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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고개 성당에서 열린 성탄절 미사에 참석한 법륜 스님
▲ 성탄절 쑥고개 성당에서 열린 성탄절 미사에 참석한 법륜 스님
ⓒ 이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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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성탄절 아침, 쑥고개 성당(서울시 관악구 소재)에서는 신부와 스님이 함께 미사에 참석해 예수님 탄생을 축하하는 뜻깊은 자리가 있었다. 이날 오전 11시 법륜 스님은 쑥고개 성당을 방문해 김홍진 신부가 인도하는 미사에 참석했다. 스님은 성탄절 축하 인사와 더불어 올 해 세월호 참사가 남기고 간 상처를 보듬어 안으며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함께 나눠주었다.

천주교-불교-천도교 함께 뜻깊은 "메리 크리스마스"

쑥고개 성당의 김홍진 신부는 10여 년 전부터 법륜 스님과 함께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많은 활동을 해오고 있다. 법륜 스님은 매년 이곳 성당의 성탄절 미사에 참석했고, 김홍진 신부는 매년 초파일이 되면 정토회를 방문해 기념 법문을 해오고 있다. 두 종교인의 만남을 보면 종교 간의 화합이 무엇인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느낄 수 있다. 이날 미사에는 천도교에서 박남수 교령도 함께해 3개의 이웃 종교가 함께한 풍성한 시간이 됐다.

성탄절 미사가 시작되자 성가대의 장엄한 노래 속에서 흰 미사보를 쓴 많은 신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찬송가를 부르는 등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특히 이날은 성탄절을 맞이해 24명의 신자들이 세례를 받는 날이었다. 법륜 스님은 큰 박수로 세례자들을 축하했다.

세례식에 앞서 김홍진 신부는 "오늘 이웃 종교에서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오셨다"면서 법륜 스님과 정토회 신도들, 교령님과 천도교 관계자들을 소개했다. 소개를 받고 연단에 오른 법륜 스님은 올 한해 우리들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한 세월호 참사를 상기하면서 예수님의 삶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이야기했다. 

스님은 "세월호 사건은 유가족 뿐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를 눈물짓게 하고, 가슴 아프게 했다"면서 "세월호 사건은 성장과 돈벌이에만 치중해 '말씀'을 섬기는 게 아니라 '돈'을 섬기는 삶의 결과가 가져온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또 "정말 사람은 빵으로만 살 수 없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물질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 해였다"며 한해를 마무리하는 소회를 나눴다.

더불어 "그런 와중에 교황님께서 이 땅을 방문해주시고, 많은 위로와 화합의 길을 열어주셔서 치유가 되긴 했지만 정치 지도자들이 그 뜻을 받들어 마무리 하지 못하고 분열의 양상은 계속됐다"면서 좌절과 절망의 시대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의미를 이야기하며 예수님의 삶을 통해 우리가 어떤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지 살펴보았다. 아래는 법륜 스님이 천주교인들에게 전한 성탄 메시지다.

법륜 스님과 박남수 교령이 세례자들을 박수로 축하해 주고 있다
▲ 성탄절 법륜 스님과 박남수 교령이 세례자들을 박수로 축하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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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스님이 전하는 성탄 메시지

"이런 좌절과 절망의 시대에 예수님의 탄생을 돌아보면 예수님이 탄생했던 그 시대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보다 훨씬 더 암울했던 시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나라가 로마의 지배를 당하고, 거기다 나라의 지도자들이 외세의 주구 노릇을 하는 상황 속에서 태어나시자마자 피난을 가셔야 했습니다.

이런 가장 춥고 어두운 시대에 그분께서 오셨고, 그 어려운 시기에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럼에도 그 때의 백성들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결국은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절망의 끝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그 절망의 끝이 부활이라는 새로운 희망으로 나타난 것을 우리는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또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주님을 받아들인다는 그 한 가지 이유로 사형을 당한 우리의 선조들을 생각해 봅니다. '정말 하나님이 계시나?', '이 땅에 정말 희망이 있나?' 하는 이런 절망 속에서 우리의 신앙이 흔들릴 때도 그분들은 오직 믿음으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셨습니다. 그런데 하루도 아니고 10년도 아니고 100년이 훨씬 지나서 올해가 되어서야 그분들의 믿음의 결과가 시복으로 나타난 것을 보면, 오늘 우리가 어려운 시기에 좌절하고 절망할 것이 아니라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시대 새로운 나라가 더 가까이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표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나 싶습니다.

성탄절 미사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는 법륜 스님
▲ 법륜 스님 성탄절 미사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는 법륜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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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까이 왔다'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의 믿음이 가장 흔들릴 때, 세상에 대한 절망이 가장 심할 때 어쩌면 새로운 시대가 가까이 와 있다 할 수 있습니다. 남북 통일이 이제 멀어진 것 같은 이런 시대에 통일은 곧 가까이 와 있고,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그런 시기가 진정한 평화가 도래할 시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고 그런 믿음을 가지고 우리가 흔들림 없이 이 땅에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평화와 통일을 만들어 나갈 때 가능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어쩌면 살아 생전에 통일을 보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선배들은 100년이 지난 뒤에야 그런 새로운 희망을 볼 수 있었지만, 우리는 더 가까이에서 살아 생전에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데서 우리 신앙인들은 각각의 신앙이 조금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함께 믿음을 가지고 새로운 시대를 꿈꿔보는 그런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면 우리가 아무리 어렵더라도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나 싶어요. 실패를 딛고 성공을 향해 나아가듯이 우리의 이런 좌절이 좌절로서 끝날 게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만드는 씨앗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주님이 가셨던 길을 우리가 함께 손잡고 따라갔으면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에도 부활의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보았으면 합니다.

오늘 성탄의 기쁨을 우리만이 아니라 굴뚝 위에서 고공농성하는 쌍용자동차 사람들, 광화문에서 아직도 농성하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할머니들을 비롯하여 이 땅에 아픈 사람들과도 조금이나마 함께 나눴으면 합니다. 특히 북녘땅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고통받는 동포들에게도 주님의 은총이 함께하기를 기원하며 다시 한번 여러분께 성탄을 축하드립니다."

우리 자리 아닌 곳에도 눈길을...

법륜 스님의 성탄 축하 메시지에 큰 박수를 보내주고 있는 쑥고개 성당 천주교인들.
▲ 성탄절 법륜 스님의 성탄 축하 메시지에 큰 박수를 보내주고 있는 쑥고개 성당 천주교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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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자리한 천주교인 모두가 박수로 스님의 이야기에 공감을 표했다. 세월호의 아픔을 이야기할 땐 가슴이 먹먹해져 왔지만, 마지막에 우리보다 더 어려운 조건에서 살아갔던 예수의 삶을 이야기할 땐 모두 새로운 희망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성가대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김홍진 신부의 인도에 따라 거룩하고 경건한 의식이 계속 이어졌다. 종교는 서로 다르지만 이렇게 함께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따뜻해졌다. 김홍진 신부는 "스님께서 이렇게 매년 오셔서 너무 반갑다"면서 "스님 덕분에 성탄절 강론을 따로 준비하지 않는다" 고 이야기해 모두 크게 웃기도 했다. 옆에서 함께 미사에 참석한 수녀님은 자리를 마무리하며 이렇게 기도를 해줬다.

"그동안 저희들의 삶의 자리에만 눈을 두고 있었는데, 이런 자리를 통해서 더욱더 시선을 확장하게 됩니다. 오늘 이런 보람찬 시간들을 통해서 저희 삶이 더욱 활기를 얻을 수 있도록 해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수녀님의 감사 기도까지 함께해 더욱 풍성한 시간이 됐다. 내년 부처님오신날에는 정토회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함께 사진도 찍고 악수도 나눈 후 오늘 모임이 모두 끝났다.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갈등하는 한국 사회에 종교인들의 화합은 좋은 모델이 돼주는 것 같다. 부처님과 예수님이 동시대에 살았다면 이렇게 서로 만나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성탄절을 맞이해 새해에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대화하는 한국 사회가 되길 기도해본다.

미사를 모두 마치고 법륜 스님, 김홍진 신부, 박남수 교령은 십자가 앞에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 성탄절 미사를 모두 마치고 법륜 스님, 김홍진 신부, 박남수 교령은 십자가 앞에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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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성탄절, #법륜 스님, #성당, #예수님, #정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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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자. 오연호의 기자 만들기 42기 수료. 마음공부, 환경실천, 빈곤퇴치, 한반도 평화에 관심이 많아요. 푸른별 지구의 희망을 만들어 가는 기자를 꿈꿉니다. 현장에서 발로 뛰며 생생한 소식 전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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