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숲속으로> 포스터.

영화 <숲속으로> 포스터.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그림형제의 동화 속 캐릭터들이 한 영화에서 만난다기에 개봉을 기다렸습니다. 늘 독특한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배우 조니 뎁이 출연한다는 소식에 꼭 극장에서 보리라 다짐했습니다. 거기다 관람 등급이 전체 관람가인 것을 보고, 마음 편히 재밌게 볼 수 있을 거라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한마디로 '속았다'는 말밖엔 떠오르지 않습니다.

영화 <숲속으로>는 1987년 초연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숲속으로>를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초연한 지 27년 만에 영화화가 된 데다 무대가 아닌 영화로 보여주는 만큼 그 당시에 비해 업그레이드가 되었을 겁니다.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극영화 제작사로도 유명한 월트 디즈니가 제작을 맡고,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를 통해 잘 알려진 롭 마샬 감독과 뮤지컬 <위키드>의 제작진까지 합세했다는 건 관객들의 기대를 끌어올리기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뚜껑을 열어 보니, 초특급 프로젝트를 만들겠다는 마음이 너무 과했던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여기엔 다른 이유들도 많지만 대략 10분쯤 나오는 조니 뎁을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이 돋보입니다. 많은 분들이 낚였다는 걸 보니 역시 낚시엔 질 좋은 미끼를 써야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영화 <숲속으로> 스틸 컷. 빨간 망토 소녀를 꾀는 늑대.

▲ 영화 <숲속으로> 스틸 컷. 빨간 망토 소녀를 꾀는 늑대.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영화의 볼거리 면에서는 많은 기술력을 동원했을 것 같습니다. 마녀의 마법이라든지 거인의 등장이라든지 마법의 콩이 자라는 것 등은 분명 화려한 CG를 통해 구현되었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영화의 전반적인 배경이 어두운 숲 속이다 보니 그 화려함이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다음으로는 영화의 이야기가 왜 그렇게 흘러갔어야 하는지 도무지 공감이 되지 않습니다. 브로드웨이 동명 뮤지컬을 보지 않아서 원작의 내용도 이러한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같은 내용이라면 저는 그 뮤지컬도 보고 싶지 않을 것 같습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요?

영화는 마을에서 빵집을 운영하는 베이커 부부가 마녀의 저주를 풀고 아이를 얻기 위해 숲 속으로 떠나면서 시작됩니다. 마녀는 3일 후 푸른 달이 뜨기 전까지 우유처럼 하얀 소(<잭과 콩나무>)와 피처럼 붉은 망토(<빨간 망토>), 옥수수처럼 노란 머리카락(<라푼젤>), 순금처럼 빛나는 구두(<신데렐라>)를 가져오면 아이를 갖게 해주겠다고 합니다. 아이를 소원하던 부부는 당장 숲으로 떠납니다.

영화 <숲속으로> 스틸 컷.  베이커 부부에게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마녀.

▲ 영화 <숲속으로> 스틸 컷. 베이커 부부에게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마녀.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베이커 부부가 숲 속 여정에서 만나는 인물들은 모두 우리가 어린 시절 한 번쯤 읽었던 동화 속의 캐릭터들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들은 우리가 알고 있던 그들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는 신데렐라는 너무 착해서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은 캐릭터였는데, 숲에서 만난 그녀는 현실적이다 못해 꽤나 계산적이기까지 합니다.

또, 마법의 콩나무를 이용해 거인의 물건을 훔치는 걸 베이커 탓이라고 하는 잭이나 잭을 도발하고 문제가 생기자 책임을 탓하는 빨간 망토 소녀의 모습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습관적으로 잭을 때리는 엄마는 잭이 자신의 마음에 드는 일을 해도 때립니다. 마치 그게 애정 표현인 것처럼 느껴지는 모습은 더 어이가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가 막혔던 건 신데렐라를 흠모하던 왕자였습니다. 우리가 아는 왕자는 분명 신데렐라와 결혼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했는데, 숲 속에서 만난 왕자는 엄청난 자아도취에 빠진 것은 물론 신데렐라와 결혼한 날 다른 여자, 그것도 유부녀를 유혹하기까지 합니다.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거기다 여러 우여곡절을 끝에 마을을 위험에 빠뜨린 거인을 물리치기 위해 서로 힘을 모으고 노력하기까지 그들은 서로를 탓하며 책임을 떠넘기고, 누군가는 죽고, 심지어 잠깐이지만 아이를 버리는 상황도 나옵니다. 특히 아이들끼리 서로 네 탓이라며 다투는 장면에서는 뭐라 할 말이 없었습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요?

동심을 무참히 깨버리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는 원래 모두 잔인한 내용이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신데렐라를 괴롭힌 계모와 언니들의 구박도 실제로는 훨씬 심했고, 백설공주를 괴롭힌 마녀의 저주도 우리가 아는 그 이상이었으며, 난쟁이들과의 관계에 관해서도 다양한 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린 시절 읽은 동화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는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만이라도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 자랐으면 하는 마음에서, 동심을 헤치지 않기 위해 어른들이 조금씩 순화해 전해준 것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상이나 사회라는 곳이 동화 속과 같지 않다는 건 조금씩 커가면서 스스로 알게 되니까요.

그런데 <숲속으로>는 그 동심을 무참히 깨버리려고 합니다. 전체 관람가에 동화 속 캐릭터들이 나온다는 말에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함께 극장을 찾은 부모님들은 과연 이 영화를 보고 아이에게 어떤 설명을 해줄 수 있을까요? 욕심과 탐욕과 외모 지상주의와 바람과 불륜과 도둑질과 남의 탓을 하는 인간의 심리에 대해서 설명해야 할까요?

성인이 보기에도 길다 싶은 125분의 상영 시간에 우울하고 한숨 나오는 내용으로 이루어진 영화. 과연 전체 관람가 등급을 준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숲속으로 조니 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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