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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다. 여기, 사서 고생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그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고 새벽까지 깨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장사꾼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음식만 파는 것이 아니라 열정도 함께 판다. 그들의 이름은 '청년장사꾼'이다.

11월 25일 오후 7시 서울 남영역 근처 골목,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곳에 불이 하나둘 켜진다. 초입 바닥에는 흰 글씨로 '열정도'라고 쓰여 있다. 왼쪽 건물에는 '열정도로 오세요 열정도 드립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있다. 청년장사꾼이 '열정도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여섯 개의 가게를 연 것이다.

청년장사꾼(대표 김윤규)은 청년창업 및 지역 문화 활성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청년스타트업 단체다. 2012년 1월 1일 포항 호미곶에서 김윤규 대표 등 청년 5명이 손난로를 팔았다. 청년장사꾼의 시작이었다. 청년장사꾼은 노점 경험을 바탕으로 이태원에 처음 '벗'이라는 카페를 열었다. 이후 감자튀김, 꼬치 등 다양한 아이템으로 매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청년장사꾼의 주요 키워드는 '장사, 교육, 문화' 세 가지다. 단순히 장사만 하는 것이 아니다. '2주 교육 프로그램'등을 운영하며 재능을 사회에 환원한다. 지역 문화 활성화를 위해서도 노력한다. 이태원 이슬람사원 앞 늘어선 계단에 시장을 연 '계단장'이 대표적인 예다.

2014년 10월, 청년장사꾼은 '열정도(島)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기존의 장사 노하우를 바탕으로 용산구 원효로 인쇄골목에 서로 다른 6개 매장을 동시에 여는 계획이다. 그리고 11월 25일, '열정도' 골목에 불을 밝혔다. '열정도'는 높은 건물 사이에 찜닭, 철판요리 등 6개 가게가 마치 하나의 섬처럼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열정도가 생기기까지

'열정도'의 모든 매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청년장사꾼의 손을 거쳤다. 모든 직원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기존 가게들이 성공을 거둔 데에는 주변 상권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었다. 장사에 있어서 위치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원효로 일대는 재개발의 영향을 받아 상권이 많이 죽었다. 장사에 불리한 곳이다. 소위 말해서 '망하기 딱 좋은 곳'이다.

하지만 청년장사꾼에게는 도전의 땅이었다. 상권이 전무한 곳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안전한 길을 갈 수도 있었지만 모험을 선택한 이유다. 그들은 상권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스스로 상권을 만들고자 했다.

열정도 프로젝트는 10월에 시작해서 11월에 마쳤다. 두 달이 채 되지 않는 시간이다. 우리나라 자영업자가 장사를 할 때 평균 준비 기간이 3개월인 것을 고려하면 빠른 편이다. 결정한 것을 밀고나가는 추진력이 그 비결이다.

어려움도 있었다. 다른 가게 운영과 병행하다 보니 여섯 개 매장을 한 번에 여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고 한다. 공사 과정에서 포크레인이 지붕을 건드려서 무너진 아찔한 일도 있었다. 그들은 어려움을 이겨낼 때마다 하나씩 배운다고 말한다. 실전에서 부족함을 하나씩 극복해 나간다.

어떤 아이템으로 가게를 열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그들은 지속적인 회의를 통해 아이디어를 모으는 과정을 거친다. 그 결과로 여섯 개의 아이템을 선정했다. 그들이 가장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것들로.

 청년장사꾼이 가게 인테리어 중에 있다.
▲ 열정도 공사 청년장사꾼이 가게 인테리어 중에 있다.
ⓒ 청년장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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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도의 하루, 그곳에서 만난 청년들

열정도의 하루 시작은 오전10시다. 점심 장사가 끝나면 휴식 시간을 가진다. 곧이어 저녁 장사를 준비한다. 점심은 매장을 세 개만 열어서 상대적으로 수월하지만, 저녁은 모든 매장을 열기 때문에 분주하다고 한다. 모든 가게에는 저마다 특징이 있다. '열정도 고깃집' 직원 유니폼은 공사장 인부 복장이다. 창문틀을 떼어다가 벽에 걸어둔 메뉴판이 이색적이다. 이날은 대기번호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열정도 고깃집을 지키는 양대훈(29)씨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사장이 꿈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남들과 똑같이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직장을 포기하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무작정 사표를 냈다. 보장된 것은 없었다. 창업을 하려면 준비가 필요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막연했다. 쉬는 동안 우연히 어떤 책에서 청년장사꾼 '열정감자'(현 감자집)와 관련한 내용을 읽었다. 그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2주 교육프로그램을 지원했다. 그렇게 시작된 청년장사꾼과 그의 인연이 어느새 1년이 넘는 시간이 되었다.

일명 '구쉐프'라고 불리는 구현도(28)씨는 '치킨사우나'의 메인 요리사다. 청년장사꾼 2호점 '꼬치집'부터 함께 일하고 있다. 원래부터 장사가 꿈은 아니었다. 대학에서 요리를 전공했지만 그는 개그맨 지망생이었다. 그의 꿈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방송국, 극단 등에서 일을 했다.

그에게 먼저 연락한 것은 김윤규 대표다. 꼬치집을 열었는데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김 대표는 그에게 말했다.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은 꼭 개그맨이 아니더라도 다른 위치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장사도 그 방법 중 하나다." 삼고초려 끝에 합류했지만 그는 지금 청년장사꾼에 굉장한 애착을 갖고 있다. 김 대표의 말처럼 그의 꿈도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익살스러운 문구가 새겨 있다.
▲ '치킨사우나' 직원 유니폼 익살스러운 문구가 새겨 있다.
ⓒ 청년장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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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 군대 전역 후 2주 만에 들어온 사람, 단골손님이었다가 함께한 사람, 막연하게 장사가 하고 싶었던 사람도 있다. 이처럼 청년장사꾼에는 다양한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들은 장사를 통해 서로의 꿈을 공유하고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간다.

새벽 2시면 간판 불이 꺼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한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그 날 있었던 특이사항을 얘기하거나 장사일지를 작성한다. 함께 개선점을 찾고 장사에 반영한다. 늦은 시간에 문을 닫기 때문에 청년장사꾼 중 일부는 합숙생활을 하고 있다. 그들의 하루는 새벽4시에서야 끝난다.

열정도를 비롯한 청년장사꾼 가게에는 아르바이트생이 없다. 매장을 확장하면서 인력수급에 고민이 있었다고 한다. 청년장사꾼은 장사에 확실한 동기가 있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었다. 아르바이트에게는 동기가 적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주 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다. 사실 인력수급보다는 교육의 측면이 크다. 현재 이 프로그램은 유급형태로 운영 중이다. 청년들에게 장사를 현장에서 경험할 기회를 준다. 이번이 47기째다. 거쳐 간 인원만 200명이 넘는다.

교육생들은 2주 동안 이론적 교육과 함께 현장에서 장사를 배운다. 단순한 매장 운영에서 끝나지 않는다. 멘토링을 비롯해 재고 관리와 메뉴 개발, 매장 인테리어, 이벤트와 지역문화 기획까지 청년장사꾼이 하는 모든 일에 동참한다. 희망자는 매장 마감과 합숙까지 한다. 그렇게 2주 동안 멀티 플레이어 역할을 한다.

이 기간엔 청년장사꾼 구성원 모두가 교육생의 선생님이다. 이 프로그램은 창업을 하고 싶거나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청년장사꾼과 인연을 맺은 경우도 있다. 현재 직원 중 상당수는 '2주 교육프로그램' 출신이다.

열정도, 문화와 함께 뛰다

2주교육프로그램 모집 포스터
 2주교육프로그램 모집 포스터
ⓒ 청년장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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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6일 토요일 아침. 열정도에 청년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영하의 날씨와 어울리지 않는 가벼운 옷차림이다. 어느새 모인 인원은 80여 명. 바로 '열정런'에 참가한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참가자는 열정도에 처음 와봤다. 청년장사꾼이 직접 모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년장사꾼은 열정도를 흔한 먹자골목이 아니라 문화가 있는 거리로 만들려 한다. 활동 초기부터 여러 단체와 함께 문화행사를 진행했다. 이번 열정런 프로젝트도 그 일환이다.

열정런은 소셜 액티비티 플랫폼 '프렌트립(Frientrip)'과 손잡고 진행했다. 달리는 것과 청년장사꾼이 지향하는 '열정'이 어울린다는 생각에서 행사를 기획했다고 한다.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동시에 열정도에 활기를 불어넣을 목적이다.

프렌트립에서 선착순으로 모집한 참가자들은 열정도 주변을 뛰고 뒤풀이를 하는 일정을 가졌다. 한 참가자는 "추워서 걱정했는데 같이 뛰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완주할 수 있었다. 열정 넘치는 사람들을 만나서 기를 많이 얻고 간다"고 말했다. 이 날 식사는 청년장사꾼에서 무료로 제공했다. 열정적으로 장사하는 사람들과 열정적으로 달리는 사람들이 만난 토요일. 열정도는 영하의 여름이었다.

열정런 프로젝트 참가자 단체사진
 열정런 프로젝트 참가자 단체사진
ⓒ 장승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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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규 대표를 포함한 청년장사꾼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사람'이다. 그들에게 장사는 음식을 파는 행위로 그치지 않는다. 그 속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좋은 기억을 제공한다. 그들에게 장사는 열정 넘치는 삶이다. 청년장사꾼은 손님들과 소통한다. "맛있게 드세요" 같은 인사치레가 전부는 아니다. 진정성 있게 다가간다. 직원과 손님의 관계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다. 그렇게 손님이 아닌 지인으로 남는다. 그들은 장사 속에서 사람을 즐긴다.

청년장사꾼에게 성공이란 매장이 잘되는 것을 넘어선다. 각자의 꿈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현재에 안주하지 않는다. 모두가 끊임없이 노력한다. "청년장사꾼은 단순히 장사를 하는 게 아니에요. 나답게 살기 위한 방법을 제공해줍니다." 그들에겐 확신이 넘친다. 도전하는 모든 길은 함께한다. 주기적인 회의로 직원들 각자의 생각과 청년장사꾼 전체의 비전을 공유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 목표를 설정한다. 열정도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던 원동력이다.

이미 그들이 성공을 거뒀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성공이라는 말에 안주하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도전한다. 이번 열정도 프로젝트가 무모한 짓이라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불가능한 도전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창업을 꿈꾸는 모든 이들의 본보기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오늘도 열정도의 불은 환하게 켜질 것이다. 청년장사꾼의 꿈을 향한 항해는 계속된다.


태그:#청년장사꾼, #열정도, #열정런,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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