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수능이 끝났다. 언제나 그랬듯이 변별력이 문제가 되고, 그 속에서 제 실력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처지가 논해지고, 새로운 제도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어느새 교육이 곧 '공부하는 아이들을 제대로 대학이 보내는 것'이 된 세상에서 수능이 바뀌면 바뀔수록 공교육이 제대로 서기는커녕, 더 빨리 사교육을 받고 특목고로 갈아탄 아이들이 유리해질 뿐이다. 공부를 하지 않는 아이들, 심지어 학교 밖으로 튕겨져 나온 아이들을 위한 '교육'은 없다.

여기 한 편의 연극이 무대에 올랐다. 지금부터 쓰는 '리뷰'는 그 연극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연극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12월 27일과 28일에 KBS 1TV에서 방영된 2부작 다큐멘터리 <우리는 두 번째 학교에 간다>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두 번째 학교에 간다>라는 연극을 공연할 주인공들은 학업을 중단할 위기에 처해 있는 아이들이거나, 학교 밖 아이들이다. 이 8명은 자신들의 이야기로 연극을 공연하기 위해 모였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를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내레이터이자 이들을 지켜보아 주는 '어른'으로 배우 최불암이 초대됐다.

 KBS 1TV 2부작 다큐멘터리 <우리는 두 번째 학교에 간다> 스틸컷

KBS 1TV 2부작 다큐멘터리 <우리는 두 번째 학교에 간다> 스틸컷 ⓒ KBS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 일찍이 선생님의 폭력 때문에 학교생활을 접어버린 아이, 강남으로 이사 온 후 성적 부담 때문에 학교를 그만 둔 아이, 가출을 밥 먹듯이 하는 아이, 중학교 시절 화장을 하다 선생님의 눈 밖에 난 아이, 일반고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미용학교로 옮긴 아이, 부모님이 안 계셔서 쉼터를 전전하는 아이. 오토바이 사고로 보호관찰을 받는 중인 아이, 지각과 결석을 밥 먹듯이 하는 아이까지, 이 8명에게는 각각의 사연이 있다.

연극은 세상이 그저 '문제'라고 바라보는 이들의 사연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드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비롯해 '자기 자신'을 올곧이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한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다. 학교에서 쉬이 빠져나가던 아이들은, 규칙적으로 연극을 준비하는 모임에 성실하기가 힘들다. 각자의 사연들도 그들이 연극에 집중하기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가슴 속 상처가 만들어낸 한 편의 연극, 변화를 일으켰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세상 어느 곳에서도 귀 기울여 주지 않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 모임에, 이들은 열중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가슴 속에 묵혀두었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그동안 입었던 상처들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학교만이 아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입었던 상처를 바탕으로 연극을 만들면서, 묻어 두기만 했던 그 상처를  제대로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우리는 두 번째 학교에 간다>가 가진 독특한 지점은 우리 사회가 젖혀 놓은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노회한 할아버지' 최불암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는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철딱서니 없다' 등 '어른'들의 시선을 대표한다. 가끔은 참다못해 '너희들의 이야기를 만드는데 어떻게 그렇게 불성실하느냐'며 잔소리를 하기도 하지만, 어느새 최불암도 아이들의 이야기를 지켜보며 변화한다. 이 변화는 그들을 '문제아'로 만든 것이 그저 그 아이들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것을, 또 다른 '어른'들인 시청자가 공감할 수 있게 만든다.

 KBS 1TV 2부작 다큐멘터리 <우리는 두 번째 학교에 간다> 스틸컷

KBS 1TV 2부작 다큐멘터리 <우리는 두 번째 학교에 간다> 스틸컷 ⓒ KBS


공연 바로 전날까지도 '저들이 무대에 오를 수 있을까'란 의문을 가졌던 것에 무색하게, 8명의 아이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공연으로 완성해 낸다. 그들이 가졌던 상처, 그리고 지금의 그들이 가진 두려움, 좌절, 그리고 혼란을 자신들의 목소리와 몸짓으로 가감 없이 담아낸다. 그리고 그걸 주변의 어른, 친구들과 나눈다. 그들이 완성한 연극, 그것이 바로 그들의 두 번째 학교였다.

기적처럼 자신들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린 이들은 정말 두 번째 학교를 졸업한 것처럼 달라졌다. 자신들의 문제를 직시하게 됐고, 자신들의 선택에 자신감을 가지려 하고, 새로운 희망을 꿈꾸고자 한다. 아이들만이 아니다.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변화한 최불암처럼, 아이들의 연극을 본 '어른'들도 부끄러움에서부터 모든 아이들을 몰아넣은 공교육에 대한 새로운 책임감까지 다양한 감회에 젖는다.

그저 '생각 없는 아이'들이었던 아이들에게 진솔한 고민과 고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들 자신도, 그들을 바라보던 어른들도 달라졌다. 진짜 '교육'이 무엇이고, 누구를 위한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 진정한 질문이 던져진 시간이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우리는 두 번째 학교에 간다 최불암 연극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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