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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한 교수가 쓴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대박을 쳤다. 88만 원 세대, 3포 세대 등으로 불리는 내 또래의 청년들은 너나없이 그 책을 읽었다. 내 친구들은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에 공감해서 책을 찾은 것이 아니었다. 한 걸음 앞도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서 버티라고 이야기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렇게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였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곱씹어 볼수록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이다. 어쩐지 수만 개의 아픔들이 "청춘"이라는 단어로 뭉뚱그려지는 느낌이라 싫고, 이 시기만 잘 버티면 괜찮아질 거라는 거짓말이라 싫다. 스물다섯, 며칠 있으면 스물여섯이 되는 나는 사람들이 보통 '청춘'이라 부르는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살아간다는 말보다는 버텨낸다는 말이 더 어울릴 만한 삶이지만. 나는 대학을 다니면서,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지금도 알바노동자로 살고 있다. 알바노동자로 산다는 말은 늘 돈이 없으며 고작 몇 달 뒤의 삶도 계획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말이다.

김무성 대표의 '이상한 말'

김무성 의원이 ‘정책 타운미팅-청춘무대’에서 알바의 열악한 처우에 대해 "(알바는) 인생에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해야 한다.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열악한 알바,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라"? 김무성 의원이 ‘정책 타운미팅-청춘무대’에서 알바의 열악한 처우에 대해 "(알바는) 인생에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해야 한다.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 네이버 검색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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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그러니까 12월 26일 저녁부터 내 타임라인이 한 의원의 발언과 그 발언에 대한 반응으로 뜨거워졌다.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 의원이 '김무성 대표와 함께하는 정책 타운미팅-청춘무대'에서 한 말 때문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한 대학생의 4분의1이 부당 처우를 경험했다는 통계도 제기되었는데, 이에 대해 김무성 의원은 "인생에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해야 한다.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화를 냈다. 알바노동자에게 알바는 그저 잠깐의 "인생에 좋은 경험"이 아니라 이미 그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열악한 처우에 대해 "방법이 없다"는 말은 우리의 인생에도 방법이 없으니 그저 버티라는 선고였다. 알바노동자들은 알바를 하는 시간에 따라 삶이 계획되고 알바를 해서 받는 임금에 따라 소비 수준이 결정되며 그에 따라 인간관계, 건강, 학업, 취미생활 등 모든 게 정해진다. 최저임금 5210원(2014년 기준)을 받으며 한 달 내내 일해도 제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알바노동자들에게 "방법이 없다"라니. 이 말은 "너희의 삶은 한 시간에 5210원정도이니 버티든가 못 버티면 죽든가"라는 말에 같다.

김무성 의원은 알바노동자들을 위해 '유용한' 알바 팁도 알려줬다. "알바를 했는데 제대로 비용도 안 주고 그런 나쁜 사람들이 많다. (사용자가) 그런 사람인가 아닌가 구분하는 능력도 가져야 한다"거나 "부당한 대우를 당했을 때 상대를 기분 나쁘지 않게 설득해 마음을 바꾸는 것도 여러분 능력"이라는 것이다.

알바노동자들은 이제 사장이 나쁜 사람인지 아닌지 가려내는 감식안도 갖춰야 하며 설령 임금을 떼여도 사장님을 잘 설득해 돈을 받아 낼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임금체불은 불법이다. 우리는 법으로 보장된 권리조차 스스로의 능력에 따라 보장받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있는 것일까.

시급 4000원(2012년 당시 최저임금은 4580원이었다)을 받으며 일도 해 보았고 월급을 떼인 적도 있었다. 사장의 성희롱을 견뎌야 하기도 했고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는 손님들 때문에 마음 쓰이던 날도 있었다. 월급이 다 떨어져 가는 월말이 되면 아침, 점심, 저녁 중에 밥을 언제 먹을지 고민한다. 요즘 같은 연말이면 바빠서 못 본 친구들이 보고 싶지만 돈이 없어 송년회조차도 골라서 가게 된다. 김무성 의원의 말대로 차라리 잠깐의 좋은 경험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어제, 오늘의 삶이 그러했듯 당분간은 이러한 삶이 계속될 걸 알고 있다. 새누리당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어제의 타운미팅은 "취업과 대학 등록금 등 우리 청년들의 성장통을 함께 고민하고 우리 당이 체감도가 높은 현실적인 정책들을 많이 펼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였다고 한다.

알바를 인생 잠깐의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분으로부터 얼마나 현실적인 정책이 나오겠냐마는 정책을 고민하기 위해 만든 자리라면 정책을 고민하시길 바란다. 그 자리에서 여당의 당 대표가 한 말이 고작 "방법이 없다"니 눈앞이 캄캄해진다. 마지막 말은 한 네티즌의 댓글로 대신하려 한다.

"방법이 없는 게 아니라 그 방법을 만들고 찾는 게 너님께서 하셔야 하는 일 아닌가?"

덧붙이는 글 | * 아르바이트노동조합(알바노조)는 29일 10시 30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알바노조, 김무성 대표 사과와 알바권리보장 대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 개최합니다. 또한 알바노조 조합원들이 새누리당 인천시당, 경기도당, 충남도당, 광주시당, 대구시당, 부산시당 사무실 앞에서 김무성 대표 발언에 항의하는 1인시위도 벌일 예정입니다. 알바노조 / 02-3144-0936. www.alba.or.kr



태그:#새누리당, #알바, #알바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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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아르바이트 노동조합. 알바노동자들의 권리 확보를 위해 2013년 7월 25일 설립신고를 내고 8월 6일 공식 출범했다.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인 시급 10,000원으로 인상, 근로기준법의 수준을 높이고 인권이 살아 숨 쉬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알바인권선언 운동 등을 펼치고 있다. http://www.alb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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