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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낭만적' 내지 '고전적'으로 생각하는 물건이 몇 개 있다. 모양내는 단어로 써서 그렇지 솔직하게 표현하면 '예스럽다' 아니 '촌스럽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 같다. 돼지 저금통도 그러한 것 중 하나이다. 내가 어렸을 때의 저금통은 동전을 모아 돈을 불리는 저금의 도구였다. 은행도 없었거니와 촌에는 동전이 있다고 해도 쓸 만한 변변한 가게도 없었다. 주막을 겸한 구멍가게가 하나 있긴 했는데, 어른들에게나 필요한 술안주 거리와 비누 고무줄 성냥 등 생활 용품 몇 개가 덩그러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 아이들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시골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우체국 통장을 하나씩 만들어 주고 한 달에 한 번씩 돈을 가져 와 저금을 하게 했다. 돼지 저금통 배를 째서 동전을 꺼내 통장으로 들어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우리는 쇳조각과 깨진 유리 등을 모아 가끔 오는 엿장수에게 주고 엿 대신 동전 몇 닢을 받았다. 통장에 넣을 것을 생각하면 그것들이 보물이라도 되는가 싶었다. 우리 세대의 저축 정신은 이렇게 형성되었는지 모른다. 그만큼 돼지 저금통은 생활의 동반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과학 문명이 발달하고 경제가 성장해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펴진 탓에 돼지 저금통은 사람들에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 동전이 서자 취급 받게 된 건 오래 전이고 지금은 지폐의 사용도도 예전 같지 않다. 그것들 대신에 마그네틱으로 개인 신상을 저장한 신용카드란 녀석이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신용 사회라는 이름으로. 하지만 삶의 재미는 동전을 돼지 저금통에 넣으며 희열을 느끼던 예전에 미치지 못한다.

그래도 돼지 저금통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은 이런 것 때문이 아닌가 한다. 사회복지 단체 또는 종교 기관 등지에서 쓸모가 많지 않은 동전을 모아 소외 계층 등 불우 이웃을 돕자는 운동을 간간이 한다. 그 때 동전을 모을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돼지 저금통이다. 비록 거금은 아니라 해도 티끌 모아 태산이란 말이 있듯이 이 동전들이 모이면 사회를 밝고 맑게 만드는데 유용한 에너지가 된다.

지난 주 토요일(12월 27일)은 우리 교회가 지속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김천역 찬양전도가 있는 날이었다. 여기저기서 돕는 손길들이 나타나는데, 그 날은 대구와 대전에서 몇 분이 함께 했다. K 이사(K는 한 시민단체의 이사로 일하면서 그 단체를 재정적으로 돕고 있다)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금년의 마지막 찬양 전도여서인지 여느 때보다 그 열기가 더 높았다. 2 시간 여의 찬양 전도를 마치고 우리는 여느 때처럼 점심을 먹으러 음식점으로 갔다.

K 이사는 보물단지라도 되는 듯 종이 쇼핑백 하나를 줄곧 들고 다녔다. '뭐에요?' 물어봐도 '별 거 아니에요'라면서도 그가 들고 있는 손에서 이상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한 해를 며칠 남긴 때에 한 식사가 우리들의 송년회가 되었다며 모두들 즐거워했다. 식사를 마치고 음식점 앞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등 수선을 피운 것도 즐거움의 한 표현이었다. 먼 곳에서 일부러 온 사람들을 중심으로 몇 분이 우리 교회에 가서 차를 한 잔 하자는 데 의기가 투합했다.

대구에서 온 K 이사는 건축 방면의 일을 오래 해 온 분이다. 우리 교회의 조립식 가건물을 보면 건축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없지 않았다. K 이사와 M 선생은 예배당에 들어가서 강대상 앞에 무릎을 꿇고 긴 시간 기도를 했다. 그 기도의 내용 안에는 작은 농촌 교회에 대해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서 일하는 목회자에 대한 간구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리라.

우리는 예배당 앞 왼쪽 전기장판(새벽 기도 그리고 철야기도 때 내가 주로 사용하는 공간)에 앉아 다과를 들면서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었다. 개인의 인생사부터 신앙에 대한 것까지 우리들의 대화 목록엔 제한이 없었다. 이야기가 몇 바퀴 돌고 나서 K 이사가 쇼핑백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냈다. 신주단지 모시듯 가지고 다니던 그 쇼핑백에서 말이다. 그것은 묵직하게 보이는 돼지 저금통이었다. 그러면서 부연 설명을 했다.

"이 저금통은 지난 4월 부활주일 날 우리 성당에서 나누어 준 것입니다. 1년 동안 동전을 모아서 이듬해 부활절에 성당에 내게 되어 있습니다. 성당에서는 그것을 모아 불우 이웃을 돕는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늘 김천역 찬양 전도를 오면서 이 돼지 저금통을 덕천교회를 통해 하나님께 받쳐야겠다는 마음이 일더군요. 금액이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귀한 예물이다. 나는 다음 날 주일 예배 때 성도들에게 배경 설명을 한 뒤 그 예물을 바친 K 이사를 위해 기도했다. 어릴 때 돼지 저금통을 두고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새롭다. 저금통이 다 찼을 때 동전을 꺼내는 일을 두고 '돼지 배를 짼다'는 좀 무시무시한 표현을 썼다. 나뿐만 아니라 주위의 아이들도 대부분 그랬다. 이유는 모르겠다. 등을 쨀 수도 있고 머리나 꼬리 부분을 자르고 동전을 꺼 낼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런 이유가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배 속의 태아를 순산하기 어려울 때 엄마 배를 고이 가르고 귀한 아기를 들어내는 것과 같은 마음에서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이것보다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을 것이다. 즉 돼지 저금통 중 배 부분이 가장 약해 쉽게 가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니, 이것보다 더 확실한 이유가 있다. 내가 어릴 때 농촌에서 돼지 저금통은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물품이 아니었다. 저금통을 일회용으로 사용하고 버리는 아이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 몇 번에 걸쳐 재활용을 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게 하자니 밋밋한 배 부위를 최대한 작은 길이로 째고 동전을 꺼 낸 뒤 유리 테이프 같은 것으로 봉해 다시 쓴 것이다. 더듬어 보면 어려웠지만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K 이사가 우리 교회를 통해 바친 돼지 저금통의 배를 아직 째지 못했다. 어릴 때의 생각, 즉 돼지 저금통을 쉽게 손에 넣지 못했던 것의 반영이 아닌가 싶다. 따라서 거기에 든 동전의 총합이 얼마인지 모른다. 다만 그 안에 든 정성과 하나님의 뜻을 어림잡을 뿐이다.

우리는 장판 위에 앉아 돼지 저금통을 놓고 길게 말을 이어가다가 기부 문화에 대해 생각들을 교환했다.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에 비해 기부 문화는 많이 뒤쳐져 있다는 데까지 의견이 모아졌다. 다른 나라에 비해 단기간에 이루어낸 경제 성장 탓이 클 것이다. 정신과 윤리가 결여된 우리의 경제 성장을 두고 외국의 호사가들은 '천민자본주의'라고 한다지 않는가. 물질의 가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데 비해 정신적 가치는 날로 엷어져 가는 것 같아 몹시 안타깝다.

개인에게 인격이 있듯이 나라도 국격(國格)이라는 게 있다. 그 격은 주로 정신적 가치가 얼마나 뒷받침 되어 있는가에 따라 높고 낮음이 갈린다. 그렇다면 이 사회의 기초 단위라고 할 수 있는 가정에도 격이 있지 않을까. 이것을 '수준'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은데, 분명히 격이 있을 것이다. 겉으로는 호화롭게 보여도 속이 빈한한 가정이 있고, 또 물질적 풍요를 아무리 구가해도 정신이 황폐해 있는 가정도 있을 수 있다. 이런 가정은 격이 아주 낮읕 축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가정을 예로 들어 보는 것이 어떨까. 지방 출신으로 자녀들이 모두 성공했다는 집안이다. 도회지 나가 출세해서 남부럽지 않은 생활들을 하고 있다. 이들 출세한 형제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것은 명절과 부모 기일(忌日) 등 고작 일 년에 한 두 번이다. 헌데 이 가족은 모일 때마다 좋게 끝나는 일이 별로 없다. 부(富)에 대한 경쟁심리가 그 원인이다. 이들의 대화 주제는 대부분 돈에 관한 것이다.

아파트 평수를 더 넓혀 이사를 갔다느니, 강북에 살다가 천신만고(?) 끝에 강남으로 골인했다느니, 자동차를 외제 최고급으로 바꾸었는데 승차감과 안정감이 '짱'이라느니, 아이들이 서울에 있는 소위 일류대를 가기 위해 고액 과외를 한다는 따위가 대화의 주제이다. 이 때 경쟁에서 좀 밀리는 가족의 시기 질투가 따르고 모처럼의 모임이 싸움으로 마감되고 만다. 물질적 풍요 가운데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이런 가정의 격은 '낮음'이 되는 것이다.

한편 이런 가정도 있다. 그렇게 부유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남에게 손 벌리고 살지도 않는다. 많지 않은 수입이지만 알뜰하게 지출하며 사는 역시 농촌 출신의 형제들이다. 이들이 부모 기일 때 모여 나누는 대화는 사뭇 다르다. 모인 형제들 중에는 크지는 않지만 생활수준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 때 좀 나은 사람이 좀 못한 형제를 위하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 그래서 서로가 큰 힘을 얻고 헤어진다는 것이다.

이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 이 형제들은 넉넉하지 않은 중에도 늘 이웃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불우 이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도 똑 같다. 이들이 지난 선친 기일에 모여 나눈 대화가 바로 기부에 관한 것이었다. 모인 여섯 남매 중 금액의 다과에는 조금씩의 차이가 있었지만 기부를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장애인 시설, 노인 요양원, 보육원, 미혼모 시설 등등에 매달 은행 자동 이체로 후원금을 보낼 뿐 아니라 시간이 있을 때 직접 가서 목욕을 시켜 드리기도 하고 청소, 말 벗 등의 봉사를 하기도 한다.

어느 해인가 은행 전산망이 해킹을 당해 다운되어 올 스톱 된 적이 있었다. 그 때 형제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복지 시설에 보내는 후원금의 자동 이체 기간에 맞물려 은행 전산망이 다운되었기 때문이다. 받는 액수에 따라 쓰는 용도가 다 정해져 있을 것인데, 자신들의 후원금이 이체되지 못해 복지시설이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염려했다. 시설을 직접 방문해 약정한 월정 금액을 전해야 할지를 놓고 숙의를 거듭했다. 이런 가정의 격은 '높음'이 된다. 많은 사람이 인격은 생각하는데 '가정격(家庭格)'에는 미처 생각이 닿지 않는 것 같다.

K 이사의 돼지 저금통에 대해서 말하다가 이야기가 여기까지 흘러왔다. 그의 저금통으로 인해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하나님의 일, 또 그것에 속할 기부 문화를 생각해 보았다. 무엇보다도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가정에도 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정의 격은 구성원들의 말과 행동으로 드러난다. 연말연시다. 변화의 기간이고 성숙의 계절이다. 나와 내 가족만이 아니라 소외받는 이웃을 돌아볼 볼 때 나의 인격, 우리 가정의 격이 한 단계 높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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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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