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생>의 마지막회 장면들.

드라마 <미생>의 마지막회 장면들. ⓒ tvN


자기동일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철학자 헤겔은, "일반적으로 어떤 것이 시간이나 장소 등 여러 변화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것 속에 무엇인가 변하지 않고 존재하고 있을 때에 이 '무엇인가'를 가리켜 그것이 지닌 동일성 또는 자기 동일성"(<철학사전> 중에서)이라고 정의했다. 이 자기동일성이란 개념, 한국 드라마들이 꼭 챙겨야 할 덕목이다. 반드시.

최근 '올해의 드라마'로 손꼽히는 <미생> 마지막회가 팬들로 부터는 원성을 사고, 매체로부터는 혹평을 받았다. 한석율을 괴롭혔던 성대리를 응징(?)하기 위해 뜬금없는 '사랑과 전쟁'류의 촌극이 삽입됐으며, 요르단으로 간 장그래는 액션 히어로 '본그래'로 다시 태어났다.

전자가 후반부 악인에 해당하는 인물을 응징하여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려는 작가의 배려(?)라면, 장그래의 경우 견고한 현실을 뛰어넘어 성장하는 주인공을 보여주고 픈 희망이 과잉의 에피소드로 구현된 경우다. <미생>이 직장인들의 애환과 비정규직의 설움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며 호평을 받은 것을 상기하면, 후반부 몇 회의 삐걱거림이 안타까울 정도다. 

지상파에서 거절당해 케이블 채널인 tvN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뚝심 있게 만든 <미생>이 이렇다면, 다른 지상파 드라마, 특히 장르성을 적극적으로 가져온 드라마는 어느 정도겠는가. 25일 크리스마스 저녁을 달달하게 물들인 MBC <미스터백>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16부를 끊기 있게 보아온 팬들까지도 '멘붕'에 빠지게 한.

판타지적 설정을 기반으로 한 <미스터백>은 왜? 

 드라마 <미스터백>의 포스터.

드라마 <미스터백>의 포스터. ⓒ mbc


<미스터백>은 70대 노인이 30대 청년으로 돌아간다는 판타지 설정을 기반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였다. 기둥 줄거리는 운석을 삼킨 재벌 회장 최고봉(신하균 분)이 30대 중반 청년으로 돌아가 자신의 호텔 계약직 직원 은하수(장나라 분)와 로맨스에 빠지고, 불화를 겪던 아들 최대한(이준 분)과 관계를 회복하며, 50억 비리 사건의 누명까지 푼다는 내용.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빅>을 필두로 각자의 이유로 주인공이 젊어지는 이야기는 그리 특이할 것도 없다. 요는, 그 판타지의 설정을 어떻게 끌고 가며 공감대를 형성하느냐 일 것이다. 잃어버리고 살았던 것들의 가치를 회복하고, 눈 감고 살아 왔던 것들의 감동을 일깨우는 것이 이러한 텍스트의 기본 요소들이라 할 만하다.

<미스터백>도 대동소이하다. 최고봉은 젊어지기 직전 연을 맺은 은하수와 사랑에 빠지고, 이 로맨스가 극의 중심이기도 하다. 철없고 경거망동하던 최대한도 아버지의 배다른 형제로 나타난 최신형(최고봉 회장의 변신(?) 후 이름)과의 관계 속에서 가족과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딱, 그 만큼의 이야기, 그 정도의 사이즈를 유지하는 <미스터백>은 큰 욕심 없이 코미디와 판타지, 멜로를 뒤섞은 대중적인 드라마였다. 헌데, 마지막회에서 지켜왔던 룰을 스스로 뛰어 넘어 버리는 우를 범했다. 스스로 설정한 판타지의 설정까지도 훌쩍 넘어버리는 작가의 신공이랄까.

시청자들은 언제까지 '멘붕'을 겪어야 하나

 드라마 <미스터백>의 마지막회 중에서.

드라마 <미스터백>의 마지막회 중에서. ⓒ mbc


짧고 굵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약속된 시간을 소진하고 우여곡절 끝에 노인으로 돌아간 최고봉. 사랑을 확인하는 은하수에게 받은 키스 후 부지불식간에 사라지고, 이후 시간이 흘러 기억이 통째로 사라진 최신형을 최대한과 성경배(이문식 분)이 찾아낸다. 그리고 은하수와 재회하는 해피엔딩.

작가는 혹시 "이 육체는 최고봉의 것인가, 최신형의 것인가, 혹은 육체와 정신은 분리할 수 있는가"와 같은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고자 했을까. 논리는 차치하더라도, 젊은 시절로 되돌아간다는 내적 설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그야말로 신의 위치에서 '점프'를 해버리는 이러한 결말이야말로 영화 <디워>가 유행시킨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뭐가 다르단 말인가. 노인 분장도 마다 않고 연기력으로 이 판타지를 끌고 간 배우 신하균과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적인 인물에 숨과 살을 부여한 장나라 등 배우들의 연기가 아까울 지경이다.

사실 한국드라마에서 이러한 전지적 시점의 대반전(이라 부르고 '멘붕'이라 읽는) 결말들은 적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주인공이 쓴 소설"이라 우겼던 <파리의 연인>은 지금도 '레전드'라 불린다. 두 주인공을 사고사로 죽인 <지붕뚫고 하이킥>이나 권총 살인이란 비극적 결말을 내린 <발리에서 생긴 일>은 오히려 작가적인 결단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인 정도는 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미스터백>과 비슷하게 오로지 작가만이 납득한 결말을 보여주는 드라마 늘고 있다. 이러한 결말이 뭐가 문제냐고? 시청자들의 황당함은 둘째치더라도, 드라마의 완결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은 물론 작가들이 자신들이 지키고 써 내려왔던 자기 논리마저 부정하는 일을 보는 일은 짜증을 넘어 슬플 지경이다.

어떻게든 해피엔딩을 이뤄내기 위해 윤회의 설정을 끌어왔던 <아랑사또전>마냥, 논리도 현실감도 없이 결말을 내버리는 것은 길게는 두 달 넘게 드라마를 지켜 봐온 시청자들을 기만하는 행위다. (일부 무능력한) 작가들이 보여주는 이러한 일종의 자살, 자해 행위는 한국드라마를 좀 먹는데 일조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멘붕'을 겪어야 하는가.  


미스터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