복판에서 소비·소모가 아닌 관계 지향적 문화를 꿈꾸며 시작됐다. 약 90제곱미터(약 28평) 크기로 술과 커피를 팔며 회원들의 모임 공간으로 활용된다. 청년회장 최윤수(34)씨는 언저리의 뜻을 소개했다.

"언저리라는 말은 한국 사회에서 청년의 속성을 뜻한다고 봐요. 청년들은 아직 주류에 끼지 못한 사람들이잖아요. 성공해서 주류에 들어 가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강해요. 주변부인 청년들이 주류에 끼지 못한 사람들, 소외받는 사람들을 돌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청년회에는 현재 50여 명의 회원이 가입돼 있다. 벌이가 있는 사람은 2만 원부터, 대학생·백수는 5000원부터 각자 형편에 맞게 회비를 낸다. 회원은 언저리 음료를 할인받을 수 있다. 직업은 시민단체 활동가부터 대기업 회사원, 기상청 연구원, 프로그래머, 게임 개발자 등 다양하다.

회원 대부분은 20~30대 1인 가구다. 최근에는 1인 가구 전용 '집밥 모임'이 생겼다. 한 달에 한 번, 밥 한 번 제대로 먹어보자는 것이다. 직접 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같이 요리하면서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청년회 회원 김아람(30)씨는 3년 전, 지인의 소개로 이곳을 알게 됐다. 그전까지는 부족함 없이 살았다. 사회의식도 약했다. 청년회 가입한 뒤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지금은 위안부 팀장을 맡아 위안부 피해자들의 후원콘서트를 기획하고 있다.

위안부팀은 한 달에 한 번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김복동 할머니 댁인 연남동 '우리집'을 찾아간다. 이들은 집을 청소하고 할머니들의 말동무가 돼준다. 지난 10월에는 나비기금(위안부 할머니 지원 기금) 마련을 위한 홍대 뮤지션들의 자선 공연도 벌였다. 이런 활동을 인정받아 지난해 11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주는 '나비의 꿈' 상을 받기도 했다. 김씨는 이같은 청년회를 통해 "인간 관계의 허기를 채우게 됐다"고 말했다.

"지방에서 태어나 10년 동안 서울에 살았어요. 여기서는 마음 맞는 친구 찾기가 쉽지 않았고 점점 고립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청년회를 하면서 제 인생을 생각해봤을 때 어디서 이렇게 저와 전혀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참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거예요. 이 사람들을 알게 되면서 세상을 이해하는 눈도 더 커졌어요."

이날 생일파티를 한 김진욱씨도 "취업하기 전까지 좁은 환경에서만 살았는데 이곳에서는 정말 다양한 친구들을 사귈 수 있다"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청년회 사람들을 모아서 동아리를 만들거나 봉사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언저리, 회원만의 공간... "후원회 등 모색"

'우리동네청년회'의 반찬 봉사팀 '반쪽' 회원들이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동 임성례 할머니 댁을 찾아 정성껏 만든 밑반찬을 전달한 뒤 할머니를 안아주고 있다.
 '우리동네청년회'의 반찬 봉사팀 '반쪽' 회원들이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동 임성례 할머니 댁을 찾아 정성껏 만든 밑반찬을 전달한 뒤 할머니를 안아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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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청년회'의 반찬 봉사팀 '반쪽' 소속 김민성 회원이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동 임성례 할머니 댁을 찾아 정성껏 만든 팥양갱을 할머니 입에 넣어주고 있다.
 '우리동네청년회'의 반찬 봉사팀 '반쪽' 소속 김민성 회원이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동 임성례 할머니 댁을 찾아 정성껏 만든 팥양갱을 할머니 입에 넣어주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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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회는 모임이 시작된 계기가 2008년 광우병 사태였던 만큼 사회 참여에도 관심이 많다.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에는 홍대입구역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 서명을 받았다. 국정원 대선 개입, 철도 파업 등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직접 행동에 나섰다.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인 '우리마을프로젝트'도 진행했다. 프로젝트 '몰래산타'는 크리스마스 전후로 지역의 불우 이웃을 찾아가 선물을 전달했다. 프로젝트 '좋을만두하지'는 만두를 빚어 홀몸노인을 찾아간다.

언저리의 한계를 꼽자면 회원 공간으로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회원 관계망만으로는 언저리를 운영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일반 청년들에게 다가가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SNS로 사업을 홍보하고 있으며 후원회를 여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다.

최윤수 회장은 "회원 중심으로 언저리가 잘 활용되고 있지만 곧장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라면서 "청년회의 사회적인 의미를 널리 알려 후원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소셜다이닝(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밥을 먹는 것)과 정기적인 강연회, 음악회를 통해서 일반인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태그:#1인가구, #우리동네청년회, #반쪽, #홍대 앞, #상상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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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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