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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 『에브리맨 Everyman』
▲ 에브리맨 필립 로스, 『에브리맨 Everyman』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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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만 인간답게 살 수 있다. 태어나자마자 무인도에서 홀로 지낸 인간이 짐승과 다를 수 없다는 건 쉽게 상상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관계는 어떻게 맺는 것일까. 해답은 남의 감정을 이해하고 나의 감정을 이해시키는 것, 즉 공감능력이다. 언어나 몸짓을 이용해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것 말이다. 그리고 그 방법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 바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소설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난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Everyman)>에는 다른 소설과는 다른, 빛나는 어떤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소설은 단순히 공감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화해의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에브리맨>의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다. 말할 수도 없을 뿐더러 숨조차 쉴 수 없다. 즉 그는 이미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기회를 잃어 버린 상태다. 그 지점에 작가는 '그'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마음껏 변명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는 자신이 지나온 세월,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을 바라본다. 담담한 문체 위로 그가 얼마나 화해를 원했는지, 그리고 왜 끝까지 화해할 수 없었는지 사무치게 전달된다.

나는 영화 <인셉션>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인셉션>에서 주인공 코브와 일당들은 로버트 피셔가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지 않고 스스로 회사를 해체하길 바란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피셔가 받아들이지 않을 생각이기에, 그들은 피셔의 꿈에 침투해 잠재의식을 조작하고자 한다. 그들은 피셔가 아버지와 불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감정을 이용하기로 한다. 아래는 그들이 꿈을 어떻게 조작할지 의논하는 내용이다.

"지금 로버트는 아버지와의 관계로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
"이렇게 하면 어떨까? 아버지의 회사를 해체하는 게 아버지에 대한 복수라고 암시하는 거야."
"아냐, 난 긍정적인 감정이 부정적인 감정을 이긴다고 생각해. 화해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줘야 해. 로버트가 이 모든 것에 긍정적인 감정으로 반응하게 해야 해."

코브의 대사는 <에브리맨>이 보여준 화해의 욕구가 얼마나 강한 것인지 잘 보여준다.

위에서 언급된 카타르시스라는 말은 소설의 주제를 관통한다. 그것은 '정화작용'이라는 뜻이다. 사전적인 정의는 '마음속에 억압된 감정의 응어리를 언어나 행동을 통하여 외부에 표출함으로써 정신의 안정을 찾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

누구나 마음 속의 응어리가 있고, 그것은 대부분 관계에서 비롯된다. 그것을 해소하는 일이 카타르시스이자 화해인 것이다. 필립 로스는 화해의 욕구를 통해 소설이 가진 또 하나의 기능을 성공적으로 보여주었다. 또한 에브리맨이 나와 다른 사람이 아닌 것처럼, 필립 로스도 내가 느꼈던 마음과 같은 마음으로 소설을 썼다고 믿는다. <에브리맨>은 그 누구보다도 작가 자신을 위한 화해의 면죄부라고 생각한다.

역설적이게도 소설 속 '그'는 죽었기 때문에 변하는 것은 없다. 결국 누구와도 화해하지 못한 채로 쓸쓸히 죽음을 맞을 뿐이다. 그렇기에 '그'의 화해에 대한 욕구는 안타깝고 절실하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 수많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지만 어쩔 수 없이 불화에 휩싸인다. 일생을 갖고도 화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우린 그의 생애를 함께 지켜봄으로써 우리의 생애를 바라볼 수 있다. 우리는 아직 화해할 기회가 남아있다는 교훈과 함께.


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문학동네(2009)


태그:#필립로스, #에브리맨, #EVERYMAN, #화해,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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