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계에서 유독 삼성만 만나면 약해지는 현대캐피탈, 최근 몇 년간 비슷한 흐름이 계속되었다. 삼성화재는 안젤코, 가빈 등 막강한 외국인선수를 앞세운 반면 현대캐피탈은 숀 루니 이후 외국인 선수들의 활약은 그저 그랬다. 가스파리니, 아가메즈 등 쟁쟁한 외국인선수들이 힘을 보탰지만 삼성화재에게 속절없이 무너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현대캐피탈로선 문성민의 몸상태가 지난 시즌보다 나아지면서 '복수혈전'을 기다렸다. 한 번은 이길 것이라고 내심 기대도 했고 선수들도 뭔가 뭉치려고 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개막전부터 세트스코어 3-0 셧아웃으로 완패를 당하더니 홈에서 치러진 2라운드 맞대결에선 3-1로​ 고배를 마셨다.

아가메즈를 대신할 대체 외국인선수 케빈이 합류하면서 팀도 살아났다. 전통적으로 강했던 높이가 살아났고 문성민도 아가메즈가 있을 때와는 다르게 부담을 덜며 빠르게 움직였다. 대한항공과 OK저축은행을 잡는 등 하위권에서 시작해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나 싶었는데 다시 만난 삼성화재에 혼쭐이 나며 3-0 셧아웃의 수모를 당하고 말았다. 현대의 상승곡선을 가로막는 '삼성화재 딜레마'는 언제까지 계속되는 것일까.

현대캐피탈은 올 시즌 삼성화재와 세 번의 대결에서 3전 전패, 총 9세트를 내주는 사이 1세트만을 가져오며 여전히 딜레마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케빈에게 큰 기대를 걸었던 김호철 감독이지만 이번 맞대결도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지난 25일 현대캐피탈과 삼성화재의 경기. 1세트부터 레오가 힘을 발산한 삼성화재의 공격에 꽁꽁 묶였다. 여기에 이 날은 중앙에서 지태환의 속공과 오른쪽에서 김명진의 호쾌한 공격까지 터지면서 누구 하나 제대로 막기가 힘들었다.​

1세트를 기분좋게 시작하지 못한 게 너무나 아쉬움으로 남는다. 케빈도 아쉬웠지만 문성민을 의식한 볼 배급이 삼성에게 간파를 당하면서 경험이 미숙한 세터 이승원은 다소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권영민, 최태웅이 번갈아가면서 교체 출전해 노련함이라는 무기를 앞세웠지만 역부족이었다.

어느 팀이든 외국인선수를 주축으로 한 공격패턴을 비슷하게 구사하지만 삼성화재는 극단적이다시피 대부분의 볼을 레오에 넘겨준다. 상대팀들도 이런 '몰빵 배구'를 알곤 있지만 레오만큼은 막아낼 수가 없다. 레안드로, 안젤코, 가빈 그리고 현재의 레오로 이어지는 삼성의 외국인선수 계보를 돌아보면 유독 현대에게 강한 면모를 보였다.

현대의 숀 루니가 떠나고 나서부턴 더 심해졌다. 숀 루니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들어온 외국인선수들의 기량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고 세터 권영민과의 호흡도 잘 맞지 않는 편이었다. 그러다보니 삼성과의 맞대결에서 열세를 당하기 시작했고 가빈 슈미트의 영입으로 정점을 찍었다. 항상 삼성화재와 2강 체제를 이루던 현대캐피탈의 이탈로 남자부는 거의 삼성화재의 독주 체제로 굳어졌다.

2013-14시즌이 시작되기 전 FA(프리에이전트)시장에서 대어급 리베로 여오현이 정들었던 삼성화재를 떠나고 현대캐피탈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V리그 초창기 리그를 대표하는 리베로 중 한 명이었던 오정록이 은퇴하면서 백업 리베로였던 박종영이 중용되었으나 공백이 느껴졌다.

리베로는 배구에서 수비 전문 선수인데 배구의 기본인 리시브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를 수행한다. 여오현은 리그에서 수비 성공율 1위를 자랑할 만큼 뛰어난 수비능력으로 삼성화재를 한동안 뒷받침해왔다. 수비가 좀 약했던 현대로선 여오현의 영입으로 수비 강화와 라이벌 견제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았다. 지난 시즌 삼성의 독주를 막을 대항마로 꼽힌 것도 이 때문이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치를 충족시키는 활약으로 이전보다 전반적으로 수비진에 안정감이 생겼다. 외국인선수 아가메즈도 이름에 걸맞는 파괴력을 선보이며 한국에서 두 번째 시즌을 맞이한 레오를 위협했다. 그럼에도 현대캐피탈의 발목을 잡은 것은 단조로운 공격 패턴으로 인한 아가메즈의 체력 문제와 100% 다 올라오지 못한 문성민의 컨디션이었다. 레오와 박철우의 쌍포로 무장한 삼성화재의 벽을 넘기엔 너무 버거웠다.

올해는 양 팀 모두 큰 변화가 있었다. 현대캐피탈은 시즌 도중 외국인선수가 교체되는가 하면 삼성화재는 주포 박철우가 1라운드를 마치고 입대를 위해 팀 전력에서 빠져나갔다. 그러면서 삼성화재는 레오의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는데 영리한 세터 유광우가 중앙에 있는 지태환으로 속공 기회를 만들어주면서 팀 공격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었다.

반면, 다른 팀들만 만나면 펄펄 날던 케빈은 이 날 유독 조용했다. 1세트 초반 찾아온 두 번의 서브 기회를 모두 범실로 마무리했고 공격에서도 위협이 될 만한 무기가 없었다. 레오가 중앙 파이프(백어택) 공격, 좌, 우 퀵오픈 공격을 적재적소로 한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었다.

3세트 중후반이 되면서 조금 몸이 풀린 듯 감을 찾은 케빈의 활약 속에 현대캐피탈은 바짝 추격의 고삐를 당겼지만 분위기를 뒤집기엔 이미 강을 건너버렸다. 결국 25일 경기서 현대캐피탈은 3세트까지 내줘 3-0 셧아웃됐다. 1라운드의 악몽이 되살아난 것. 케빈이 합류하고도 실망스러운 경기를 해 패배의 충격은 더 강력했다.

서서히 반환점을 향해 항해하고 있는 현대캐피탈이지만 올해도 삼성화제 딜레마에 인상을 찌푸린다. 남은 맞대결에서는 명예회복을 할 수 있을까. 진정한 강팀 반열에 오르기 위해선 삼성화재는 반드시 넘어야 할 상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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