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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흘리고 있는 대전형무소 산내 희생자 유족들
 눈물흘리고 있는 대전형무소 산내 희생자 유족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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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민간인 희생자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면서 60여 년 전 '죗값'을 적용, 배상액을 감액한 고등법원 판결을 그대로 인정했다. 사건 변호인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법원은 24일 1950년 6·25 전쟁을 전후해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군인과 경찰에 의해 희생당한 김종현 외 195명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심리불속행 기각(심리를 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 판결 했다. 하지만 이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지적을 일축한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1950년 6월 28일경부터 다음 해까지 수 천여 명의 보도연맹원과 대전형무소 재소자 등이 헌병대와 경찰 등에 의해 법적 절차 없이 대전 산내 골령골(대전 동구 낭월동 일원)에서 집단 살해됐다. 정부기관인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를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공식사과와 위령사업 지원, 평화 인권교육 강화 등을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서울고등법원은 희생자 유가족들의 청구한 손해배상 판결을 통해 '희생자 수감 경위와 범법행위 정도'를 감안해 원심(1심)과 달리 위자료를 감액 판결했다. 1심에서는 희생자 8천만 원, 배우자 4천만 원, 자녀 각 800만 원을 산정했다.

고등법원은 1심과는 달리 12명의 희생자에 대해 희생자 6천만 원(배우자 3500만 원, 부모자녀 각 700만 원)으로 감액했다. 3명에 대해서는 6천만 원(배우자 3천만 원, 부모자녀 각 600만 원), 2명에 대해서는 5천만 원(배우자 2500만 원, 부모자녀 각 500만 원)을 위자료로 정했다. 희생자는 물론 희생자 유가족의 위자료까지 깎은 것이다.

위자료 감액의 근거는 '희생자 수감 경위와 범법행위 정도다. 예를 들면 희생자 이아무개 씨의 경우 전쟁 이전인 1948년 태안에서 경찰에 체포돼 '폭발물취제벌칙 위반' 등 혐의로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았다. 유족들은 "해방직후인 1946년 대전에 있는 친일파의 집에 폭탄을 던진 사건"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씨는 재판 후 대전형무소에서 복역하다 전쟁발발 직후 산내에서 군경에 의해 불법으로 살해됐다.

결국 법원이 64년 전 친일파를 응징한 죗값을 물어 희생자와 그 유가족의 위자료를 감액한 것이다.

"어떻게 유가족 위자료까지 감액할 수 있냐"

대전 산내 희생자 유가족들의 소송을 맡고 있는 변호인(법무법인 정평의 심재환, 하주희, 남성욱 변호사)들은 상소이유서를 통해 "국가가 적법한 사유와 절차 없이 살해한 것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 생명권, 적법한 절차에 따라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희생자들의 '수감 경위'와 '범법행위 정도'에 따라 위자료를 차등 산정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의 가치에 차등을 두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 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심리조차 하지 않고 이날 사건을 기각했다. 

남성욱 변호사는 "국가가 이유 없이 끌고 가 살해한 후 범법행위 정도를 감안해 위자료를 감액한 것은 법치국가 원리의 근본을 흔드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백번 양보해 희생자 위자료를 감액을 인정한다하더라도 어떻게 유가족들의 위자료까지 희생자의 범범행위 정도를 근거로 감액할 수 있냐"며 "대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다.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김종현(78) 회장은 "억울하게 희생된 아버지의 64년 전 죗값을 물어 유가족의 위자료까지 감액한 것은 또 다른 연좌제 적용과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했다.  


태그:#민간인 희생, #대전산내사건, #범범행위, #위자료, #감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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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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