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검찰은 그동안 '정윤회 문건' 작성과 유출에 조 전 비서관 개입을 의심해 왔었다고 보도한 <조선일보> 12월 27일자 10면.
▲ 드디어 피의자가 된 조응천 검찰은 그동안 '정윤회 문건' 작성과 유출에 조 전 비서관 개입을 의심해 왔었다고 보도한 <조선일보> 12월 27일자 10면.
ⓒ 조선일보PDF

관련사진보기


26일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검찰에 재소환됐다. 지난 5일,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했던 그는 "주어진 소임을 성실히 수행했을 뿐, 가족이나 부하 직원들에게 부끄러운 짓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정권의 'Watchdog(와치독, 감시견)'으로 자부했던 그는 애초 사법처리 대상이 아니었다. '정윤회 문건의 신빙성은 60% 이상'이라고 자신했던 그를 검찰은 이날 '피의자'로 재소환한 것이다.

지난 18일 검찰이 박관천 전 행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까지만 해도 '박 경정 1인 자작극'으로 마무리되는 분위기였다. 박 전 행정관이 반출한 문건은 숨진 최모 경위가 언론에 유출한 것으로 파악했다. 검찰이 총력을 기울여 3주 가까이 수사한 결과였다. 일부 언론에서는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시작만 요란하고 결과는 보잘 것 없음)'이라고 보도하기 시작했다.

검찰 수사가 조응천을 겨냥한 시점은 박지만씨 재소환 이후부터다. 지난 15일에 이어 23일 박씨는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박씨는 '정윤회 미행설' 관련 보강 조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박지만 회장을 소환 조사한 결과에 따라 조응천 전 비서관에 대한 추가 조사가 결정됐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가 조응천 전 비서관을 사법처리하는 것으로 종료된다면 지난 7일 '가이드라인' 논란을 빚은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의 적중력은 100%에 해당한다. '수사반장' 박근혜의 예지력과 통찰력이 확인되는 셈이다.

박 대통령은 정윤회 문건에 대해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 '찌라시'에나 나오는 얘기라고 언급한 바 있다. 정윤회 관련 내용은 '사실무근', 그리고 사법처리 되는 사람들은 문건을 유출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수사반장 박근혜의 추리대로 사건이 종료된다고 해도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 존재한다. 네 인물을 따라 네 가지가 존재한다.

[조응천] 자신이 유출한 문건 알아보라고 청와대에 소리쳤다?

조 전 비서관이 사법처리 된다면, 사유는 박관천 경정이 올 2월 청와대 파견이 해제돼 경찰에 복귀할 때 청와대 문건을 들고 나오는데 관여한 혐의다. 조 전 비서관은 박 경정이 청와대를 떠날 당시 "당신이 (청와대를) 나가도 정보분실에서 각종 정보를 접하니 박지만 EG회장 관련 업무에서는 나를 계속 챙겨줘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이 지난 6월 시중에 유포된 청와대 문건과 관련해서 비서실에 알린 내용을 <동아일보>에 전하고 있다. 해당신문 12월 12일자 6면.
▲ 문건 유출사실 청와대에 알린 조응천 조응천 전 비서관이 지난 6월 시중에 유포된 청와대 문건과 관련해서 비서실에 알린 내용을 <동아일보>에 전하고 있다. 해당신문 12월 12일자 6면.
ⓒ 동아일보PDF

관련사진보기


박 경정이 문건을 유출하는 데 조 전 비서관이 직접적인 지시를 했는지, 아니면 "나를 계속 챙겨줘야 한다"는 말을 듣고 박 경정이 업무지시로 해석해 들고 나왔는지 검찰 수사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검찰 수사결과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이해가지 않는 대목이 있다.

지난 6월, 시중에 떠돌고 있다는 청와대 문건 100여쪽을 확인한 조 전 비서관은 오모 행정관을 통해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에게 이를 전달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는 조 전 비서관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자 청와대 자체 감찰 결과에도 인용됐다. 그는 정호성 비서관을 통해 박 대통령에게 전달되기를 희망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자 그는 7월 신임 민정수석에게 전화를 걸어서 청와대 문서 유출의 심각성을 전했다. 그런데 유출된 문서에 대한 수습이 이뤄지지 않고 대신 민정수석실 비서관이 전화를 걸어와 "무고 아니냐"며 물었고 이에 화가 난 조 전 비서관이 "문건 유출 사태를 조사부터 하라"고 소리를 친 것으로 전해졌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내용 전개다. 검찰이 조 전 비서관을 사법처리 하려는 혐의는 공무상비밀누설,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으로 알려졌다. 전직 검사인 그는 청와대 문건 유출에 관여해 놓고 어느 순간 문건 유출이 심각하다는 판단에 6월에는 오 행정관을 통해 정호성 비서관에게, 7월에는 민정수석에게 연락해 "문건 유출 사태를 조사하라"라고 소리쳤다는 말이다.

과정만 요란했지 검찰은 끝까지 조 전 비서관에 대한 사법처리를 쉽게 결정하지 못할 듯 싶다. 영장에 적시할 증거와 정황에 합리적 의구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와치독'을 자임했던 그가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청와대 문건을 반출했고, 왜 청와대에 직접 유출의 심각성을 고지했다는 말인가.

27일 새벽 재소환돼 강도높은 조사를 받은 조 전 비서관은 검찰청사를 빠져 나가면서 기자들과 만나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고 말하며 '정윤회 문건'의 신빙성과 관련해서는 "(인터뷰) 당시 상황 판단과 바뀐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박관천] 왜 무슨 이유로 '박지만 미행설' 자작극 벌였나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박관천 경정은 '정윤회 문건'과 관련해 현재까지 유일하게 구속된 인물이다. 그는 지난 19일 청와대 문건을 외부로 반출한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검찰에서 18일 박관천 전 행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왜 허위문건을 작성하고, 유출시켰는지에 대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음을 지적한 <경향신문> 12월 19일자 8면.
▲ 박관천의 자작극? 검찰에서 18일 박관천 전 행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왜 허위문건을 작성하고, 유출시켰는지에 대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음을 지적한 <경향신문> 12월 19일자 8면.
ⓒ 경향신문PDF

관련사진보기


지금까지 검찰에서 브리핑한 내용 등을 토대로 퍼즐을 맞춰 본다면 박 경정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검찰 조사에 따르면 먼저 "십상시들이 정기적으로 모여서 국정을 논의했다"는 정윤회 문건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그 내용은 제3의 인물이 박동렬 전 대전국세청장에게 전한 얘기를 다시 박 전 청장이 박관천 경정에게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과연 그러할까? 여기에서도 합리적 의심은 제거되지 않는다. 시계를 돌려 지난 1월 6일로 가 보면 박 전 행정관이 작성한 '정윤회 문건'이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보고된다. 박 행정관 → 조응천 비서관 → (민정수석) → 김기춘 비서실장으로 '정윤회 문건' 보고는 정상적으로 진행됐다. 청와대에 비서관급 이상은 대략 56명 내외, 비서관이라 해도 실장에게 직접 보고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재미있는 일은 김 실장에게 보고한 뒤 일주일 후에 발생한다. 보고 후에 갑작스레 문건 작성자인 박 경정을 경찰로 원대복귀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보고 당시 말도 안 되는 내용이면 그 자리에서 크게 혼이 나고 원대복귀가 명령되었어야 했는데 보고는 정상적으로 진행됐고 일주일 지나서 원대복귀 명령이 난 것이다. 이 퍼즐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박 경정 관련해 또 이해되지 않는 대목은 '박지만 미행설' 관련 내용이다. 지난 3월 <시사저널>은 '박지만, 정윤회가 나를 미행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풍문으로만 떠돌던 '박지만-정윤회 권력 암투설'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보도였다. 검찰 수사 결과 박 경정은 주간지 보도 이후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전해했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문건으로 작성해 박지만씨에게 전달했다는 말이다. '박지만-조응천-박관천' 이 관계가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위 퍼즐 역시 해석불가다.

경찰에 원대복귀한 박 경정은 도대체, 왜, 무슨 이유로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문건으로 작성해 박지만씨에게 전달했는가. 상식적으로 그럼으로써 그가 얻을 수 있는 유인은 무엇이 있었을까.

[오아무개 행정관] 왜 청와대를 떠나야 했는가

'정윤회 문건' 관련해 중요한 인물임에도 가장 먼저 잊힌 사람이 있다. 바로 청와대 오아무개 행정관이다. 그는 지난 6월 조응천 비서관의 부탁을 받고 정호선 제1부속비서관에게 '유출 문건' 사실을 전달한 인물이다. 정 비서관에게 관련 내용을 전달한 직후 오아무개 행정관은 대기발령 조치를 받은 바 있다.

'정윤회 문건' 파문이 일자 청와대는 자체 감찰을 벌였다. 그 대상은 오아무개 행정관이었다. 비선 실세가 국정을 농락했다는 의혹이 모든 언론에 도배된 중차대한 시점, 사면초가 상태인 청와대는 돌파구로 오아무개 행정관 감찰에 집중했다. 그의 중요도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수 있다. 감찰 사실도 언론에 공개했다.

청와대는 오아무개 행정관을 대상으로 "문건의 작성과 유출을 모두 조 전 비서관이 주도했지 않느냐"며 답변과 진술서에 서명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는 오아무개 행정관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이에 오아무개 행정관은 "인정도, 서명도 하지 않았다"고 밝힌 뒤 사직서를 제출했다.

청와대 감찰 결과와 오아무개 행정관 인터뷰 내용을 종합해 보면, 그는 이 사건에서 '메신저' 역할을 담당했다. 지난 6월 조 전 비서관 요청을 받고 문건이 유출된 사실을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에게 전달했다. 문건 파문이 발생하자 그는 청와대 감찰을 받았다. 

일개 메신저 역할을 한 그는 왜 감찰을 받고 청와대를 떠나야 했는가. 지난 6월 '제보'를 확인한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에 대해 청와대는 무슨 감찰을 했는가. 이번 파문의 희생자 중 한 명이면서 거취와 관련해서는 끝내 이해되지 않는 사람이다.

[두 경위] 한 사람은 극단적 선택... 한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검찰이 최초 사법처리 대상자로 지목한 인물은 최아무개, 한아무개 경위였다. 검찰은 이들이 청와대에서 반출된 문건을 복사해서 언론에 전달한 '유포자'로 지목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에서는 '범죄 혐의 소명이 덜 됐다'는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최모 경위가 사망한 이후 청와대 회유설의 대상인 한모 경위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음을 보도한 <조선일보> 12월 17일자 5면.
▲ 한 경위 변호사 "그는 자신이 무슨 말 하는지 몰라" 최모 경위가 사망한 이후 청와대 회유설의 대상인 한모 경위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음을 보도한 <조선일보> 12월 17일자 5면.
ⓒ 조선일보PDF

관련사진보기


드라마틱한 일은 두 경찰이 구치소에서 나온 이후에 발생한다. 12일 새벽 영장이 기각됨에 따라 구치소에서 나온 최아무개 경위는 이튿날인 13일 오후 자신의 차량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상태로 발견된다. 그는 14장 분량의 유서에서 <조선일보>에 대한 섭섭함과 청와대가 한모 경위를 회유했다고 폭로했다.

한아무개 경위의 소재는 알려진 바가 없다. JTBC와 인터뷰를 통해 회유 사실을 증언한 것으로 전해진 한 경위. 한 경위의 변호를 맡은 최모 변호사는 "본인의 진술과 언론에 보도된 내용 중 자신의 주장이 무엇인지 헷갈릴 정도로 (정신) 상태가 심각하다"고 밝혔다. 최 변호사는 한 경위가 정신병원에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 수사결과에 따르면 박 경정에 의해 외부로 반출된 청와대 문건을 복사해 언론사 등에 전달한 '2차 유포자'는 최아무개 경위다. 상식의 퍼즐은 여기에서 막힌다. 최아무개 경위가 죽으면서까지 무엇을 지키려 했다는 의미가 된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죽으면서까지 거짓말을 한다는 것도 상식적이지 않다.

애초 검찰은 두 경찰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된 직후, 특검까지 간다는 각오로 두 사람에 대한 영장 재청구를 적극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그로부터 보름이 지난 지금까지 검찰이 한모 경위를 수사했는지, 영장을 재청구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청와대 회유 의혹의 대상자인 한모 경위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남은 숱한 의혹... '가이드라인'에 따라 종결되나

퍼즐은 맞춰지지 않지만 그래도 정리해 본다. 검찰은 26일 재소환된 조응천 전 비서관을 사법처리 하는 선에서 '정윤회 문건' 수사를 마무리할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 결과는 박 대통령이 지난 7일 언급했던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이고 '내용은 찌라시'로 귀결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조응천, 박관천, 오아무개 행정관, 두 경찰 등을 둘러싼 내용이 대단히 부자연스럽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2월 9일 오전 청와대 위민관 영상국무회의실에서 열린 청와대-세종청사 간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2월 9일 오전 청와대 위민관 영상국무회의실에서 열린 청와대-세종청사 간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들 중 상당수는 검찰의 수사결과를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와대에서 근무했기에 '문고리 권력'의 힘을 누구보다 더 절실하게 느꼈을 조응천, 박관천, 오아무개 행정관은 도대체 왜, 무슨 생각으로 이들을 대상으로 한 '보고서'를 작성해 비서실장에게 전달했나. 이들이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심리상태를 보유한 자들이라면 이 상황이 이해될 수 있을까.

박관천 경정이 체포되기 직전에 한 언론에게 말했다. 충성도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박 대통령에게 묻고 싶은 대목 한 가지. 조응천, 박관천, 오아무개 행정관, 두 경찰은 도대체 누굴 위해서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가.


태그:#정윤회, #조응천, #박관천
댓글16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