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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는 달리고 싶다> 책표지.
 <철도는 달리고 싶다> 책표지.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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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는 달리고 싶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문장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에 배부되는 화보집이 있었다. <반공>이란 이름의 책자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그 이름이 아니라고 해도 책에 실린 사진과 그림은 온통 북괴를 무찔러 이겨야 한다는 것과 남한이 북한보다 월등히 우월하다는 체제 선전하는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 나는 그 화보집을 오려 교실 뒤 편 환경 미화를 했었다.

그 많은 사진들 중 아직도 나의 뇌리에 선명히 남아있는 것은 휴전선 근처에 멈춰 서 있는 녹슨 기차와 철조망으로 막혀 있는 철로였다. 그 밑에 굵직한 고딕체로 박혀 있는 글자가 "철마는 달리고 싶다!"였다. 6·25 동족상잔으로 분단된 남북이 하루 빨리 통일되어 기적(汽笛)을 울리며 자유롭게 왕래하고 싶다는 염원이 담겨 있는 사진이었던 것 같다.

"철도는 달리고 싶다"는 다소 다른 의미로 사용한 말이다. 지난해 이맘 때 철도노조 조합원들이 KTX 등 철도 민영화에 반대해 파업 투쟁을 하면서 초강경 대응으로 일관하는 사측과 정부를 향해 외친 말이었다. 철도노조가 그 투쟁의 기록을 모아 사진집을 펴내면서 붙인 이름이 "철도는 달리고 싶다"이다. 부제목은 책에 담긴 내용을 보다 선명하게 부각시켜 준다. '철도를 멈춘 23일의 기억, 그리고 1년'

이 책은 여러 사람들이 찍은 사진을 모아 만든 사진집이다. 작년 말 23일 동안 벌인 철도 파업 현장 관련 사진들이 183쪽에 걸쳐 정연히 채워져 있다. 크고 작은 사진 2백 여 컷이 실려 있는데, 여기에서 파업의 정당성과 국민의 성원을 읽을 수 있다. 혹한의 날씨 속에 일으킨 파업 투쟁에서 추위를 전혀 느끼지 않아도 되는 것은 철도노조 조합원들의 굳은 단결력과 국민들의 성원 열기 때문인 것 같다.

<철도는 달리고 싶다>는 전체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약속을 지켜라', '철도파업 괜찮아', '희망을 이야기하며 다시 달린다'가 각 부의 제목들인데, 이것들은 10여 개씩의 꼭지를 거느리고 있다. 또 서두에 네 사람의 축사와 책 말미에 부록으로 '민영화를 반대한 지혜의 창작물들'이 올려져 있어 의미와 볼거리를 더욱 풍요롭게 하고 있다.

사진집 발간을 축하하는 글을 보낸 사람들을 밝힐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들은 우리의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곬을 굵직하게 감당하고 있는 활동가들이기 때문이다. 차례대로 소개하자면, 전국철도노동조합 26대 위원장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신승철, KTX민영화저지 범대위 상임대표 박석운, 철도공공성시민모임 대표운영위원 윤순철이 그들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철도노조의 단결된 투쟁이 노동권 확보를 위해 꼭 필요했을 뿐 아니라 서민의 발이라고 하는 기차의 안전 운행과 서민들의 호주머니 경제를 위해서도 정당성을 인정받은 투쟁이라고 격려 지지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사실 이런 점에서 다수의 국민이 파업에서 오는 불편함을 감수할 테니 열심히 싸워 요구를 관철시켜 달라며 "힘내라 철도파업!", "불편해도 괜찮아!"를 외쳤던 것이다.

국민 전체와 관계되는 일은 국가가 책임을 지고 처리하는 것이 원칙이다. 철도를 비롯해 전기 전화 가스 의료 등 기간산업의 민영화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더 큰 부담을 떠안게 한다. 민영화란 국가가 운영하는 공기업을 개인에게 넘긴다는 것인데, 사기업은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윤이 없는 것은 그들에게 결코 의미가 없다. 요금을 인상해서 이윤을 창출하든지 아니면 적자 회사 또는 노선(철도)을 과감하게 폐기해야 한다. 철도만 놓고 보더라도 민영화될 경우 적자 노선은 운영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 적자 노선은 이용 승객이 적은 농어촌 노선이 될 것이고, 농어촌 주민들은 교통에서도 소외받게 될 것은 뻔한 이치다.

철도노조의 파업이 그들의 직장 차원을 넘어 국민 전체와 관계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것은 그들이 만든 <철도는 달리고 싶다>는 사진집에 그대로 집약되어 있다. 앵글에 잡힌 사람들을 남녀노소 구별이 없다. 지역과 계층의 구분도 없다. 심지어 세계 각 나라의 유관 단체와 뜻있는 사람들의 지지도 이어졌다. 철도노조 파업이 정당하며 명분이 분명하다는 증좌가 될 것이다.

지금의 노동운동에 대해 호사가들의 입길이 분주하다. 대기업 노조의 이기주의를 빗대 귀족노조니 철밥통이니, 연봉이 너무 많다는니 따위의 말들을 무책임하게 내 뱉는다. 그런 면이 전혀 없지 않다고 해도 특별한 예를 가지고 일반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노조는 개인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들의 권익 나아가 국민을 생각하며 운동을 하고 있다. 노동운동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은 고쳐져야 한다.

<철도는 달리고 싶다>에서도 그런 점이 읽혀진다. 국가의 대 재난, 정권의 무능을 그대로 드러낸 세월호 침몰 사건이 일어난 것은 2014년 4월 16일이었다. 23일간의 철도 파업이 일어난 지 석 달 보름 뒤의 일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두 면을 할애해 '세월호 희생자의 명복을 빕니다. 돈보다 생명! 돈보다 안전!'이라는 제목 옆에 안산 정부합동분향소 조문 사진을 싣고 있다. 슬픔을 함께 하겠다는 그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내가 서평을 여럿 썼지만, 사진집에 대한 것은 처음이다. 반갑고 고마운 마음의 반영일 것이다. 대개의 사진집이 연결성과 통일성에 취약한 면을 드러내기 쉽다. 사진 하나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보라는 식이다. 하지만 <철도는 달리고 싶다>는 그렇지 않다. 사진 하나 하나가 한 편의 글들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는 이에 따라 적게는 한 권의 보고서 많게는 수 십 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 온다.

만년 서생인 필자는 파업을 일으키고 싶어도 그럴 만한 장이 없다. 판화가 이철수가 예술가로서 비슷한 심정을 판화에 덧붙인 글로 표현해 주고 있다(181쪽). 그의 글로 서평을 마무리하면서 사진집 발간을 축하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진집을 보고 철도노조와 우리의 노동운동을 한 번 더 생각하는 기회를 갖기 바란다.

파업! STRIKE 우리는 일하고 싶다!

우리는, / 파업이 부러워요 / 예술가들이야 / 파업 한 번 / 못 해 보고 살지요 / 예술 없어서 / 못 살겠다거나 / 불편하다고 할 / 사람이 없으니 / 그럴 수밖에요. / '파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 시민의 불편이며 경제에 / 미치는 부정적 영향 따위를 / 먼저 떠드는 언론이 있지요? / '불법'도 들고 나오고 '엄청 처벌'도 / 앞세웁니다. 일해야 먹고 / 살 수 있는 노동자들의 파업은 / 같은 처지의 '당신들'이 지지해야 / 합니다. 파업은, 일하고 / 싶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철도는 달리고 싶다> 전국철도노동조합 엮음, 도서출판 철노, 2014.12.17.초판발행, 비매품



태그:#철도는 달리고 싶다, #철도노조 파업 23일, #철도민영화, #불편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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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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