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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모니카 종류가 1000가지가 넘는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다. 옥수수 모양의 하모니카만 생각했는데, 멜로디하모니카·베이스하모니카·코드하모니카처럼 중주가 가능한 하모니카뿐만 아니라 크로메틱·트레몰로처럼 그 이름도 신기하고 기능과 크기도 다양하단다.

지난 17일 남동구에 있는 한 커피숍에서 만난 하모니카 연주자 이예영(24·사진)씨는 샘플로 종류가 다른 하모니카 세 개를 가지고 나왔다. 노래 '작은별'을 연주해 주기도 했다. 피아노로 치면 흰 건반, 검은 건반 역할을 각각 하는 하모니카를 두 개 겹쳐 능란하게 불어댔다. 듣는 내내 감탄하느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힘을 주지 않고 불기만 해도 소리가 나는 악기

 이예영 하모니카 연주자.
 이예영 하모니카 연주자.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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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때, 연수구 연수동에 있는 문화원에서 하모니카를 처음 배웠어요. 중급으로 실력이 늘었는데도 수업이 있는 날이면 초급부터 배우려고 나와서 연습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신기해요. 어릴 때 하모니카를 그렇게 좋아했나 봐요."

경희대학교 포스트모던음악과에서 하모니카를 전공하고 올해 졸업반인 이씨는 얼마 전 집에서 자신이 초등학교 때 하모니카를 연주하며 녹음한 테이프를 찾았다. 노래 제목을 말하고 하모니카 연주를 이어간 테이프는 자그마치 1시간 분량이었다.

"모르겠어요. 그냥 악기가 좋았어요. 호흡과 같이 하는 악기라서 힘을 주지 않고 불기만 해도 소리가 나는 것에 재미를 느끼지 않았을까요? 작은 입으로도 소리가 나는 게 신기해 좋아했던 것 같아요."

이씨는 6학년 때 베이스하모니카를 배우면서 중주를 시작했다. 아시아 6개국(=대한민국·중국·홍콩·말레이시아·대만·싱가포르)은 2년에 한 번씩 '아시아 태평양 하모니카 페스티벌'을 연다. 이씨는 중학교 1학년 때인 2004년 홍콩 대회를 시작으로 이 대회에 참가했다.

국내외 사람들과 교류하는 게 좋아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모니카 연주를 할 수 있다'는 어머니의 말에, 공부도 열심히 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하모니카 연주를 중단했다. 고교생이라는 무게감이 하모니카와 이별하게 했다.

아시아와 전 세계의 챔피언이 되다

고교 2학년 때, 하모니카를 연주했던 자신의 과거를 친구에게 얘기한 이씨는 갑자기 그날 저녁 하모니카가 그리워졌다. 그리고 곧바로 하모니카 연주로 대학 입학시험을 준비했다.

"실기 시험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던 어느 날 아침, 갑자기 턱이 아픈 거예요. 아예 입이 벌어지질 않았어요. 병원에 갔더니 너무 많이 연습해서 턱이 빠졌대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하모니카를 전공으로 대학에 입학한 학생은 우리나라에 열다섯밖에 안 됐다. 경희대의 경우 이씨를 포함해 선후배 1명씩 고작 3명이다.

하모니카를 레슨해 줄 교수가 국내에는 없어 독학으로 연습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지만, 이씨는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집에서 연주에 매진했다.

2012년, 말레이지아에서 아시아 대회가 열렸다. 모든 중주를 마치고 독주 경연만을 남기고 편안해진 마음에 라면을 먹은 게 체해 경연 당일 아침부터 병원에 다녀오고 컨디션 조절에 완전히 실패했다. 입상 욕심을 버리고 한 사람에게 만이라도 감동을 주자는 생각으로 편하게 연주했다. 하지만 중간에 갑자기 머리가 하얘지면서 멜로디를 잊는 실수까지 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심사 결과 1등이었다. 이씨는 심사위원의 심사평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당신이 실수한 것을 다 알았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러나 그걸 잊고 감정을 잘 살렸다'는 말이었어요. 역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화려한 기술보다는 감정이란 것을 깨달았죠."

지난해 11월에는 독일에서 4년에 한 번씩 개최하는 세계대회가 열렸다. 하모니카 제조사인 호너(HOHNER) 공장이 있는 작은 마을에서 열리는 이 대회는 하모니카를 처음으로 만든 독일의 명성을 잇고자 전 세계인들이 펼치는 축제 형식으로 벌어진다.

이씨는 이 대회에 혼자 참가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빈속에 청심환을 먹었는데, 몸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테크닉이 아닌 진심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운 경험으로 감정에 집중해 꿈같은 월드 챔피언이 됐다.

음악은 사람을 치유하는 힘이 있어

"예전에는 빠르고 화려한 곡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노래 제목이나 곡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더 해요. 지금은 악기로 사람을 살리고 아픈 사람들을 치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음악에는 힘이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

이씨는 몇 가지 경험담을 들려줬다.

"작곡 공부도 병행하고 있는데, 제가 슬프거나 우울할 때 쓴 곡은 몇 년이 지나더라도 그 음악을 들으면 작곡했을 때의 아픈 감정이 되살아나요. 그래서 예술가들은 전달받는 관객에게 끼칠 영향을 생각해야해요. 한 번은 공연이 끝나고 40대 중반의 아저씨가 오시더니 '격정적인 멜로디가 너무 슬펐다'고 하시더라고요. 이탈리아의 뮤지션은 제 공연을 보고 마음이 따뜻해졌대요. 감사하고 감동이었죠. 연주하면서 내가 어떻다고 말하지 않고 멜로디로만 표현해도 상황에 맞게 느끼더라고요."

네 심장이 뛰는 일을 선택하라

2013년 독일 세계대회 경연 모습
 2013년 독일 세계대회 경연 모습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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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초등학교 교사가 꿈이었던 이씨는 올해 초 전공 교수의 말 한마디를 듣고 보름 동안 고민했다.

"올해 졸업반이라 연주를 계속하고 싶다는 미련과 경제적인 문제로 교사나 교수를 할까, 진로를 모색할 즈음이었어요. 교수님이 연주와 가르치는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어디에 있을 때 네 심장이 더 뛰느냐고 물으시더라고요."

그후 이씨는 왜 음악을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좋긴 하지만 자신의 진심을 찾는 여행을 하다가 마주친 결론은 '연주'였다. 청춘이니까 도전할 수 있고, 좋아하는 탱고 음악을 마음껏 하자고 정리했다. 그런 뒤 올해 8월, 대만에 2주간 다녀왔다.

"대만에 '주디스'라는 하모니카 앙상블이 있어요. 제가 하모니카를 처음 배울 때부터 동경한 팀인데, 작년 서울 하모니카 페스티벌 때 제가 관광가이드를 자처해 친구가 됐어요. 저는 독학으로 하모니카를 배워 아직도 배우고 싶은 갈증이 많아요. 지금 안 하면 평생 못한다는 생각에 그냥 대만 행 비행기표를 끊고 나서 그들에게 연락했어요. 세계대회 챔피언이 뭐가 부족해 우리한테 배우러 오냐고 물었지만, 전 아직도 많이 부족합니다."

대만에서의 2주간 레슨은 이씨를 더욱 단단하게 했다. 테크닉 중심의 예술은 한계가 있다는 결론과 하모니카에 대한 열정을 다시 배웠다. 두터워진 내공으로 졸업을 앞두고도 조급해지지 않았고, 자신의 선택에 자신감이 붙었다.

이씨는 요즘 내년 2월에 맞춰 싱글앨범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필라모니아'라는 팀을 구성해 피아노 이외의 다양한 악기와 협연한 음원을 만들 계획이다. '필라모니아'는 스페인어로 '열정적으로 음악을 좋아하다'는 뜻이다. 이씨의 지금 모습이다.

덧붙이는 글 | <시사인천>에 실림



태그:#이예영, #하모니카, #주디스, #필라모니아, #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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