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순희 시민기자는 울산 동구의 마을 도서관, 꽃바위작은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마을사람 누구나 오순도순 소박한 정을 나누는 마을 사랑방 같은 작은도서관. 그곳에서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들께 전합니다. [편집자말]
서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 꼬마 산타들이 그저 예쁩니다 서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 김순희

관련사진보기


이제 한 해가 지나고, 새해가 다가옵니다. 한 장의 달력이 주는 의미는 사람마다 각기 다르겠지만, 도서관을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많은 의미를 전해줍니다. 얼마 전, 평온한 아침 도서관 밖에서 소란스러운 아이들의 목소리가 울렸습니다. 문화관에 인형극 공연을 보러왔나 싶었는데, 그때 마침 다급한 목소리로 도서관 안으로 들어오는 분이 계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어린이집에서 왔는데요, 이번에 우리 아이들이 이웃과 함께 나누는 작은 선물을 준비해서 전해줄라고 찾아왔는데요."
"아~ 네~."
"아이들이 도서관에 와서 샘들한테 선물을 전해주고 가도 될는지요?"
"아~ 네~ 괜찮아요. 근데 아~들이 무슨 선물을요? 줘도 우리가 줘야 하는 건 아닐는지요?"
"그냥 작은 거 준비했으니 부담 갖지 마시구요, 도서관에 잠깐 들어와도 될까요?"
"네~ 그러셔요. 아침부터 미안쿠로…. 얼릉 들어오세요."

조금 있으니 3~4세쯤 되는 꼬마 아이들이 손에는 작은 선물을 하나씩 들고 도서관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손에는 뭔가 작은 봉투를 하나씩 쥐고 들어오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웃음이 났습니다. 또랑또랑한 눈으로 인사를 하고 도서관으로 들어와서는, 저희 도서관 자원봉사자 '샘'들한테까지 봉투를 전해줍니다. 봉투 안에는 음료수와 과자 몇 개가 들어 있었습니다.

"아이고~ 이쁜이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이들이 건넨 봉투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행복하게 하네요
▲ 아이들이 준 선물입니다 아이들이 건넨 봉투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행복하게 하네요
ⓒ 김순희

관련사진보기


해준 게 없는데 좋은 선물 받았다고 좋아하네요
▲ 선물 받고 좋아하는 도서관 샘 해준 게 없는데 좋은 선물 받았다고 좋아하네요
ⓒ 김순희

관련사진보기


서툰 발음의 아이들 인사를 받고 보니, 왠지 모를 뿌듯함이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 아이들의 밝은 표정을 보는 순간 '아이들에게 작은도서관은 어떻게 다가갔을까?' 하는 생각들까지 깊어졌습니다.

선물을 전해주고 돌아가는 아이들에게 저는 달리 줄 게 없어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책갈피가 생각이 나서 돌아서는 아이들에게 하나씩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알고 좋아라 하는 건지, 아니면 뭔지는 몰라도 받으니까 좋아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한참을 선물을 주고받다 아이들이 돌아갔습니다.

"참말로 별스럽네."
"그러게요. 이런 날도 다 있꼬. 아~들한테 요런 선물도 다 받고, 좋긴 하네요."
"한 해를 보내면서 아~들이 의미 있는 일을 해서 보긴 좋네요. 그쵸?"

도서관 샘들과 이런저런 아이들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도서관에 있으면서 별의 별 일들은 다 겪어보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이런 감사의 선물을 주고받는다는 것이 참으로 큰 의미를 전해줍니다. 아이들이 몸소 이웃과 함께 정을 나누는 모습이 예뻤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 많은 아이들에게 도서관이 즐거운 곳이 되어, 아이들이 도서관 선생님을 찾아와 주는 날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잠시 했습니다. 아직은 저희 도서관이 이 지역의 사랑방이 되기에 많이 부족하고, 더 많은 노력과 열정을 쏟아야 할 것이라는 걸 잘 알기에 나름 새로운 다짐을 해보았습니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하네요
▲ 누군가 고맙다고 주고 간 케이크~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하네요
ⓒ 김순희

관련사진보기


더 좋은 수업과 좋은 책 많이 읽게 해달라는 의미겠죠
▲ 도서관 수업 듣는 어머니의 정성이 가득합니다 더 좋은 수업과 좋은 책 많이 읽게 해달라는 의미겠죠
ⓒ 김순희

관련사진보기


"샘~, 샘 자리에 없을 때, 어떤 책 빌리러 오는 분이 이걸 주고 갔어요."
"아이고~ 이게 뭡니꺼? 케이크 아인교?"
"네~ 항상 책 빌리러 오는 분인데, 그동안 고마웠다고 이걸 주고 갔네요."

꼬마 아이들이 다녀간 다음 날, 책상 한쪽에 케이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도서관 이용자 한 분이 일 년 동안 고맙게 책을 잘 빌려보았다면서 주고 간 모양입니다. 당연하게 한 일을 한 것뿐인데 이런 고마움을 안고 계시다니, 새삼 저희가 숙연해졌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 하는 것이 항상 씁쓸한 뭔가를 남겨주었는데, 그래도 올해는 제대로 열심히 잘 보낸 것 같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그날은 도서관 마치는 시간에도 한 이용자 분이 호일에 뭔가가 싸인 걸 내놓으셨습니다. 독서수업 마지막 날이라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 샘들이랑 나눠 먹으려고 가지고 오셨다는데, 이미 수업은 끝나고 아이들이 돌아간 상태여서 도서관 샘들과 함께 하나씩 나눠먹었습니다. 초콜릿이 아직도 입 안에서 달달하게 남아 맴돕니다. 초콜릿을 손수 만들어서 도서관 수업 받는 아이들에게 나눠주려고 가지고 온 이용자 분은 거의 매일 책 보러, 아니면 책 빌리러 오는 분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연이은 사람들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도서관을 통해 서로가 인연이 되어 만나고, 서로 알아가면서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뭔가를 나누며 산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이었는지 예전에는 참 몰랐습니다. 그런 상황은 많았지만 제가 미처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도서관에서 보내는 시간을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에, 이제 알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독 올해는 잔잔한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물론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 우리에겐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기에 그다지 힘들지 않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으며 지냅니다. 그래서 새해에는 우리 도서관이 더 많은 아이들에게, 그리고 사람들에게 정을 나누는 행복한 도서관이 되었으면 하는 꿈을 꾸어 봅니다.


태그:#도서관, #꼬마, #선물, #고마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