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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고향으로부터 부고를 받았습니다.

부고
 부고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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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께서 오늘 돌아가셨습니다.
별세:18(목) 발인:20(토) 김천의료원장례식장.-수겸-" 

부고 속 할머니는 저의 큰이모님입니다. 어머님보다 8살 위인 이모님은 어머님께서 자신과 같은 마을로 시집오도록 다리를 놓았고, 그래서 어머님과 이모님은 일평생 한 마을에서 동행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 기자 말 
  
​이모님의 작은 주검을 양지바른 산에 묻고 왔습니다.

봉분작업을 막 마친 이모님의 산소
 봉분작업을 막 마친 이모님의 산소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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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님은 백수(白壽, 99세)를 불과 18일을 남기고 세상을 떠셨습니다. 새파란 젊음에 남편을 먼저 보내고 60년을 홀로 사시다 마침내 해후의 길을 재촉하신 겁니다. 남편 복을 누리지는 못했지만 아들 하나 딸 하나에 많은 손자, 손부, 증손자, 증손녀들을 두어 후손이 번창했고 가족간에도 다툼이나 반목 없는 화목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12월 7일, 도시로 나간 손녀와 손부들이 함께 찾아와 늦은 김장을 했습니다. 이모님을 중심으로 무엇이든 함께하고 함께 나누는 화목한 삶을 살았습니다.
 12월 7일, 도시로 나간 손녀와 손부들이 함께 찾아와 늦은 김장을 했습니다. 이모님을 중심으로 무엇이든 함께하고 함께 나누는 화목한 삶을 살았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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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기운에 손자들이 지어온 약을 드신 적은 있지만 백수에 이르기까지 병원 출입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발인날, 아침 일찍 진눈깨비가 내렸습니다. 그렇다고 이모님의 저승길을 지체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비로 변한 가랑비가 눈물인양 꽃상여를 적셨습니다. 마을 초입에서 발인제축을 읽었습니다.

상여가 마을을 떠나기 전의 발인제
 상여가 마을을 떠나기 전의 발인제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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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를 넘긴 아들은 불효자임을 되뇌며 자책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60여 년간 시어머님을 모신 자부는 슬픔을 가누지 못한 채 서럽게 울었습니다. 객지에 나가 있는 고향 사람들이 모여들어 상두꾼을 맡았습니다.

이 마을에서는 흉사에 도회지로 나간 사람들이 모두 돌아와 상두꾼을 맡습니다.
 이 마을에서는 흉사에 도회지로 나간 사람들이 모두 돌아와 상두꾼을 맡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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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앞에서 요령 소리가 울렸습니다. 요령잡이가 요령을 흔들면서 앞소리를 메겼습니다. 

"북망산천이 머다더니 내 집앞이 북망일세" 

뒤이어 상여꾼들의 합창으로 받았습니다. 

"너허 너허 너화너 너화 넘자 너화 너" 

세상에서 가장 아픈 송별가, 상여소리가 가슴을 베며 지나갔습니다.

북망산 가는 길, 고갯마루에서 잠시 상여를 내려놓았습니다.
 북망산 가는 길, 고갯마루에서 잠시 상여를 내려놓았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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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는 힘센 굴삭기가 거반 작업을 끝내두었습니다. 구덩이 바닥에 고운 황토를 뿌리고 창호지를 깔았습니다. 지관(地官)의 지휘에 따라 주검을 해좌사향(亥坐巳向)으로 뉘였습니다.

관을 빼고 오직 주검만을 묻었습니다.
 관을 빼고 오직 주검만을 묻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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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壽衣) 한 벌 외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고 떠나는 참으로 가벼운 여행이었습니다.

봉분을 다지는 상여꾼들
 봉분을 다지는 상여꾼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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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분이 만들어졌을 때 햇살이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잔디를 심는 마무리작업
 잔디를 심는 마무리작업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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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사진속 얼굴의 빗방울이 말랐습니다.

백수를 18일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이모님
 백수를 18일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이모님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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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뒤에서 미소 지었습니다.

산에서도 문상 온 조문객을 받습니다.
 산에서도 문상 온 조문객을 받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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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 걱정은 내려놓아라." 

상두꾼들이 상여에 불을 놓았습니다.

장지에 관을 내려놓은 상여는 불을 놓아 태웁니다.
 장지에 관을 내려놓은 상여는 불을 놓아 태웁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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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는 모든 것은 생성과 소멸에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다만 사람의 경우 생하고 멸하는 사이의 시간에 자신의 자유의지를 개입시킬 수 있을 뿐입니다. 관건은 생멸의 사이 시간을 어떻게 사느냐 입니다. 이모님은 제게 그것에 주목하라는 숙제를 남기셨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은 느티나무 가지처럼 얽힌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가르침을 남깁니다.
 누군가의 죽음은 느티나무 가지처럼 얽힌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가르침을 남깁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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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장례, #희곡, #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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