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시장> 한 장면

영화 <국제시장> 한 장면 ⓒ (주)JK필름


이 영화는 슬프다. 덕수(황정민 분)가 잃어버린 여동생 막순이(신린아 분)를 TV방송을 통해 찾는 순간 속절없이 흐르는 눈물을 제어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흐르는 눈물과는 별개로 이 영화는 잘 만든 영화는 아니다. <국제시장>은 부족한 점이 많지만 여백이 없어서 해석의 여지를 주지 않으며, 개인의 희생을 보여주지만 희생의 이면을 보여주지는 않고, 슬픔을 보여주지만 다분히 기술적이다.

황정민 연기 돋보이지만, 연출은 지나치게 신파적
뛰어난 연기자는 영화의 부족함을 메우고도 남는다. 황정민을 포함한 주조연들의 연기는 뚝뚝 끊어지는 영화 속 전개를 자연스럽게 잇는 데 도움을 준다. 특히,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다"고 말하던 황정민의 숟가락은 신파만 열첩을 차린 반상에서 빛을 낸다.

황정민은 아버지 없는 집안의 장남을 연기하며 한 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연기는 과하지도 않고 부족함도 없다. 투박한 부산사나이의 모습과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그리고 한 여자를 사랑하는 순박한 모습을 일상적으로 연기한다.

더할 필요도 없고 덜 필요도 없는 황정민의 연기가 120% 발휘되며 영화의 부족한 점을 메운다. 이산가족으로 살며 파독광부와 월남전 참전의 경험을 가진, 대한민국 어딘가에 살고 있을 어느 한 가장의 모습은 <국제시장> 속 덕수의 모습일 것만 같다.

그러나 황정민이 자신의 몫 이상을 채우는 동안 감독은 잦은 실수를 연발한다. <국제시장>은 하나의 줄거리를 가진 영화라기보다는 분절된 이야기를 하나로 이은 모습이다. 이산가족, 파독광부의 삶과 베트남 참전 그리고 국제시장에서의 삶을 다룰 때 감독은 '자, 여기가 네가 울어야 할 타이밍이야'라고 강요한다. 이때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화면은 한없이 느려진다.

흥남부두에서 여동생 막순이를 잃고 아버지(정진영 분)와 생이별을 하게 되는 오프닝은 관객을 몰입하게 만들지만, 그러한 방식이 꾸준히 반복되며 영화 세 편 같은 한 편을 보는 환각효과를 일으킨다. 각 에피소드마다의 울어야 할 타이밍에서 관객들은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는 없겠지만, 과도하게 신파를 강요하는 연출은 2014년의 영화가 맞는지 의심케 한다. 그래서 <국제시장>은 일부 평론가들에게 혹평을 받았다.

"더 이상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시니어들의 문제가 다루어져야 마땅한 시점에 아버지 세대의 희생을 강조하는 <국제시장>의 등장은 반동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허지웅 영화평론가

"영화가 밀고 있는 건 단 하나. 덕수 나이 또래의 노인 세대가 자식 세대를 위해 개고생하며 일했다는 것이죠. 그게 전부입니다. 덕수가 말려든 여러 역사적 사건들이 정말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도 없는 거 같고, 있어도 의견을 내기 싫은 모양입니다." -듀나 영화평론가

기성세대의 희생과 그것을 강요한 거대한 사회

 영화 <국제시장> 한 장면

영화 <국제시장> 한 장면 ⓒ (주)JK필름


<국제시장>은 분명 여러 평론가들의 의견처럼 치명적인 결함을 지녔다. 사건의 나열에만 관심을 가진 채 그에 대한 설명에 있어서는 불친절하다. 하지만 영화가 지니는 단점으로 장점을 과도하게 덮을 필요는 없다. <국제시장>은 분명 기성세대를 위한 힐링영화의 역할을 위해 만들어진 듯하다. 그리고 지금의 기성세대 중에는 존경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무책임한 어른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그들의 노고와 희생에 박수를 보내는 것은 후세대가 담당할 의무 중의 하나이며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현실의 일부 기성세대들이 지니는 무책임성과는 별개로 인정할 것들이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국제시장>이 지니는 유일한 장점은 그것뿐이다.

영화는 개인적 희생의 이면을 다루지 않는다. 무엇이 기성세대를 독일 탄광으로 내몰았으며, 베트남 전쟁터로 가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개인의 희생에 초점을 맞춘다하더라도 풍자적 유머를 더할 수 있지 않았을까. 감독은 덕수가 우연히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남진복 분)과 디자이너 앙드레 김(박선웅 분) 그리고 가수 남진(정윤호 분)을 만난다는 유머러스한 설정을 더하지만, 덕수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희생적인 삶의 큰 이유에 대해서는 일절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덕수의 여동생 끝순이(김슬기 분)는 집을 팔아서라도 시집갈 돈을 마련해달라며, '숟가락 하나 얻고 결혼한 덕수는 지가 빙신이라 못 챙겨 먹은 거'라고 오빠의 희생을 유체이탈화법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건 덕수가 대학교 합격과 선장의 꿈을 포기하며 했던 선택들이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베트남전에 참전하려는 덕수와 이제는 개인의 행복을 찾으라는 아내 영자(김윤진 분)가 공원에서 싸우는 사이 애국가가 울려 퍼진다. 감독은 유일하게 그 장면에서 개인의 행복보다 더, 가족의 행복보다 더 큰 이유가 있음을 아주 미세하게 말할 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석준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국제시장 황정민 김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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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집 「안녕의 안녕」 작가. 대중문화에 대한 글을 씁니다. https://brunch.co.kr/@byul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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