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교권 추락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다. 학교에 지친 선생님들의 퇴임도 정년보다 빨라지고 있다. 소통 없는 교실이 늘어나는 요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속 '존 키팅' 선생님을 꿈꾸는 이들이 있다. 나만 알기는 아까운(?) 선생님들의 이야기다. 이들에게 교실은 단순한 일터가 아니다. 모든 개인이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음을 말하며 제자들 모두를 가슴으로 가르쳤던 '키팅', 여기 키팅을 꿈꾸는 '진짜' 선생님들이 있다. - 기자 말

아주 어릴 적부터 선생님을 꿈꾸었다는 문상희(30, 제주중앙여고) 선생님은 늘 학생들과 함께 길을 걸어간다. 3년째 고3 담임을 맡고 있는 그녀는 학생들의 꿈과 진로를 진지하게 함께 고민해준다.

"이 아이가 OO을 하고 싶어 하는데 관련과나 괜찮은 대학 좀 알려줘."

내게 오는 연락의 99%는 학생들의 대학 진학 관련 이야기다. 가끔은 섭섭하지만 그녀가 얼마나 학생들을 사랑하는지 알기에 나는 열심히 알아보고 답해준다. 대학에 들어간 어느 날엔 그녀의 반 학생을 만나 열심히 살아가는(?) 언니로서 여러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스물셋 교생, 교실을 바꾸다

어느 봄날 운동장으로 나온 중앙여고 학생들과 선생님
▲ 꽃보다 예쁜 선생님과 학생들 어느 봄날 운동장으로 나온 중앙여고 학생들과 선생님
ⓒ 김지현

관련사진보기


사실 나는 그녀의 첫 제자다. 그녀는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우리 반으로 교생 실습을 왔었다. 교생선생님에 대한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여고였는데도 말이다. 담임선생님의 '부재' 때문이었다. 성적 최상위권의 아이들 몇 명만 챙기며 단 한 번도 다른 아이들과 소통하지 않았던 담임선생님은 우리에게 반항심만 키워주었다.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인 17살 우리는 집단으로 사춘기를 겪었다. 아무도 우리를 돌봐주지 않았다. 그러던 우리 반은 스물셋의 교생 실습생으로 인해 변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실습기간 내내 종례가 끝나도 늘 우리와 같이 석식을 먹고 야간자율학습이 끝날 때까지 함께 했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 동안 우리 반 모든 친구들과 상담을 해주었다. 상담 중에는 모두가 대성통곡을 했다. 어쩌면 열일곱의 우리는 성적 올리는 법을 말해주는 선생님보다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줄 어른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각자의 고민을 들어주고 나름의 처방을 해주었는데 나에게 내려진 처방은 거울을 보고 "지현아 사랑해"를 하루에 10번 외치는 것이었다.

절정의 사춘기를 보내며 고슴도치 같은 일상을 보내던 나도 그녀와의 상담으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해주었고 진심으로 품어주었다. '선생님' 말고 '언니'라고 부르라던 그녀는 우리에게 진짜 '언니'가 되어주었고 우리 반의 진정한 '담임선생님'이 되었다.

교생실습 마지막 날 이별파티를 하며 당장이라도 교실이 무너질 것처럼 대성통곡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한참 후에야 그녀는 "무보수로라도 계속 학교에서 교생을 하라고 하면 하고 싶을 정도로 실습 내내 행복했다"라고 했다.

2008년 키팅의 첫 걸음

2008년 그녀는 재수 끝에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제주도 서귀포시에 작은 여고로 발령받는다. 첫 부임을 하고 조회시간에 교실로 향하던 그 순간을 그녀는 '꿈'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3일 만에 반 아이들은 물론 학년 전 학년 학생들의 이름과 얼굴을 외웠다.

그 뿐 아니다. 가정사부터 시작해 모든 이야기들을 가슴으로 열심히 들었다. 모든 아이들과 소통하려고 했다. 아이들은 천방지축이었다. 갓 대학을 졸업한 어린 선생님에게 아이들은 벅찼다. 하지만 단 한 명도 포기하지 않았다. '진심은 늘 통한다'고 했나. 그녀는 가슴 속으로 이 말을 되뇌었고 결국 모두에게 병아리 선생님의 진심은 통했다. 단 한 명만 제외하고 말이다.

할머니와 함께 사는 지은(가명)이는 기초생활수급자였다. 늘 지각과 조퇴를 반복했다. 그녀는 "가장 큰 문제는 결석을 밥 먹듯 한다는 것이었다. 그대로 가면 고등학교 졸업을 못할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이었다며 그때를 회상했다.

설상가상 지은이는 생활기록부에 보호자 연락처란에 동생번호를 썼다. 일하러 멀리 나간 아빠의 번호를 쓰면 혼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병아리 선생님은 집에도 찾아가고 매일 같이 집에 전화도 하며 지은이를 학교로 불렀고 품에 안으려 했다. 하지만 안으려고 하면 할수록 지은이는 그녀의 품에서 멀어져 갔다. 지은이는 아슬아슬한 18살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었고 그 밑엔 늘 노심초사하는 그녀가 있었다.

초임 선생님에게 너무도 힘들었던 첫 제자. 그녀는 지은이를 '유일하게 진심이 통하지 않던 아이'라고 기억했다. 그렇게 제자와 스승 모두 위태로운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지은이가 도난수표로 물건들을 사고 나중에 적발되어 경찰서로 가게 된 것이다. 근근이 살아가던 지은이네 집에 큰돈이 있을 리 만무했다.

"선생님 저 20만 원만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늘 그녀를 밀쳐냈던 제자 지은이가 처음으로 부탁을 했다. 그녀는 그렇게 20만 원을 빌려주었고 지은이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달라진 건 없었다. 지은이는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그녀에게 지은이는 "통하지 않는 진심도 있구나"라는 사실을 아프게 확인시켜준 첫 제자로 남았다.

시간이 흘러 병아리 선생님도 어느 덧 6년차 교사가 되었다. 많은 것이 바뀌었다. 대학생 티도 못 벗었던 선생님은 서른이 넘어 결혼을 했고 아이들 대하는 것도 익숙해 졌다. 그런데 지난 여름, 뜻밖의 연락이 왔다. "문상희 선생님 맞으시죠? 꼭 만나고 싶어요" 지은이였다.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던 너무도 굳게 닫혀있던 그 지은이였다. 열여덟 여고생 지은이가 어엿한 스물넷의 청년이 되어 나타났다.

5년 만에 만난 지은이는 정말 보고 싶었다는 말과 함께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 속에는 5년 전 빚졌던 그 돈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지은이는 "죄송해요 저 때문에 고생 많으셨죠. 그래도 선생님 덕분에 제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어 지은이는 "제가 그때 선생님 나이에요. 저 아직 이렇게 어린데 선생님 얼마나 힘드셨어요"라며 그녀의 마음을 울렸다. 조금 멀리 돌아왔지만 그녀는 '역시 진심은 통하는 구나'라고 느꼈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며 지난 여름을 기억했다.

정년까지 평교사로 아이들과 함께 하고파

그녀의 꿈은 할머니 선생님이 되어 교실을 떠나는 그 날까지 '평교사' 로 남는 것. 요즘은 교실에 지치고 학생들에 치어서 교육청으로 가거나 교감, 교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녀는 할머니 선생님이 되고 교실을 떠나는 그 날까지 평교사로 남아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은 것이 꿈이다. 

그녀의 제자가 된다면 행복한 교실을 꿈꿔도 좋다. 그녀는 키팅처럼 모든 아이들을 '한 편의 시'로 만들 수 있는 교사다. 나도 2006년 스물셋 그녀와 함께 했던 교실로 돌아가고 싶다.

덧붙이는 글 | '20대 청춘! 기자상 응모글'



태그:#선생님, #제주중앙여고, #키팅, #죽은시인의사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