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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는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고정 언론칼럼으로 매주 한 번 <오마이뉴스>에 게재됩니다.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면서도 한국사회의 언론민주화를 위한 민언련 활동에 품을 내주신 분들이 '시시비비' 필진으로 나섰습니다.

앞으로 김서중(성공회대 교수), 김성원(민언련 이사), 김수정(민언련 정책위원), 김언경(민언련 사무처장), 김은규(우석대 교수), 김택수(법무법인 정세 변호사), 박석운(민언련 공동대표), 신태섭(동의대 교수), 엄주웅(전 방통심의위원), 이기범(민언련 웹진기획위원), 이병남(언론학 박사), 이완기(민언련 상임대표), 이용마(MBC 기자), 정연우(세명대 교수)의 글로 여러분과 소통하겠습니다. - 기자 말

지난 19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구한 위헌정당 해산심판을 헌법재판소가 8 대 1로 받아들여 진보당을 해산시켰다. 언론들은 이 사안을 대대적으로 다뤘다. 시청취구독점유율 90% 이상인 <조선><중앙><동아> 등 메이저신문 3사와 지상파방송 3사 및 종편 등은 이를 '자유민주주의 수호' 프레임으로 보도했다. 반면, 10% 미만인 <한겨레> <경향> 등 야당지와 일부 진보 인터넷 매체들은 '민주주의 파괴' 프레임으로 보도했다.

<조선일보>12월 20일 1면 보도.
 <조선일보>12월 20일 1면 보도.
ⓒ 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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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를 필두로 전자의 매체들은 "북한을 추종하는 반국가단체인 민혁당 잔존세력이 진보당을 장악"하여 "폭력혁명을 바탕으로 한 북한식 사회주의 실현을 추구"했다는 헌재의 판단을 집중 전달하고,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지켜낸 역사적 결정"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평가를 부각시켰다. 그리고 60.7%(리얼미터) 63.8%(중앙일보) 등 여론조사들에서 나타난 헌재판결에 대한 압도적 지지를 전하며, 새정치연합과 진보진영에 대한 "종북세력과의 절연"과 "정화"를 요구했다.

<한겨레> 등 후자의 매체들은 헌재의 결정에 대해 "논리적으로 반민주적"이고 "(국내외) 기준에 미달"했으며,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를 명백하게 위협한 "백색테러"에 해당한다는 법학자와 법조인들의 분석과 진단을 상세히 소개했다. 그리고 절대다수가 여당 몫인 헌재 재판관 인선구조의 개선을 요구하고, "보수단체의 진보당원 전원에 대한 국보법 위반혐의 고발"과 "진보세력에 대한 검찰의 공안몰이" 등 퇴행적 '공안정국 조성의 조짐과 파시즘화의 위험을 경계했다.  

이번 사안에 대한 보도에서 <조선일보> 등 전자의 보수매체들은 법학자들과 법조인들이 분석하고 진단한 헌재 판결의 문제점들과 그로 인한 반민주적 퇴행의 위험에 대해 흡사 그러한 비판들이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일체 외면했다. 그리고 공허하게도 헌법재판소의 제도적 정당성과 권위로 그 판결의 정당성을 대체했다. 사안을 정확히 아는 데 필수적인 중요한 사실들을 누락하거거나 침묵하고, 헌재의 권위를 내세워 '잘못되고 위험한 헌재의 판결'을 '정당한 구국의 판결'로 둔갑시킨 것이다.

정권의 '종북' 이벤트, 나라 망치는 자승자박의 독약

이번 헌재 판결과 이에 대한 보수매체들의 보도는 정윤회 사건과 땅콩회항 사건으로 조성된 정권과 기득권층에 대한 비판여론을 잠재우고, 국면을 전환하는 데 기여했다. 이번 헌재 판결은 정권이 여론이나 대야관계에서 궁지에 몰리는 민감한 시기에, 기준미달과 부실 및 파시즘적 요소들을 내포한 채 급물살을 타며 나왔다는 점에서 정황상 '우연'이라기보다는 '기획'에 가까워 보인다. 여론의 조작과 동원의 고전적 수법 중 하나인 의사사건 연출에 해당하는 것이다.

12월 23일 <경향신문>은 박근혜 정권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만병통치약으로 '종북'을 활용해왔으며, 이번 헌재판결도 같은 맥락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2013년 6월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 때 정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했다며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전격 공개했고, 그해 8월 국정원 불법댓글 청문회로 다시 수세에 몰리자 정부는 내란음모 혐의로 이석기 의원 등을 전격 구속했으며, 같은해 11월에도 각종 인사 실패와 기초연금 공약후퇴로 곤경에 처하자 진보당 해산심판을 헌재에 청구했는 것이다. 같은 날 <한국일보>도 "'문건파문' 수세서 탈피 정국 주도…이념 공세 부채질 나선 與" 기사에서 '정윤회 문건 파동으로 야기된 수세 정국을 여당이 이념공세로 반전시키려 한다'고 보도했다.

이명박 정권 이후 지금은 90% 이상 노출되는 보수언론과 10% 미만의 진보언론 간의 큰 격차가 구조화되어, 언론의 공정성과 다양성이 매우 심각하게 훼손된 상황이다. 이런 시기 보수정권과 보수언론의 '종북' 이벤트 합창은 그들의 권력 유지와 확대를 보다 수월케 하는, 그리고 국민에게 잘 학습되어 효과가 입증된, 달콤한 유혹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유혹은 국민 절대다수에게 고통과 절망에 강요하는 반인륜적 악행의 씨앗, 민주주의와 정의를 사망에 이르게 하고 나라를 망치는 자승자박의 독약이다.

보수언론 감시, 대안언론 참여가 절실한 시기

그간 각종 여론조사에서 확인된 진보당에 대한 지지율은 최대 2% 아래쪽이다. 여론조사 결과, 진보당 해산에 대한 반대는 24%(중앙일보), 28%(리얼미터)였다. 보수언론의 일방적 여론몰이에도 불구하고, 진보당을 지지하지 않는 많은 시민들이 '진보당에 대한 평가'와 '헌재의 진보당 해산결정'을 별건으로 구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에서 희망을 찾아본다. 보수언론에 대한 감시와 비판, 진실을 알리는 진보적 대안언론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더욱 절실해지는 시기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www.ccdm.or.kr)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글쓴이는 신태섭 동의대 교수입니다.



태그:#조선일보, #통합진보당, #통진당 해산, #종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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