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좀 고르자' 9일 오후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서울 SK 대 전주 KCC 경기에서 KCC 하승진이 리바운드볼을 잡다가 넘어져 숨을 고르고 있다.

▲ '숨 좀 고르자' 지난 9일 오후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서울 SK 대 전주 KCC 경기에서 KCC 하승진이 리바운드볼을 잡다가 넘어져 숨을 고르고 있다. ⓒ 연합뉴스


전주 KCC의 최장신센터 하승진(221cm)이 올 시즌도 부상 징크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승진은 현재 종아리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한 상태다. 올 시즌 하승진을 앞세워 태풍의 눈으로 주목받았던 KCC는 최근 6연패 포함 8승 22패(.267)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9위에 머물러 있다. 이미 KCC는 하승진이 공익근무로 자리를 비웠던 지난 두 시즌 간 연속으로 플레이오프에 탈락한 바 있다.

하승진은 농구선수로서 축복받은 신체조건을 앞세워 처음 등장할 때부터 한국농구의 미래로 기대를 모았던 선수다. 그러나 부상이 번번이 그의 성장을 가로막았다. 신은 하승진에게 뛰어난 신체를 줬지만, 그 몸을 유지할 만한 건강은 허락하지 않았다.

탁월한 신체조건의 기대주... 부상에 발목잡히다

하승진은 KBL 데뷔 이후 부상 없이 온전히 시즌을 소화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가장 많은 경기에 출장한 것이 데뷔 첫해였던 2008-2009시즌의 45경기였다. 이후 하승진은 매년 부상으로 정규시즌 10경기 이상을 꼬박꼬박 날려야 했다. 복귀 첫 시즌인 올해도 벌써 9경기나 결장했다. KBL에서 이제 다섯 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는 하승진은 그동안 부상으로 날린 경기 수만 합쳐도 한 시즌 분을 훌쩍 넘어선다.

잦은 부상은 대표팀에서의 활약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승진의 등장으로 한국농구의 고질적인 높이 콤플렉스가 어느 정도 해소되리라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정작 하승진은 대표팀에 소집되어도 코트에 서 있는 시간보다 부상으로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더 길었다. 어쩌다 경기에 투입되어도 아시아 정상급 센터들과의 맞대결에서 굴욕을 당하는 '흑역사'만 남기기 다반사였다.

하승진과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던 하메드 하다디(이란)나 이첸리엔(중국) 등이 어느덧 아시아 톱클래스의 선수들로 성장했다. 반면 하승진은 신체조건에 의지하여 KBL 무대에서만 통하는 '국내용'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주성이나 서장훈처럼 잘할 때나 못할 때나 대표팀의 골밑을 꾸준히 지켜준 것도 아니었다.

사실 부상은 하승진의 신체조건상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실제로 몸싸움이 격렬한 농구에서 거구의 선수들일수록 부상위험에 쉽게 노출된다. 하승진처럼 220cm 이상의 초장신들은 격렬하게 몸싸움을 하거나 코트를 왕복하다보면 발목이나 허리에 남들보다 더 무리가 가기 쉽다.

장신인 선수들은 몸집이 작은 선수에 비해 한 번 부상을 당할 때 회복에도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이 점도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한다. 하승진 본인도 과거 '유리몸'이라는 비아냥에 발끈하여 "농구선수 중 부상은 나만 당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항변한 적이 있다. 올해 KCC만 해도 하승진 외에 많은 선수가 부상병동에서 허덕이고 있다.

하승진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몸무게를 10kg 정도 감량하면서 건강한 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올해도 부상의 저주를 피하지 못했다. 더구나 체중을 감량하면서 오히려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힘이 떨어지면서 골밑에서의 몸싸움이 약해진 것이다. 과거에는 엄청난 체격을 앞세워 외국인 선수들도 하승진과의 몸싸움을 버거워하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올 시즌 하승진보다 작은 국내 선수들도 하승진을 힘으로 골밑에서 밀어내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나왔다.

어차피 하승진은 기술이 뛰어난 선수가 아니다. 엄청난 높이에도 불구하고 정작 슛 적중률은 기대보다 떨어진다. 실책도 많다. 기동력은 기대하기 어렵고, 수비범위도 좁아서 공수전환시 속공 게임에 취약하다. 자유투 또한 좋지 않아 정작 승부처에서 믿고 기용하기에는 불안하다. 상대팀들이 이러한 하승진의 약점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면서, 올 시즌 KCC의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대체 불가능한 KCC의 중심... '원맨팀'의 한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KCC의 중심은 아직까지 하승진이다. KCC가 허재 감독 취임 이후 두 번의 우승과 한 번의 준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데는 하승진의 존재감이 막대했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신 KCC는 하승진의 컨디션 여하에 따라 팀 전력이 극과 극을 달리는, 기복이 심한 팀으로 바뀌었다.

KCC는 시즌 초중반까지 부진하다가 후반기부터 상승곡선을 타며 플레이오프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다. 하승진이 부상회복 이후 컨디션이 올라오던 시점과 일치한다.

다만 당시는 KCC가 최소한 플레이오프 진출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하승진의 주변에도 강병현·임재현·전태풍·추승균 등 뛰어난 동료들이 포진하고 있었기에 하승진에게만 의지하는 팀도 아니었다. 현재 KCC에서 당시 우승멤버 중 남아있는 선수는 하승진을 제외하면 수비형 가드 신명호 정도다.

예전처럼 하승진의 부담을 덜어줄 백업센터도 마땅치 않고, 팀 성적은 벌써 회복이 어려운 수준까지 추락하고 있다. 하승진의 도우미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했던 김민구의 부상, 김태술의 부진이라는 악재는 KCC가 예상하지 못한 변수였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풀타임을 소화하기 어려운 하승진의 대안이 전혀 없었다는 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현재 KCC는 하승진이 복귀한다고 할지라도 이미 플레이오프행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만일 KCC가 올해도 6강 진출에 실패한다면 창단 이후 최초로 3년 연속 플레이오프 탈락이 된다.

하승진도 어느덧 30대를 바라보고 있다. 한때 샤킬 오닐을 빗대어 '하킬'이라는 닉네임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거듭되는 부상 속에 이제는 '유리몸'의 대명사처럼 되어 아쉬움을 사고 있다. 어쩌면 하승진에게 가장 필요했던 성장이란, 기술적 발전보다도 부상을 당하지 않고 오랜 시간 코트를 누빌 수 있는 내구력을 갖는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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