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시즌 프로야구는 그 어느 때보다 드라마틱하고 다사다난한 이야기들이 넘쳐났다. 국민스포츠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때로는 팬들을 행복하게 하고, 때로는 슬프게 하거나 화가 나게 만드는 순간도 있었다. 올해 프로야구에서 가장 팬들의 주목을 끌었던 핫 이슈들은 무엇이 있을까.

삼성의 시대, 통합 4연패

 1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5차전 넥센과 삼성의 경기. 9회말 2사 주자 1, 3루 때 삼성 최형우가 끝내기 2타점 우익수 오른쪽 2루타를 친 뒤 기뻐하고 있다.

11월 1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5차전 넥센과 삼성의 경기. 9회말 2사 주자 1, 3루 때 삼성 최형우가 끝내기 2타점 우익수 오른쪽 2루타를 친 뒤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말 그대로 삼성의 시대다. 과거 최강의 팀으로 불리던 해태도 이루지 못한 4년 연속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우승이라는 신기원을 이뤄내며 한국야구 역대 최고 왕조의 반열에 올랐다.

일본으로 진출한 오승환의 공백은 미국에서 복귀한 임창용과 셋업맨 안지만이 잘 메웠고, 박한이·채태인·최형우·박석민의 중심타선이 엄청난 폭발력을 보였다. '회춘'한 이승엽은 올 시즌 32홈런을 기록하며 역대 최다인 9번째 골든글러브 수상이란 신기록도 세웠다.

삼성 장기집권의 원동력은 선수 개인의 능력에 의존하지 않는 '시스템 야구'의 정착에서 나온다. 토종과 외국인 선수들이 조화를 이룬 투수력은 여전히 리그 최강이고, 올해는 팀 타율에서도 리그 1위를 달렸다. 시즌 중 주축 선수들의 부상 속에서도 대체 선수들이 고비마다 빈자리를 잘 메웠다.

접전이었던 넥센과의 한국시리즈 승부에서도 초반 열세를 뒤집고, 3차전과 5차전에서 두 번의 결정적인 역전승으로 챔피언 DNA를 인증했다. 류중일 감독은 사령탑 데뷔 이후 최초의 4년 연속 우승에,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까지 차지하며 한국야구 역대 최고의 복장으로 등극했다. 삼성은 내년에도 통합 5연패의 전망이 매우 밝다.

타고투저와 넥센 신드롬

2014 프로야구의 트렌드는 타고투저로 요약된다. 리그 평균자책점(5.21)과 타율(2할8푼9리)모두 역대 최고기록을 경신했다. 삼성 릭 밴덴헐크(3.18)는 역대 가장 높은 수치의 평균자책점 1위였고, 3할 타자만 역대 최다 36명이 속출했다.

꼴찌 한화는 프로 원년 삼미가 세운 6.23을 뛰어넘는 역대 최악의 팀 자책점(6.35) 기록을 경신하는 수모를 당했다. 심각한 타고투저로 경기시간은 역대 최장 3시간27분까지 늘어졌다. 그나마도 후반기에 제도 수정으로 타고투저가 다소 완화된 기록이 이 정도다.

타고투저 현상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거론된다. 외국인 타자 가세에 따른 전반적인 공격력 향상, 좁은 스트라이크존, 공인구 문제 등이 지적됐지만 가장 근본적으로는 타자들의 수준 향상 속도를 투수들이 따라잡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타고투저 시대의 수혜를 가장 입은 팀이 바로 넥센이다. 올해 준우승을 기록한 넥센은 타이틀 수상자와 신기록을 대거 배출해내면서 개인 시상식을 싹쓸이했다. 박병호가 11년 만의 50홈런(52개) 시대를 열며 3년 연속 홈런-타점왕을 차지했고, 서건창은 단일 시즌 200안타(201개)를 돌파했다. 메이어저리그 진출을 추진중인 강정호는 역대 유격수로는 최초로 한 시즌 40홈런을 세웠다. 뛰어난 개인성적을 바탕으로 스토브리그에서 연봉 인상의 폭이 가장 컸던 구단도 넥센이었다.

반면 타고투저의 광풍 속에서도 빛난 투수들은 있었다. 넥센 앤디 밴 헤켄이 7년 만의 20승 투수로 등극했다. NC 외국인 투수 찰리는 6월24일 잠실 LG전에서 9이닝 동안 볼넷 3개만 내주고 무안타 무실점을 기록하며 2000년 송진우(한화) 이후 14년 만에 노히트노런을 달성하기도 했다.

감독 잔혹사와 팬심의 위력

올해 프로야구는 감독들에게는 유난히 잔혹했던 시즌이었다. 지난 4월 23일 김기태 당시 LG 감독은 개막 한 달도 안 되어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하여 파문을 일으켰다. LG는 양상문 신임 감독을 임명한 뒤 승승장구,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고, 김기태 감독은 시즌 뒤 역시 KIA의 새 수장으로 야구계에 복귀했다.

하지만 진짜 잔혹사는 정규시즌이 끝난 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올 시즌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한 5∼9위 5개팀 감독이 모조리 교체됐다. 송일수 두산 감독은 3년 계약의 첫 해만 지휘봉을 휘두르고 해임됐다. SK는 계약이 만료된 이만수 감독 대신 김용희 감독을 선임했다.

이 과정에서 팬들의 영향력이 커진 것도 주목할 만하다. 당초 구단에 의하여 유임이 결정됐던 선동열 KIA 감독은 성난 팬들의 거센 반발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일주일 만에 자진사퇴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2년 연속 최하위에 그친 김응용 감독이 물러난 한화는 당초 다른 감독후보들을 선임하려고 했으나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야신' 김성근 감독을 영입하며 뜨거운 화제를 몰고 오기도 했다.

올해 야구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롯데의 CCTV 사찰 파문에서도 행동하는 팬심의 영향력이 두드러졌다. 롯데 구단이 선수단 원정숙소에서 CCTV를 이용해 선수들의 동향을 체크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사회적으로도 큰 논란이 됐다. 분노한 팬들은 집단 시위에 나섰고, 여론이 악화되면서 결국 최하진 사장, 배재후 단장이 동반사퇴하는 등 초유의 구단 수뇌부 전원 교체라는 결말로 일단락됐다. 이창원 신임 사장은 "불미스러운 일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각별히 노력하겠다"며 팬들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했다.

아시안게임 우승, 논란은 짧고 병역혜택은 영원하다?

한국야구는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대만을 꺾고 2회 연속 금메달을 수성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은 아시안게임에서 프로 선수들이 출전하기 시작한 1998년 대회부터 최근 5번의 대회에서 4번이나 금메달을 차지하며 절대강자의 위상을 굳혔다.

하지만 이번 대회는 여론이 별로 좋지 않았다. 참가국들의 수준 차이가 대회 때마다 극명하게 벌어지며 콜드게임이 속출했다. 유일하게 프로 1진을 내세운 한국은 노골적으로 병역미필자 위주의 라인업을 내세우며 아시안게임이 '야구선수들의 병역혜택을 위한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비난을 초래했다.

이번 대회 금메달로 병역혜택을 받은 나지완은 우승 후 인터뷰에서 대회 참가를 위하여 부상을 숨긴 사실을 고백하며 팬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선수들의 땀과 눈물이 빛났던 다른 종목의 금메달에 비하여, 야구 우승의 가치가 빛바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쩐의 전쟁, FA 시장이 미쳤다

스토브리그에서는 역대 최대의 '돈잔치'가 화제를 모았다. 최정(SK, 4년 86억 원), 윤성환(삼성, 4년 80억 원), 장원준(두산, 4년 84억 원)은 FA 역대 1-3위 기록을 갈아치우며 80억 시대를 열었다. 올해 FA 시장에서 오간 돈은 모두 610억 원에 달한다.

항간에선 공식 발표한 금액에 비하여 더 높은 액수를 받은 선수가 있다는 소문도 돌고 있어서, 사실상 100억 원 시대를 넘긴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들보다 더 좋은 성적을 올렸던 외국인 선수들이나, 메이저리그 포스팅에서 박대를 받았던 김광현-양현종의 사례와 비교할 때 국내 FA들이 실력에 비해 거품이 심하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야구계에서는 10구단 시대를 맞이하며 선수들의 수요는 늘어나는데 정작 실력 있는 선수는 부족하다보니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정작 까다로운 보상규정 등으로 인하여 노장이나 중저가형 FA들은 피해를 보고 있다. 등급제 도입과 보상규정 완화, 외국인 선수 제도 확대 등으로 FA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해외 진출 선수들의 명암

해외파들의 활약도 두드러진 한 해였다. 메이저리거 2년차 류현진(LA 다저스)은 14승 7패에 평균자책점 3.38로 맹활약했다. 포스트시즌에서는 6이닝 1자책점으로 제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박수를 받았다. 2년 연속 14승과 함께 다저스의 3선발로 확실하게 자리 잡은 점은 고무적이지만 부상자 명단에 자주 이름을 올리며 152이닝(2013시즌 192이닝) 소화에 그쳤다는 점은 옥에 티였다.

반면 추신수는 FA 잔혹사에 시달렸다. 1년 전 이맘때 텍사스 레인저스와 7년 1억3천만 달러(약 1천433억 원)라는 잭팟을 터뜨리며 기대를 모았던 추신수는 연이은 부상과 슬럼프에 발목을 잡히며 타율 0.242, 출루율 0.340, 홈런 13개라는 초라한 성적표에 그쳤다.

일본 무대에서는 이대호와 오승환이 한국야구의 자존심을 세웠다. 일본 진출 3년차인 이대호(소프트뱅크)는 생애 첫 포스트시즌 우승을 맛봤다. 오승환(한신)은 팀이 일본시리즈에서 준우승에 그쳤지만 개인성적으로는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일본 진출 첫해부터 일본 리그 역대 한국인 최다 세이브 기록(38세이브)을 경신하며 센트럴리그 세이브왕에 올랐다. 포스트시즌에서도 클라이맥스시리즈 6경기에 모두 나와 호투하며 MVP를 차지했다.

제 2의 류현진, 이대호를 꿈꾸는 국내 프로 스타들의 해외진출은 희비가 엇갈렸다. 김광현과 양현종은 포스팅시스템을 통하여 메이저리그 진출을 타진했지만, 예상보다 낮은 조건에 발목이 잡혔다. 김광현이 200만 달러의 포스팅금액을 제시받았으나 샌디에이고와 최종협상이 불발됐고, 양현종은 KIA의 거부로 협상테이블에 앉지도 못하고 두 선수 모두 국내 무대 잔류가 결정됐다. 야수 최초로 포스팅에 도전한 넥센 강정호만이 피츠버그로부터 500만 달러를 제시받으며 내년 시즌 KBO 타자 출신으로는 첫 메이저리거 탄생을 기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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