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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가기 전 꼭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배달되는 지역신문에 지난 두세 달 동안 빠지지 않고 등장한 기사가 있었다. 인천 동구청이 민간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는 사회복지시설 6개를 직영으로 바꾸고, 그중 하나는 아예 폐쇄한다는 것이었다. 구청은 '재정여건이 열악한 상황에서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댔다.

사회복지시설에 대해 잘 모르는 나는 이 문제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구청이 위탁 해지도 아니고 아예 폐쇄하려는 기관이 '화수청소년문화의집'(아래 청소년문화의집)이라는 걸 알고 나자 머리가 복잡해졌다. 내겐 일종의 채무감이 있기 때문이다.

1989년 3월, 진해여중 수학여행 교통사고가 일어났던 순간 나는 진해에 살고 있었고 언니는 사고가 난 차량 뒤차에 타고 있었다. 우리가 인천으로 이사 오고 난 뒤, 1999년 인현동 호프집에서 화재사건이 발생했다. 인현동은 내가 중학교를 다닌 곳이다. 그리고 올해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

마흔이 다 된 지금에야 나는 조금씩 깨닫는다. 내 주위에서 벌어진 사건들이 결코 나와 무관하지 않았다는 걸. 그리고 그때, 바로 그 순간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거나 또는 그 무엇도 하지 않았다는 걸. (나를 비롯한) 어른들은 사고 수습에만 급급할 뿐, 피해자이자 당사자인 청소년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듣지 않았다. 그들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그들이 하지 못한 이야기가 점점 큰 사건을 통해 드러나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해졌다.

우선 청소년문화의집을 폐쇄하려는 이유가 궁금했다. 여러 기사를 통해서 알 수 있었던 것은 동구청이 위탁기간이 2년이나 남았는데도 계약을 파기했다는 것, 청소년문화의집이 방만하게 운영된다는 주장은 근거 없는 구청 측의 일방적인 주장이라는 것, 동구청은 이용주민이나 운영주체와 한 마디 의견수렴도 하지 않았다는 것, 동구청이 '많은 예산이 투입돼 부담스럽다'는 청소년문화의집 1년 운영비는 1억 2000여만 원에 불과하다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구청장이 바뀐 이후 내린 결정이라는 것이다.

이제 청소년문화의집이 문을 닫기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일주일. 나는 과연 이 사태를 지켜보는 청소년들의 심경은 어떤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청소년문화의집 관계자를 통해 그곳을 이용하는 김범성(17), 방경연(14), 박성국(17) 군을 소개받았다. 이들은 모두 청소년문화의집이 있는 화수동에 살고 있다. 지난 18일 저녁, 화수청소년문화의집에서 그들을 만났다.

박성국(왼쪽) 군과 김범성 군. 함께 인터뷰한 방경연 양은 일찍 자리를 떠 사진을 찍지 못했다.
 박성국(왼쪽) 군과 김범성 군. 함께 인터뷰한 방경연 양은 일찍 자리를 떠 사진을 찍지 못했다.
ⓒ 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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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에 건의해 신호등 설치

- 화수청소년문화의집은 언제부터 이용했나요?
김범성 : 초등학생 때부터 이용했으니 10년 됐어요. 어머니 소개로 다니기 시작했죠. 어렸을 땐 체험활동과 답사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정도였어요.

박성국 : 중학생 때부터 이용했어요. 봉사활동처럼 뭔가 하는 걸 좋아해요. 범성이가 소개해서 이곳을 알게 됐어요.

방경연 : 올해 2월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친구들이랑 춤 공연을 하기로 했었어요. 연습실을 찾다가 처음 이곳에 와 봤어요. 그때 청소년기자단 모집한다는 홍보물을 보고 신청했고, 이후로 토요일마다 이곳에 와요.

- 이곳에서 어떤 활동을 하나요?
방경연 : 청소년기자단 활동을 했어요. 웹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이메일로 보내고, 행사가 열리면 직접 참가도 하고요. 여름에 평화통일 축제에서 팔찌만들기, 레고로 한반도기 만들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게 기억에 남아요.

박성국 : 저는 청소년운영위원회(청운위)에서 활동한 게 가장 좋았어요. 청운위는 청소년기관마다 하나씩 있어야 하는 단체예요. 우리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을 (청소년문화의집에) 건의하거나, 동네 부족한 점을 개선하기도 해요. 원래 청소년문화의집 바로 앞 버스정류장 이름이 오래된 약국 이름이었어요. 작년에 '화수청소년문화의집'으로 바꿔달라고 동구청에 요구했죠. 횡단보도와 신호등 설치도 건의했는데 구청에서 모두 들어주었어요. 기분이 정말 좋았죠.

김범성 : 중학교 때는 이곳에서 여는 봉사활동이나 직업체험을 했어요. 중3 때부터 청운위 활동을 시작했죠. 청운위 단장, 청소년 관련 정책을 낸 시의원, 타 청소년기관 선생님 등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하고 기사도 썼어요. 지금은 청운위기자단 단장을 맡고 있습니다.

폐쇄 소식에 성명서 발표.. 하지만 구청은 묵묵부답

- 청소년문화의집이 폐쇄된다는 소식을 어떻게 듣게 되었나요?
김범성 : 9월 말 인터넷에서 기사를 봤어요. 잘 이용하고 있는데...

- 기분이 어땠나요?
김범성 : (이용하는 청소년들은) 직영하는 것에도 반대했어요. 청소년이나 노인기관은 전문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운영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공무원들은 3~4년마다 자리가 바뀐다면서요. 아무래도 프로그램 질이나 내용이 지금보다 훨씬 안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잘 이용하고 있는데 왜 폐쇄를 한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되죠.

박성국 : 구마다 청소년수련시설이나 문화시설이 한 개 이상은 있어야 한다던데 동구엔 딱 두 개 뿐이에요. 여기 없어지고 나면 아마 다들 황당할 거예요. 원래 직영한다고 하더니 이젠 아예 없앤다고 말도 오락가락하고 정말 어이가 없어요.

- 당시 다른 친구들의 반응은?
김범성 : 기사를 보자마자 청운위 단체채팅방에 올렸어요. 다들 (구청의 직영화 결정에) 반대한다는 의견이었죠. 어떻게 할까 이야기를 하다가 성명서를 발표하고 서명운동을 하기로 했어요.

- 성명서를 발표했다고요?
김범성 : 10월 첫째 주에 바로 썼어요. 그땐 직영화에 반대한다는 내용이었다가, 이후에 폐지에 반대하는 것으로 바뀌었죠. 우리(화수청소년문화의집) 힘만으론 안 될 것 같아서 화수청소년수련관 소속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일곱 차례 이상 작성해 청소년문화의집 주변에 붙였어요.

박성국 : 서명운동도 했어요. 지역에서 행사 열리면 찾아가서 서명 받고, 인터넷으로도 받고, 시민들 만날 때마다 수시로 했어요. 서명운동에 참가한 청소년들만 30명 정도 돼요. 집계해보지는 않았는데 최소한 1000명은 넘어요. 아마 그보다 훨씬 많을 거예요. 정말 열심히 했어요. 여기를 지켜야 하니까요.

- 스스로 결정한 것인가요?
김범성 :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우리 스스로 한 거예요. 왜냐 하면 정당하지 못하게 강제로 문을 닫게 됐으니까요.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박성국 : 문 닫는다는 소식 듣고 가장 위기를 느낀 곳이 바로 청운위였어요. 책임감을 느꼈거든요. 청운위 위원들 모두 이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어떻게든 서명 더 많이 받아보려고 많이 뛰었어요. 서명 받은 종이가 많아지는 걸 보면서 뿌듯함도 느꼈고요.

청소년들이 발표한 성명서
 청소년들이 발표한 성명서
ⓒ 주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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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이 화수청소년문화회관에 대한 동구청의 일방적인 결정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작성했다.
 청소년들이 화수청소년문화회관에 대한 동구청의 일방적인 결정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작성했다.
ⓒ 주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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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뭔가요?
방경연 : 학교에선 이곳에서 하는 활동을 할 수가 없어요. 제가 (폐쇄 결정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예요. 학교 방과후수업이 있다고는 하지만 학업과 관련된 것이 많고 그 이외 것은 돈을 내야 해요. 이곳은 무료라서 마음 놓고 이용할 수 있거든요.

박성국 : 맞아요. 학교 방과후수업하고는 질이 달라요. 우리가 원하는 프로그램과 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은 여기가 유일해요.

김범성 : 학교 프로그램은 대체로 수동적으로 따라가야 하는 것이 많은데, 이곳은 아니에요. 능동적이고 자발적이죠. 노인복지회관 발마사지봉사, 농촌체험활동, 장애인인식개선교육도 진행하고, 국회나 청와대에 방문하기도 해요. 사진동아리에선 매년 전시회도 열고요. 탁구장이 있으니 탁구를 치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기도 하고, 연습실에서 춤을 춰도 돼요. 가장 좋은 건 이런 프로그램을 우리가 직접 건의하고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다른 곳에서는 이런 경험을 할 수 없어요.

박성국 : 어른들은 우리가 뭔가를 스스로 하고 싶어 한다는 걸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게임이나 좋아하고 공부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희도 하고 싶은 게 많거든요.

우리 목소리를 왜 들어주지 않나요?

- 그래도 동구청은 아직까지 폐쇄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
방경연 : 우리 기관만 없앤다고 하니 청소년을 차별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구청장님 개인의 생각인 것 같은데, 청소년 입장을 고려해본 다음에 없앨지 안 없앨지 결정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구청장님이 청소년일 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잖아요? 학원 아니면 갈 곳이 없어요. 학원만 내리 도는 아이들 보면 불쌍해요. 이런 친구들이 편하게 올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단 말이에요.

박성국 : 어른들은 '청소년이 미래'라고 말씀하시는데, 수치상으론 그런 것 같지도 않아요. 동구청 청소년 관련 예산이 정말 적어요. 게다가 이번 사건을 보면 우리를 배척하는 것 같은데 이러면 곤란하죠. 이 모든 게 동구청장님이 바뀌고 나서 생긴 일이에요. 일인시위까지 하면서 우리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했지만, 아예 들으려고 하지를 않아요.

김범성 : 청소년을 '우리의 미래'라고 하는 말은, 조금 달리 생각하면 지금은 생각 안 해도 되는, 그래서 지금은 없는 존재라는 뜻도 되는 것 같아요. 우리도 미래가 아닌 지금을 살아가는 존재에요. 자살을 비롯해 청소년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는데, 그러면 오히려 청소년 관련 예산도 늘리고 지원도 많아져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동구청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 같아요. 게다가 말을 바꾸면서까지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있어요. 정말 어이가 없어요. 우리에게 투표권이 없어서인가요? 왜 우리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 건지 정말 화가 많이 나요.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방경연 : 왜 처음에 잘못된 정보를 흘렸는지, 일부러 그런 것인지, 그에 대한 대답을 가장 먼저 듣고 싶어요. (구청장님이) 우리 이야기를 듣지 못했기 때문에 폐쇄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해요. 우리와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어요.

박성국 : 우리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공부만 해야 하거나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우리도 이 사회의 일원이에요. 큰 걸 바라는 게 아니라 사회의 일원으로서 우리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은 만들어줘야 하는 거잖아요. 아직까지 이곳이 사라진다는 게 실감이 안 나요. 일방적으로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 너무나 실망스러워요.

김범성 : 이곳에서 세상을 많이 배웠어요. 색다른 경험도 많이 했고요. 어쩌면 공부보다 더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죠. 내가 한 경험을 후배들에게도 물려주고 싶어요.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빼앗지 않길 바라요. 구청장님이 우리와 대화를 했으면 좋겠어요. 이곳이 문을 닫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김범성 군이 동구청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고 있다.
 김범성 군이 동구청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고 있다.
ⓒ 주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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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인천화수청소년문화의집, #인천동구청, #청소년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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