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시장>의 스틸컷.

영화 <국제시장>의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로 알려졌다. 아니, <해운대> 윤제균 감독이 촬영 전부터 공언했다. 투자배급사인 CJ가 지속적으로 도전해온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토종화' 시리즈 최신판 <국제시장>이 개봉 이후 10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연말 극장가의 중심에 섰다.

180억 원을 들였다는 영화의 만듦새는 평균 이상이다. 촬영, 조명, 컴퓨터그래픽, 의상 등 기술적인 면에서 충무로 1급 감독들이 제몫을 다한다. 특히 최영환 촬영감독이 공들인 카메라 움직임은 감탄을 자아낸다. 영화를 장악하는 황정민의 연기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국민조연' 오달수의 편안함은 다소 무거워질 수 있는 분위기를 상쇄시키는 이 영화의 최대 무기다.

기어이 <포레스트 검프>처럼 여기저기 날아오르는 나비가 등장하며 시작하는 이 영화의 주인공은 덕수(황정민 분). 그러나 그는 '검프'마냥 바보로 불리는 이가 아니다. 흔하고 흔한(이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우리네 아버지 세대를 대변하는 인물이라고 <국제시장>은 강조한다. (윤 감독은 주인공 부부 윤덕수, 오영자의 이름을 실제 본인 부모 이름에서 가져왔다.)

이미 알려진 대로, 덕수와 그의 친구 천달구(오달수 분)는 한국 현대사의 주요 순간을 관통한다. 그 사이 고 정주영 회장, 고 앙드레 김, 이만기, 남진 등 유명인들도 스치듯 만난다. 이 모두를 현재에서 회고하는 설정은 미국 현대사를 가로 지르는 <포레스트 검프>의 구조를 그대로 차용했다. 휴머니즘을 토대로 유머와 스펙터클을 버무리는 연출도 대동소이하다. 관건은 덕수가 어떤 사건들과 맞부닥치고, 이를 영화가 어떤 철학으로 엮어 내느냐다.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1950년 12월, 덕수는 일명 '흥남철수' 때 피란을 떠나다 아버지, 막내동생 막순이와 생이별을 한다. 잡화점 '꽃분이네'를 운영하는 고모가 사는 부산 국제시장에 정착한 덕수는 남동생의 대학 입학금을 벌기 위해 '파독' 광부가 되고, 거기서 간호사로 일하던 영자(김윤진 분)를 만나 훗날 결혼한다. 삶의 터전인 잡화점 '꽃분이네'를 지키기 위해 기술 노동자로 베트남에 갔던 덕수는 총상으로 다리를 절게 된다. 이후 1983년, 그는 동생 막순이를 찾기 위해 이산가족 찾기 방송에 출연한다.

<국제시장>은 이 네 개의 큰 사건을 회상 구조로 현재에 끼워 넣는다. (과거와의 연결 고리는 각기 다르다.) 그 사이 덕수는 한국전쟁을 겪고, 광산에 갇힌 뒤 생사를 오가고, 베트남전에선 폭탄테러를 겪는 등 사선을 넘나든다. 그리고 덕순이를 찾은 뒤 (아버지를 제외한) 가족 모두를 재결합시킨다. 많은 현대사 중에서 이 사건들을 선택했다는 건 그 자체로 전략적일 수밖에 없다.

 영화 <국제시장> 스틸컷.

영화 <국제시장>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전쟁의 상흔으로 이산가족이 된 덕수는 '(가족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국제시장>은 그랬어야만 했다고 말한다.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도 서울대에 합격한 동생에게 양보한 채 '파독 광부'로 떠나고, 선장 꿈도 접고 베트남으로 향한다. 아내는 말리지만, 결국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덕수는 떠난다. 눈물을 삼키는 영자와의 논쟁 중에도 국기를 위한 경례를 해야 하는 가장 블랙코미디적인 장면에서도 영화는 덕수가 왜 전쟁터로 가야 하는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군인만 아니면 괜찮다고 암시할 뿐이다.

그 덕에 덕수는 계속해서 대립의 구도에 놓인다. 우방인 미국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한국전쟁은 말할 것도 없고, 독일에선 (영희와 동료들이 대신) 탄광회사의 사측 관계자와 싸우고, 베트남전에선 무시무시한 '베트콩'을 피해 아이를 구한다. 그 대립의 구도에서 생존한 덕수는 그 보상으로 북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동생을 되돌려 받는다.

그때, 가족들이 모인 자리를 뒤로 하고 덕수는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 하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라며 오열한다. 이런 덕수를 상상 속 아버지가 끌어안는다. 끝끝내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고 싶던 아들은 그렇게 아버지의 자리를 성취한다. '생존'만을 강조하기 위해 짜인 사건들의 나열 구도 속에서 덕수는 우리가 인정해 줘야 할, 인정해 줄 수밖에 없는 '아버지상'으로 완성된다. 

현재와 불화하는 덕수의 퇴행... 전시는 있으나 해석은 없다

영화 속 현재의 덕수는 세상과 불화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해외여행을 떠나는 가족들에게 "우리도 여행 좋아하는데"라고 투덜대는 덕수가 대화할 상대는 꼬마 손녀이거나 평생의 동반자인 영자와 달구뿐이다. 집 밖에선 외국인 노동자를 박대하는 고등학생과 다투고, '시장통'에서는 아래 연배 상인들과 대거리를 한다.

그렇게 <국제시장>은 현실에서 고집불통인 덕수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의 과거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건 그대로, "아버지 세대를 이해하자"는 주제로 연결된다. 과거로 돌아가는 영화들은 필히 현재와의 말걸기를 시도하는 법이다. 특정 역사적 사건을 끌어들이는 건 다 그런 이유다. 그 선택은 필히 어떤 현재와 링크를 시도할 것인가 하는 의도를 내포한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덕수를 철저히 단절되고 고립된 인물로 그린다(회고를 들어 주는 유일한 사람 역시 영자라는 점은 그러한 세대 단절을 상징한다, 심지어 달구조차 멀티플렉스를 세우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렇게 영화 안에서 고립된 덕수는 산업화 시대의 일꾼으로만 기능한다. 철저하게, 그의 내면이나 의도는 단순화된다. 감정 역시 1차원적인 분노나 슬픔으로만 표출될 뿐이다.

요즘 말로 '먹고사니즘'을 대변하는 덕수는 지독히도 순수하게 1960~1970년대 경제개발주의를 상징하는 화석화된 인물이다. 아버지란 이름을 획득하기까지 덕수가 가로지르는 현대사 속에서 그는 어떤 정치적·이념적·사회적인 선택이나 의견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도 아주 철저하게, 그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국제시장>이 <포레스트 검프>와 갈리는 지점도 정확히 거기에 있다. '전시'는 있으나 '해석'은 없다. 역사적 사건을 나열하기는 하지만, 그 맥락은 거세됐다. 생존과 그를 위한 '돈벌이'가 중요했다는 알리바이 기능에 충실할 뿐이다. 덕수 주변의 인물들이 생기를 잃고 지극히 기능적인 '헌신적인 아내' '재밌는 동반자 친구' '철없는 여동생' '지고지순한 어머니' 등으로 캐릭터화된 것도 같은 이유다.

갈등하고 대립하는 인물이 없이 '덕수 vs. 사건'만 나열하는 이 영화는 잘 만든 화면에도 불구하고 역사와 사건을 단편적으로 재현하는 '서프라이즈'식 재현드라마 수준으로 전락한다. 한마디로, 재현과 서사 양측 모두에서 거대한 퇴행을 반복한다. 그 퇴행은 정치적·현실적 맥락을 거세했다는 점에서 의도된 보수화에 가깝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가 <태극기 휘날리며>를 잇는 분단 서사의 드라마와 꽤나 유사하다는 점이다. 분단의 비극을 몸소 체험한 노인 세대의 회고 차원에서 말이다. 흥남철수로 시작해서 이산가족 상봉으로 끝맺는 덕수의 회상은 "통일 대박" 시대에 (왜인지는 기어코 말하지 않지만) 혈연은 꼭 만나야 한다는 메시지로 귀결된다.

현실에서 덕수와 같은 인생사를 겪었을 세대가 통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와는 별개로 영화 속 덕수는 가족의 '통일'이란 임무를 완수한 셈이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이 분단이 주는 간극을 전쟁 체험과 형제애로 돌파하고, <국제시장>은 '먹고사니즘'과 이산가족 상봉으로 뛰어 넘으려 한다.

<국제시장>의 정치성, 그리고 대통령의 메시지

 영화 <국제시장>의 포스터.

영화 <국제시장>의 포스터. ⓒ CJ엔터테인먼트

<국제시장>을 아버지 시대(정확히는 윤제균 감독의 아버지 세대, 그러니까 70대 이상)을 위한 알리바이로 볼지, 응원가로 해석할지는 해석의 차원일 수 있다.

하지만, 역사를 선택하는 순간, 영화는 일정한 태도를 스스로 획득할 수밖에 없다. 덕수 세대의 공과, 혹은 이데올로기를 철저하게 거세한 윤제균 감독의 태도는 극진한 사부곡에 이은 알리바이 효과를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어떤 사건을 배제했느냐 하는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다. 지극히 단편적인 캐릭터와 몇 개 사건으로 한국의 현대사를 가로질러 아버지 세대를 응원하겠다는 <국제시장>의 구조와 그 안에 깃든 정서 자체가 그렇다.

더욱이, 영화 속에서 조차 소통이나 대화할 의지가 없는 인물을 마주하게 한 뒤, 영화 밖의 우리야말로 그를 이해해야 한다고 외치는 꼴은 공허하고, 어떤 면에서는 위험하다.

이산가족 상봉 장면과 같이 기계적인 눈물 뒤 찾아오는 허탈함이 바로 그 공허함의 실체다. "그 험한 일들을 우리 자식들이 아니고, 우리가 겪어서 다행이다"라는 덕수의 안도는 문자 몇 개만 바꾸면 "그 험한 일들을 겪어 보지 않으면 얼마나 알겠느냐"라는 현실에서 횡행하는 논리로 탈바꿈될 여지가 크다. 굳이 '어버이연합'을 거론하지 않고서도 말이다. 우리는 '산업화'과 '경제개발'같은 낡은 이데올로기들로 인해 여지껏 신음하고 있지 않은가.

<국제시장>은 그 개발 논리에 충실한, 세상의 '덕수들'을 위한 노인복지 공약을 내걸고 당선한 박근혜 대통령 시대에 당도했다. 순진함이 그 자체로 선이 될 순 없다. 비정치적인 것이 더 정치적인 논리로 활용되는 일을 우리는 보고 또 봤다.

조갑제씨가 <국제시장>을 응원하는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파독 노동자들에게 50주년 기념 메시지를 보내기에 이르렀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아닌 (표를 위해) '노인을 위한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국제시장>은 순진해서 더 무서운 한 편의 정치 영화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국제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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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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