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 위에서의 신경전은 어디까지가 적정선일까. 지난 24일 원주 종합체육관에서 벌어진 프로농구 원주 동부와 부산 KT의 경기에서, 윤호영(30, 동부)과 조성민(31, KT)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 간의 날 선 신경전이 뜨거운 화제를 모았다.

윤호영과 조성민은 KT가 54-47로 앞서고 있던 4쿼터 종료 8분경 경기가 잠시 중단된 틈을 타 얼굴을 맞대고 팽팽한 기 싸움을 벌였다. 앞선 상황에서 두 선수 모두 볼을 가지지 않고 코트를 넘어가던 중에 팔이 엉키며 몸싸움을 벌인 바 있다. 잠시 언쟁을 주고받던 두 사람은 윤호영이 성난 기색으로 조성민의 코앞까지 다가가 이마를 들이대며 도발하는 동작을 취하면서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갔다.

선수들 간 기 싸움, 왜?

다행히 심판과 다른 선수들이 재빨리 다가와 말렸고 양 팀 벤치에서도 선수들을 자제시키면서 상황이 더 악화되지는 않았다. 두 선수는 나란히 더블 파울 조치를 받았지만, 이후 재개된 경기에서도 더 이상의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다. 경기는 KT의 69-91 승리로 끝났다.

경기가 마무리된 이후에도 윤호영과 조성민의 신경전은 팬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았다. 경기 자체보다 두 선수의 이름이 한때 포털사이트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고 두 선수의 신경전 장면을 담은 영상이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는 등 농구 관련 이슈로는 모처럼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한정된 인맥과 선·후배 관계로 얽혀 있는 한국 농구계에서 국내 선수들 간의 이 정도 신경전은 흔한 경우는 아니다. 조성민과 윤호영은 프로농구 2년 선·후배 간이자 실제 나이는 고작 1살 차이다. 국가대표팀에서 여러 차례 한솥밥을 먹은 인연도 있다. 알만큼 알만한 사이인 두 사람이 비록 코트 위에서 적으로 만났다고는 해도,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감정이 상했는지 의아해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두 선수 모두 경기가 끝난 후에는 당시 상황에 대해 나란히 말을 아끼고 있다.

오히려 침묵하고 있는 두 선수보다 일부 팬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KT와 동부의 경기가 끝난 이후, 두 선수의 신경전을 둘러싸고 일부 과격한 양 팀 팬들의 갈등이 대리전 형식의 2라운드가 된 모양새다. 양 구단의 홈페이지와 각종 포털사이트 댓글난에서 한쪽의 입장에서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거나 옹호하는 설전이 곳곳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특정 선수에 대해 '인성'을 비하하거나 도를 넘어선 인신공격까지 벌어지는 등 오히려 두 선수의 신경전보다 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상황이 난무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이야기했을 때 두 선수의 감정싸움은 물론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었다.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경기가 끝난 후에라도 규정에 따라 징계를 받으면 된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야할 것은 격렬한 농구 경기에서 신경전은 일상다반사이고,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농구라는 스포츠에서 어쩔 수 없는 한 부분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신경전 상황에서까지 선·후배 개념이라든지 일상적인 매너의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촌스러운 발상이다. 물론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은 있다. 2013년 김동욱(오리온스)은 3년 선배 김승현(은퇴, 전 삼성)과 기 싸움을 펼치다가 반말로 욕설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김동욱은 경기가 끝난 후 김승현에게 사과했다.

실제는 그보다 더한 상황들도 있다. 정재근(전 KCC)과 김성철(전 전자랜드)은 경기중 상대 선수의 턱을 팔꿈치로 고의 가격해 징계를 받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애런 헤인즈(SK)가 무방부 상태의 김민구(KCC)의 명치를 가격해 엄청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지금보다 코트 위에 사각지대가 많고 경기 문화도 거칠었던 1980~1990년대에는 툭하면 벌어지는 경기 중 신경전이 주먹 다짐같은 불상사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지나친 감정 싸움이나 신체 접촉까지는 이어지면 안 되겠지만, 그에 비하면 조성민과 윤호영의 기 싸움은 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

은퇴선수가 떠올리는 기 싸움의 추억

미국 TNT 방송에는 은퇴한 NBA 스타들을 게스트로 초청해 이야기를 나누는 '오픈 코트'(Opne Court)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은퇴 선수들이 현역 시절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부분이 바로 상대 선수와의 코트 위 기 싸움에 대한 추억이다.

당시 패널로 출연한 스티브 커(전 시카고)는 NBA 파이널에서 맞섰던 존 스탁턴(전 유타)를 추억하며 "그는 정말로 좋은 사람이고 나 역시 그를 존경하지만, 코트 위에서의 스탁턴은 정말로 더러운 자식(Dirty bastard)이었다"라고 폭로하며 출연자들을 박장대소하게 만들기도 했다. NBA에서 모범적인 선수 생활로 유명했지만, 실상 교묘한 파울과 승부 근성으로도 악명높은 스탁턴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케니 스미스는 휴스턴 시절 팀 동료였던 버논 맥스웰과 마이클 조던의 일화를 거론하며 "버논은 코트 안과 밖의 이미지가 전혀 다른 선수였다. 조던을 상대로도 물러서지 않고 끈질기게 괴롭혔고 싸움도 많이 했는데, 어느 날은 자기 아들에게 조던의 유니폼을 입히고 나타나서 사인을 부탁하니까 조던이 기막혀하더라"며 웃음을 남기기도 했다.

1990년대 난투극의 주연으로 서로 주먹 다짐까지 벌였던 찰스 바클리와 샤킬 오닐이 당시 상황이 어느 정도 '의도된 연출'이었음을 고백한 것도 흥미롭다. 이들이 훗날 은퇴후 TNT를 대표하는 '절친 만담 듀오'로 자리 잡으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코트 위에서의 감정 싸움과 승부욕을 코트 밖의 관계로 까지 끌고 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NBA의 전설적인 슈터였던 레지 밀러의 이야기는 경기 중 '신경전'의 정의와 범위에 대하여 생각해볼 만한 여운을 남긴다.

"NBA에서 나와 상대했던 모든 선수를 존경하지만, 나를 비롯해 선수라면 경기 중 한 번쯤 팔꿈치를 쓴다거나 발을 걸고 트래쉬토크를 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승리를 위해서는 무슨 짓도 할 수 있는게 프로지만, 경기가 끝난 후에는 서로 웃으면서 격려해줄 수도 있어야 한다."

조성민과 윤호영이 아직 당시의 감정을 푸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다음에서 코트 위에서 만날 때는 서로 웃으며 화해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선·후배를 떠나 이들은 앞으로도 계속 같은 무대에서 활약할 동업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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